▲이주성 국세청장이 지난 27일 청와대에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현재까지 출근하지 않고 있다. 그의 사퇴 배경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연합뉴스 최영수
이주성 국세청장이 돌연 사퇴했다. 왜 그랬을까?
국세청은 용퇴라고 했다. 만성적인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언론은 거의 없다. 제각각 분석을 내놓고 있다.
워낙 제각각이다보니 추리기도 버겁다. 굳이 나누면 이런 것들이다.
부동산 의혹이냐, 개각 신호탄이냐
<한국일보>는 부동산 의혹을 제기했다. 이주성 청장이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에 전세로 살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 아파트가 본인 소유라는 의혹, 즉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을 받아왔고,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기사 말미에 "청와대 민정팀은 최근 이 같은 의혹을 조사했지만 뚜렷한 문제점은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스스로 보도의 신빙성을 약화시킨 것이다.
<중앙일보>는 개각 신호탄 쪽에 무게를 뒀다. 청와대가 경제·교육부총리를 포함하는 개각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신호탄으로 이주성 청장의 거취를 정리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세청장은 차관급으로 개각 맨 후순위에 놓이는 자리다. 부총리급 개각을 단행하기 위해 차관급 인사부터 정리한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다른 추정도 있다. <조선일보>는 열린우리당의 압력 때문이라고 했다.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과 이계안 의원 등이 27일 오전 이주성 청장을 만나 "지방선거 참패에는 세금문제도 영향이 컸다. 국세청장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을 했고, 이날 오후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근태 의장 측은 "재경위 업무보고 차 국회에 온 이주성 청장이 신임 인사를 하겠다며 찾아왔기에 10분간 만났을 뿐"이라며 "인사말 외에 어떤 논쟁이나 사퇴압력 발언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럴싸한 의혹 뒤에 역시 그럴싸한 반증이 붙어있다. 그래서 판단을 내리는 데 무리가 따른다.
각도를 조금만 틀자. 이주성 청장의 사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뭘까? 세금을 징수하는 예민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주성 청장의 사퇴가 세금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는 건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세금정책 때문에 여당이 선거에서 졌다?
하지만 아니다. 세금정책을 입안하는 곳은 재정경제부다. 국세청은 재경부가 만든 세금정책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는 곳이다. 이주성 청장과 세금정책의 변화 여부를 연결 짓는 건 무리다.
세금정책의 변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려 했다면 차라리 이 뉴스가 더 값어치가 있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26일, 올해에는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 "올해 일몰조항이 돌아오는 55개의 비과세·감면조치에 대한 검토와 자영업자 등의 소득파악에만 주력할 것"이며 "소득세제 개편은 계속 검토하되 올해 입법화는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거센 저항을 불러올 수 있는 소득세제 개편은 하지 않는 대신 비과세·감면조치를 재검토하고 자영업자 등의 소득파악에 주력해 세수를 벌충하겠다는 애기다.
재경부가 이렇게 판단했다면 변하는 건 거의 없다. 국세청을 독려해 세금 징수 실적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세금문제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졌다고 판단하는' 열린우리당의 정책방향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 열린우리당이 동의하고 재경부가 추진하는 이 세금정책에 이주성 청장은 적합할까, 아닐까? 힌트가 되는 두 개의 보도가 있다.
열린우리당의 사퇴압박설... 김근태 "사실무근"
<조선일보>는 "국세청은 지난해 8·31부동산대책 이후 서울 강남과 판교, 다주택자 등을 대상으로 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잇달아 실시(했다)"며 "정부 일각에서도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바로 이 점과 열린우리당의 사퇴 압박을 연결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열린우리당이 문제 삼는 건 서민들에게 증세 불똥이 튀었다는 점 때문이지 투기꾼이나 부자들에게 세무조사의 칼날을 들이댄 것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주성 청장의 이런 세무행정이 세수 확대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고 평가받을 수 있고, 재경부가 가고자 하는 세금정책과 부응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일부 다른 언론은 이주성 청장이 외국계 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두지휘해왔다고 평했는데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국부유출 논란이 거센 상황에서 외국계 기업을 상대로 세금을 더 많이 징수하는 걸 문제 삼기는 쉽지 않다.
종합하면 이주성 청장은 적임자에 가깝다. 기존 세제 틀 내에서 세금 추징 강도를 극대화한 인물 아닌가? 그런데도 그는 사퇴를 선언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주성 청장의 돌연 사퇴 배경을 짚어내는 건 쉽지 않다. 설득력이 약한 추정이라면 차라리 유보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 인사의 거취가 뉴스가치를 갖는 건 그의 거취로 인해 정책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성 청장은 그런 위치에 있지 않고, 정부의 세금정책 방향은 이미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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