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뭐해? 구례엔 왜 가는데?"

교사에게 반말하는 아이들...그리고 '행복한 소통'

등록 2006.09.10 16:07수정 2006.09.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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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목백일홍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은 세 소녀.

목백일홍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은 세 소녀. ⓒ 안준철

가을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나는 마침 읽고 있던 신문지를 손에 들고 교무실을 빠져 나왔다.

학교와 집 사이는 걸어서 십 분 거리. 빗발은 가을비답게 굵지도 세차지도 않았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신문지를 활짝 펴서 우산처럼 머리에 뒤집어쓰고 정문을 향해서 걸어갔다. 만나는 아이들마다 이렇게 수작을 부렸다.

"같이 쓰고 갈까?"

그러자 한 아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멀리서 나를 보고 까르르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웃음에서 평화가 느껴졌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아, 내가 좀 허름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면 아이들이 평화로워지는구나! 학교도 좀 느슨하고 헐렁해지면 아이들이 행복해지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신문지를 둘러 쓴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안달이었다.

하긴, 일부러 그럴 것도 없이 학교에는 나를 허술히 보는 아이들이 여럿 있다. 심지어는 멀리서 나를 보면 동네 강아지 이름을 부르듯 내 이름을 크게 외치며 달려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야단을 치기도 하고 알아듣도록 타일러보기도 하지만 소용 없다. 때론 철도 없고 생각도 짧아 늘 혼이나 나기 일쑤인 아이들이 마음 놓고 찾아와 쉬었다 갈 수 있는 작은 그늘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다.


언젠가 퇴근 후 시내에서 그 아이들을 만났다. 나를 보자 길거리에 떨어진 돈다발이라도 발견한 듯 금세 얼굴이 환해지며 쪼르르 달려왔다. 물론 내 이름을 크게 외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숫제 반말이다.

"여기서 뭐해?"
"응. 구례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거야."


"구례엔 왜 가는데?"
"모임이 있어."

"무슨 모임?"
"앞으로 선생님이 될 대학생들하고 선생님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야. 너희들처럼 버릇없는 아이들과도 어떻게 하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말해주러 가는 길이야."

"수업도 하고 피곤한데 그렇게 멀리까지 가야 돼?"
"그럼. 당연히 가야지."

"그럼 잘 다녀와. 몸조심하고."
"그렇게 말하니까 네가 꼭 선생님 엄마 같다."


이게 무슨 교사와 학생 사이의 대화란 말인가? 거기에 선생이 학생에게 엄마 같다니! 하지만 그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을 보면 내 마음에서 나온 소리일 성싶다. 몸조심하라는 말을 건넬 때 그 아이의 눈빛이 정말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눈빛처럼 깊고 융숭했던 것이다. 진심으로 남을 위한다는 것, 그것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그러니 녀석들을 버릇없는 아이들이라고만 단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요즘 교무실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땅이 꺼지라고 긴 한숨을 내쉬거나 허공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견디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교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웃자고 하는 말이겠지만 로또복권이라도 당첨이 되면 미련 없이 교직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면 그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감동적인 얘기를 해주고 싶어도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어요. 내 자식만 같으면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하겠지만 그랬다가는 고발한다고 할까봐 솔직히 겁도 나고요."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교실에 들어오는 거예요. 너 왜 수업을 하다 말고 남의 교실에 들어오느냐고 했더니 그러면 안 되냐고 되레 묻는 거 있죠. 요즘 애들이 갈수록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고백하자면 나도 수업을 하다 말고 교실을 나가버린 적이 두어 번 있다.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을 교실바닥에 내동댕이친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말도 없이 교실을 나가버리는 아이들과도 한 호흡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대화를 나눈 적이 더 많다. 열이면 다섯은 싱거울 정도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행동을 고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하여 너무 쉽게 좌절하는 것도 경계할 일임을 알게 되었다.

a 아이들은 교육의 꽃입니다

아이들은 교육의 꽃입니다 ⓒ 안준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쪽지를 적어 가방에 넣어주는 여선생님이 계신다. 또한 지각을 자주하는 아이들의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새벽밥을 먹고 한 시간 넘게 학생의 집까지 걸어가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학교까지 걸어오는 남선생님도 계신다.

문제는 아이들과 끊어진 소통의 철도를 수선하는 힘들고 지루한 작업을 교사의 당연한 일로 여기는 교사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되먹지 못한 행동을 성토하고 분노하는 소리는 높은데 정작 그 해결책을 고민하고 모색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진단만 있고 처방은 없는 셈이다. 병이 들었다고 혼을 내기만 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를 두고 개인교사의 자질이나 성실성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학교의 철학부재와 비교육적인 관행에 더 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와 아이의 담임교사에게 칼을 들이댄 사건이 있었다. 그 전에 교사는 아이를 몇 대 때렸고, 더 이전에 아이가 교사에게 야자(야간자율학습) 문제로 거짓말을 했다. 아이는 왜 교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아마도 본인이 원하지 않은 '야자'를 억지로 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야자'를 학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시키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불법이지만 학생들이 희망한 양 서류만 만들어놓으면 상급관청도 눈감아 준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해주었다가는 학교에서 무능교사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럼 누가 잘못한 것일까?

나는 그 주범을 '입시교육'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왠지 그 말이 내 자신에게조차 공허하게 들린다.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아이들을 위해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없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 속에서 아이들을 회복하는 일이다. 점수 몇 점으로 가치를 부여받는 학생이 아닌, 어떤 조건도 덧입혀지지 않은 고유한 생명으로서의 아이들 말이다. 그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으로서의 한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다. 진부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랑은 힘이 있고, 사랑만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한 번 살펴볼 일이다. 혹시 내 가슴 속에서조차 아이들이 한낱 점수기계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닌지. 학교를 아이들이 삶을 가꾸고 배우는 생명의 텃밭이 아닌 일회용 지식을 모아다 파는 허접한 지식창고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도 신바람이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희망이 사라지고 가슴이 식어버린 것은 아닌지.

기름진 옥토보다도 사막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더 가슴 뛸 일인데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참교육길라잡이>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참교육길라잡이>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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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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