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67회

새로운 만남

등록 2006.09.01 14:54수정 2006.09.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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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 하하하하하!

솟은 고기를 씹으며 별것도 아닌 그차의 말에 크게 손을 올리며 즐거워하였다. 솟 뿐만 아니라 그차, 모로, 사영도 모두가 들떠서 즐겁게 웃으며 배를 불리고 있었다. 시큼한 열매의 즙을 마신 이후로 솟은 조금씩 정신이 몽롱해 지더니 급기야는 말이 잘 소통되지 않던 그차, 모로와 의사소통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기분도 유쾌해졌기에 그들은 모든 것을 잠시 잊고 마음껏 즐길 수가 있었다.


-키, 이거 더 없나? 하하하하하

키는 빙긋 웃으며 더 이상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열매를 모아온 키는 정작 열매의 즙을 많이 마시지 않고 산양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은 채 덩이식물의 뿌리만 씹을 다름이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이런 외진 곳에 살고 있는 것이지?

솟의 질문에 사영과 모로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그차는 큰 소리로 서슴없이 대답해 주었다.

-우리는 모두 살던 곳에서 쫓겨난 자들이야. 사영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했어. 그로인해 다른 이들이 기피했는데 땅에 그림을 그려 다음날에 있을 일을 알아맞히기까지 하자 사람들이 쫓아내어 버렸지.


-그림을 그려 다음날에 있을 일을 알아맞힌다고?

솟은 벼랑에서 사영이 그림을 그리던 사실을 떠올려 보았다. 솟은 그 그림이 딱히 무엇을 얘기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응답으로 그린 그림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데로 그린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사영이 두려웠던 거야. 난 그런 귀한 능력을 가진 사영을 지켜주고 싶었어.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 그리고 여기서 모로를 만나게 되었어.

그차가 시선을 모로에게 돌리자 그는 약간 마지못한 표정으로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얘기해 주었다.

-난...... 불을 좋아해. 불을 어떻게 하면 강하고 오래 피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어. 그래서 다른 이들이 가진 것들을 모아 불을 지르곤 했지. 그래서 아주 오래전에 이리로 쫓겨 왔어. 여기 온 건 행운이야. 여기서 신비한 알맹이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어.

-신비한 알맹이?

솟은 산양의 시체에 뿌려놓았던 알맹이를 떠올렸다.

-그 알맹이는 뭐든지 불을 활활 붙게 한다. 저기에 내가 많이 만들어 두었어. 그 알맹이를 쓸 수 있는 일이라면 난 따라나서겠어.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여기 있겠어.

솟은 모로가 그다지 미덥지 않았지만 키가 슬쩍 귓속말을 해 주었다.

-꼭 데려가야 한다. 신비한 알맹이뿐만 아니라 불을 잘 다루는 자이다.
-하지만 겨우 이들로 어떻게 그 괴물과 싸우고 수이를 구해 온단 말이냐?

솟은 시큼한 열매즙으로 인해 정신이 조금 흐린 상태에서도 현실적인 생각이 들어 키의 말을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난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길을 솟 너에게 제시한 것이다. 혼자서는 수이를 구할 수 없다. 이들과 함께라면 수이를 구해올 수 있다.

솟은 고기를 든 채 실없이 웃으며 크게 팔을 흔들었다.

-어떻게 말인가?

솟의 부정적인 언사에도 키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내게 방법을 묻는 것인가? 넌 아무것도 없이 수이를 구하러 가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너에게 난 동료들을 붙여 주었다. 사실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솟과 키가 웅얼거리는 것을 본 그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솟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난 너희들이 마음에 든다. 사영도 너를 따르면 힘들지만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전한다. 반드시 너의 아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솟은 그차의 격려에 힘을 얻었는지 손에 든 산양 고기를 힘차게 물어뜯었다. 절벽만이 솟아있는 쓸쓸한 정경사이로 크게 이지러진 붉은 보름달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며 어느덧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풀 한포기를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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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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