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토마토 농사, 물까치들이 다 망쳤지만...

인간인 나도 할 말은 없습니다

등록 2006.08.21 16:43수정 2006.08.2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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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물까치들이 쪼아 먹은 토마토

물까치들이 쪼아 먹은 토마토 ⓒ 송성영

"어라, 이놈의 새대가리 새끼들을 확!"


토마토 밭에 가면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오르곤 했습니다. 올해 토마토 농사는 한마디로 망쳤습니다. 야채 배달 품목에 끼워 팔겠다고 40여 그루를 심었는데 30여개를 수확해 단 한 차례 배달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내 야채들은 하우스에서 싹을 틔워 노지에서 자랍니다. 예전 농사가 그러했듯이 제철에 먹게 되는 야채들입니다. 노지에서 자라는 제철 농산물이기에 수확기간이 아주 짧고 온갖 해충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올해 토마토는 남들보다 좀 더 일찍 심었습니다. 그만큼 수확도 빨랐습니다. 한창 수확할 무렵 이른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토마토 농사 죄 망친 물까치떼들

장맛비는 오랫동안 내렸습니다. 도무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장마 전에 어쩌다 익은 토마토, 기가 막힐 정도로 맛이 있었는데, 장마 기간에 어쩌다 벌겋게 익은 토마토는 제 맛이 나질 않는 맹탕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잘 익은 토마토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습격자'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해충들이 아니라 새들이었습니다. 새들 중에서도 물까치 놈들이었습니다. 독수리까지 몰아낸다는 까치떼들, 우리 집 뒤 대나무 숲을 장악한 그 까치떼들을 몰아 낸 물까치떼들.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까치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거의 '조폭' 수준에 가까운 물까치 녀석들이 분명했습니다.

물까치 녀석들은 토마토 밭 주변 어딘가 산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토마토가 다 자라기 전, 우리 집 야옹이 녀석이 어쩌다 강아지처럼 밭에 졸졸 따라오기라도 하면 녀석들은 야옹이를 향해 날카롭게 짖어대며 저공비행으로 달려들곤 했습니다.


a 야옹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물까치

야옹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물까치 ⓒ 송성영

내가 있건 없건 간에 싹 무시하고 사방에서 저공비행으로 야옹이의 머리통을 쪼아대듯 달려듭니다. 인간이 고양이보다도 더 잔혹하고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말입니다.

요 몇 년 사이 물까치 녀석들은 그야말로 겁 없이 굴었습니다. 애간장 태울 만큼 발갛게 익은 앵두에서부터 대문 없는 우리 집 앞에 우뚝 솟은 뽕나무 열매나 고염 나무 열매를 노획하는 것은 예사고, 그것도 부족해 '곰순이'나 '갑돌이'가 빤히 보는 앞에서 개밥까지 도둑질 해가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입니다.

그런 놈들이 인적이 없는 산 아래 토마토 밭, 농약도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 맛난 토마토를 그냥 놔둘 리가 있었겠습니까? 열에 일곱, 여덟 개씩 그렇게 아예 토마토 밭을 작살 내놓았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물까치 녀석들의 노략질은 심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녀석들의 노략질이 예전보다 더 심해진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벌레나 산열매를 먹던 녀석들이 토마토 밭을 작살내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었습니다.

물까치떼들을 내려보낸 건 '신행정수도'?

자신들보다 수십 배, 수천 배는 더 독한 '인간의 마을'로 내려와 온갖 위험을 감수해 가며 노략질을 일삼는 것은 '신행정수도 이전 발표'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적어도 우리동네 물까치 놈들은 그렇습니다.

돈 독 올라 눈이 벌건 사람들이 우리 동네 주변 산이란 산을 온통 까뭉개고 있는 만큼 녀석들의 보금자리 또한 그만큼 위협 당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위협당하고 있는데 녀석들이라고 가만있겠습니까?

토마토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려 하면 여지없이 팍팍 파먹는 물까치 새끼들, '이 새대가리 새끼들을 확!' 하는 독기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 마다 녀석들의 입장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자연이 어쩌니 생태가 어쩌니 이런 저런 잔머리 굴리지 않고 그 독기를 식히지 않으면 또 어쩔 것입니까? 내겐 독기를 뿜어내 해결 할 수 있는 그 어떤 뾰쪽한 수도 없었습니다. 녀석들이 죽도록 맛있게 파먹겠다는데, 짱돌 들고 날아가는 녀석들과 '맞장'을 뜰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녀석들이 죄 파먹은 토마토를 들고 새대가리가 아닌, '사람 머리'를 굴렸습니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손상된 토마토를 닭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토마토는 결국 계란이 되어 우리 집 밥상에 올라오게 될 것이었습니다. 새 새끼도 먹고 사람 새끼인 나도 먹고 손해 볼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 녀석들아, 니들도 먹고 살아야지, 먹어라 먹어, 날랑 계란이나 먹을란다."

나는 그렇게 거의 매일 같이 토마토 밭에서 '계란'을 수확했습니다. 토마토가 계란이 된다는 공식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가끔씩은 아직 덜 익은 토마토까지 죄다 쪼아대는 '새대가리 녀석들'에게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에이 인정머리 없는 새대가리 새끼들아, 적당히 좀 파먹어라, 우리도 한 두 개쯤은 먹고 살자."

사실 새대가리 새끼들, 새대가리 새끼들, 쫑알거리고 나면 인간인 내 머리 속은 복잡하고 찝찝해지게 마련입니다. 새들조차 살기 힘들다고 둥지를 떠나는 오염된 땅에서 희희낙락 살아가는 인간들, 누가 더 '새대가리'일까요?

a 물까치가 쪼아 먹은 토마토는 닭을 통해 계란으로 변신하게 되겠지요.

물까치가 쪼아 먹은 토마토는 닭을 통해 계란으로 변신하게 되겠지요. ⓒ 송성영

하기는 인간인 나도 할 말이 없습니다

보금자리를 잃고 '인간의 마을'로 내려온 새들은 이렇게 인간들을 비웃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니들은 우리 새대가리들 보다 더 어리석은 대가리가 뭔지 아냐?"

하늘과 땅이 내게 "하물며 새에 쪼아 먹힌 토마토조차 닭을 통해 알을 내놓고 있는데 너희 인간들은 도대체 하늘과 땅에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인간인 나는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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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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