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46회

머나먼 여정

등록 2006.07.21 16:59수정 2006.07.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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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짐리림은 자신이 얼마동안이나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는지 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밝은 빛이 보였고 격렬한 충격에 나가떨어진 후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다. 짐리림은 얼굴이 쓰라렸지만 그보다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가가 문제라고 여겼다. 짐리림은 조심스럽게 손끝을 약간 움직였다가 손을 들어보았다. 양손에 이상이 없자 짐리림은 살짝 허리를 들어 몸을 일으켰다.


-으악!

순간 짐리림은 얼굴의 쓰라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마치 지옥으로 빠져버릴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양다리에 느꼈다. 다시는 다리를 움직이기가 겁이 날 정도로 통증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짐리림은 온 몸에 극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눈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짐리림의 통증은 공포심과 더불어 배가되었다. 짐리림은 손을 더듬어 자신이 메고 있던 배낭을 찾으려 애를 썼다. 배낭 속에는 응급 치료 키트가 있었고 그것이라면 최소한 통증은 느끼지 않게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짐리림의 손은 자꾸만 허공을 휘 젖거나 맨땅을 헤 짚을 뿐이었다.

-아아악!

실수로 다리를 움직인 짐리림은 또다시 격렬한 고통에 휩싸였다. 다리가 대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없다는 것이 짐리림에게는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짐리림은 다리를 손으로 더듬어 보려고 마음먹기도 했지만 격렬한 통증이 다시 되풀이 될까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짐리림은 몸을 곧게 누인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같은 자세로 오래 누워 있다 보니 가이다의 높은 중력으로 인해 온 몸에 통증이 몰려 왔지만 함부로 몸을 뒤척이는 것은 짐리림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짐리림에게 조금이나마 다행인 것은 주위가 고요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다. 가이다의 생물이 다가와 공격한다면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이었지만 주위에는 조금의 바스락거림도 없었다. 그러한 고요함은 짐리림에게 정신적으로는 큰 고통을 주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 되고 있었고 차라리 무엇인가가 다가와 자신의 숨통을 끊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짐리림에게 들기 시작했다. 짐리림은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인지 살아 움직이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짐리림에게 괴로운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실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짐리림의 눈이었지만 그나마 빛만은 조금 감지할 수 있었다. 어느덧 빛이 느껴진다 싶더니 따가운 열이 가이다의 옅은 대기를 뚫고 짐리림의 피부를 자극했다. 짐리림은 몸 안의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본능적으로 조금이라도 수분의 증발이 더딘 그늘진 곳으로 몸을 움직여 가려했다. 그때마다 다리의 통증은 짐리림의 온몸을 휘감고 결국에는 심한 경련을 유발했다. 순간적인 발작과도 같은 심한 고통이 온 몸을 휘감자 짐리림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누가 날 죽여줘


겨우 고통이 가라앉자 짐리림은 혼잣말을 되뇌었다.

-제발 누가 날 죽여 줘!

그때 무엇인가가 서서히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짐리림은 입을 다물고 긴장감에 젖어 귀를 기울였다.

-조금만 참아

짐리림은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짐리림의 귀에 들어온 목소리는 하쉬에서 쓰는 언어였다.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짐리림의 가슴에 무엇인가 따끔한 것이 닿았다.

-진통제일세
-……아누?

-그래 아누야.
-왜 자네가 여기에……?

짐리림은 계속 말을 건네려고 했지만 정신이 몽롱해져 왔다.

-약이 좀 독할 테니까 편히 쉬게. 다리뼈를 붙인 후 싸매야 해. 자고 나면 금방 나을 거야.

-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아니, 눈도 보이지 않는 겐가? 지금…….

짐리림의 정신이 희미해지자 아누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윽고 짐리림은 모든 것이 죽은 것만 같은 고요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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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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