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52회

희망을 찾아서

등록 2006.08.01 17:18수정 2006.08.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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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솟!

솟은 둥근 발 짐승이 덮치기 직전에 가까스로 몸을 굴려 피한 후 멀어지는 수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상처를 입은 솟의 복부에서는 이를 막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피가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둥근 발 짐승은 애써 커다란 몸을 다시 돌려 솟을 덮치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솟은 상처로 인해 서서히 죽어갈 것이 뻔했다.


-수이...

솟은 점점 눈앞이 흐려왔다. 이제 둥근 발 짐승의 모습은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고 수이의 애타는 울부짖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포식자들은 상처 입은 먹이감이 나뒹구는 기회를 멀리서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솟은 필사적으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지만 바닥에 떨어지는 피는 포식자들의 기민한 후각을 자극할 뿐이었다. 솟은 자신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솟은 그대로 죽음에 순응할 수 없었다.

‘수이는 분명히 살아있다!’

솟은 둥근 발 짐승이 수이를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그냥 죽이고도 구태여 수이를 데려간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터였다. 더구나 둥근 발 짐승의 몸 안에서 눈에 익은 이상한 짐승이 기어 나온 것 또한 수이의 생존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적어도 솟과 마주친 이상한 짐승은 이상한 먹이만을 먹을 뿐이었다. 솟은 나무 아래에 곧게 누워 거친 숨을 내쉬었다.

솟의 정신은 점점 몽롱해져 갔고, 복부에 입은 상처에서는 더 이상 통증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느 순간부터 애써 눈을 부릅뜬 솟의 시야에 나무와 하늘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갔다. 분명 파랗던 하늘은 샛노란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나무는 초록이 하는 새파란 빛을 뽐내고 있었다. 둘은 손으로 휘 젖는 것같이 휘휘 뒤섞이더니 커다란 덩어리가 져서 솟에게 덮쳐왔다.


-으으!

솟은 갑자기 복부에 쓰라진 통증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커다란 덩어리는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솟의 눈앞에서 솟의 상처를 무엇으론가 어루만지고 있었다.


-참아, 너를 도와주려는 것이야.

솟의 눈앞에는 눈썹 부위가 유달리 튀어나와 있는 자가 침착하게 솟의 상태를 보아주고 있었다. 그 자가 웅얼거린 소리는 분명 솟이 쓰는 말과는 전혀 달랐다. 그럼에도 솟에게는 그의 의도가 가슴속 깊숙이까지 분명히 전해져 왔다.

‘네드족이다.’

네드족은 솟이 사는 곳에서는 보기 힘든 종족이었다. 가끔 보이는 네드족은 이 곳에 자리 잡은 인간들에게 살해당한 후 아무렇게나 버려지고는 했다. 특별히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네드족을 잡아먹기 위함도 아닌데 사람들은 그렇게 했다. 그 이유는 단지 ‘기분 나쁘다’는 것 밖에 없었다. 그들은 솟이 사는 곳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북쪽 어디엔가 살고 있었다. 네드족은 인간의 적대적인 감정을 깨닫고 있었기에 먹이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한은 되도록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접근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네드족이 몸을 사렸기에 일생동안 이를 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들의 생김새와 그들이 내리는 저주에 대해서는 대대손손 전해져 왔다.

-네드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마라. 그들은 풀리지 않는 저주를 너에게 걸 것이다. 눈썹이 튀어나오고 커다란 머리를 한 네드족과 마주치면 쫓아가서 죽여라. 그들은 인간들의 주위를 돌며 저주를 걸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지금 솟은 '네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솟은 풀리지 않는 저주가 걸렸음을 깨닫고서는 마구 울부짖었다.

-더러운 놈! 가! 가란 말이야! 난 수이를 찾아야해! 네 놈의 저주에 걸려 영영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어!

솟은 몸을 일으키려 하며 마구 소리를 질렀지만 진이 다 빠진 그의 팔다리는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네드'는 솟의 태도에 아랑곳 않고 나무 밑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비벼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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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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