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만 위로하는 야스쿠니의 '초혼제'

[주장] 고이즈미 총리와 아키히토 국왕의 발언에서 드러난 일본인의 진정성

등록 2006.08.16 11:17수정 2006.08.1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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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아침에 8·15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참배를 마친 후 "전쟁에서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없었던 분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바치기 위해서 참배를 하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키히토 일본 국왕(소위 '천황') 역시 같은 날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 전쟁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과 그 유족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을 새롭게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같은 일본 총리와 국왕의 발언 속에 모순이 담겨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의 죄악을 반성하고 인명 살상을 깊이 뉘우친다면, 일본인 전몰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하기에 앞서 주변국 피해자들에게 먼저 사죄의 마음을 표했어야 한다. 그리고 주변국 피해자들의 피해배상요구에 성실하고 진지하게 응했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처럼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으면서 일본인 전몰자에 대해서만 애도의 마음을 표하는 일본이 과연 인간의 생명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걱정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일본의 행동은 마치 교내 폭행과 관련하여 가해 학생의 어머니가 피해 학생은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자기 자식만 감싸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겠다.

일본은 지금 누구를 애도하나

지금 일본 총리나 국왕이 애도를 표하고 있는 대상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들이다.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된 246만6364위(2001년 10월 17일 현재)의 전몰자들은 기본적으로 가해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 안에는 전쟁을 직접 기획하고 지휘한 사람들도 있고, 또 사병으로서 자국 군대의 대외침략에 헌신적으로 가담한 사람들도 있다.

일반 사병들이 비록 동원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크게 보면 그들도 가해자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국왕을 정점으로 전체 국민이 단결하여 저지른 전쟁이므로, 전체 일본인이 가해자로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 사병이라고 하여 피해자 혹은 희생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들에게 먼저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 필요한 배상을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배제한 채 가해자만 위로하고 있으니, 주변국들은 일본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설사 일본이 피해자였다 할지라도, 일본이 진정으로 국제연합(UN) 상임이사국을 희망하는 대국이 되고자 한다면 상대방 희생자들도 함께 배려하는 대아적(大我的)인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과자' 일본에게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가해자인 자신들의 조상만 위로하면서 동아시아 평화를 운운하는 일본의 태도는 합리적 기준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소아적인 일본인의 모습은 비단 고이즈미 총리나 아키히토 국왕에게만 발견되는 게 아니라, 메이지 이후의 근대 일본 문화에서 쉽게 발견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초혼제'는 적군·아군의 넋을 모두 위로했다

오늘날 야스쿠니신사에서 행해지는 '초혼제'는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년) 말기에 민간 사회에 유포된 초혼 관념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것이 메이지시대(1868년 이후)에 들어 지배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전 시기의 그것과 비교할 때, 메이지 시기의 초혼제는 중요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이전 시기에는 적군·아군을 가리지 않고 쌍방 전사자들의 넋을 모두 위로하는 관용적 혹은 대아적 모습을 연출하였다.

그에 반해, 군국주의가 확립된 메이지 이후의 초혼제는 제사의 대상이 아군으로 축소되었다. 거기서 아군이라는 것은 일본 국왕을 위해서 전사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피·아 쌍방의 넋을 모두 위로하던 종래의 모습과 판이하게 달라진 양상이라 하겠다.

오늘날 일본 총리나 국왕이 자국 전사자들의 넋만 위로하는 것도 이러한 메이지 이후의 소아적인 초혼제와 관련이 있다.

자신들이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에 대해서는 일말의 배려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아군' 전사자들의 넋만 위로할 줄 아는 일본이 과연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겠는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세계 각지에서 금전 기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그러한 물질적 사랑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예의를 갖추는 일일 것이다.

일본 총리나 국왕이 진정으로 전몰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면, 아군 전사자들의 넋만 위로하는 소아적인 모습을 버리고 피·아 쌍방의 넋을 위로할 줄 아는 대아적인 모습을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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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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