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아귀탕 한그릇이면 세상 시름 뚝

[음식사냥 맛사냥 88] 시원한 국물 즐기며 건져먹는 아귀의 쫄깃한 맛

등록 2006.09.14 19:37수정 2006.09.1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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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제법 썰렁한 초가을, 시원하고 따뜻한 아귀탕 한 그릇 어때요? ⓒ 이종찬

더부룩한 속 확 뚫어주는 시원한 맛의 대명사

이 세상에 아귀보다 더 못 생긴 물고기도 있을까. 아가리가 하도 엄청나게 커서 대가리마저 따라 커지다가 마침내 몸통이 점점 줄어들어 꼬리처럼 흐느적거리는 아귀. 오죽했으면 불교에서 탐욕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아귀'라고 부르고, 그 사람이 죽어 가는 곳도 '아귀도'라 했겠는가.

하지만 아귀는 지지리도 못 생긴 그 생김새와 탐욕의 대명사에 비해 맛이 아주 좋고 영양가 또한 아주 뛰어난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이다. 게다가 아귀는 날카로운 이빨과 뼈 외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물고기다. 한때 TV CF에서 '못 생겨도 맛은 좋아'라고 광고하던 그 말이 아귀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라고나 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아귀' 하면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하게 혀끝을 맴도는 '아귀찜'만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는 아귀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아귀는 생태국이나 동태국처럼 탕으로 끓여도 그 맛이 담백하면서도 더부룩한 속을 확 뚫어주는 시원한 맛이 그만이다. 술을 많이 마신 뒤 해장국으로 즐겨찾는 복국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싱싱한 생아귀와 된장, 콩나물 등을 넣고 끓여내는 아귀탕은 시원한 국물을 즐기며 건져먹는 생아귀의 쫄깃한 살맛도 아주 좋지만 아귀탕 속에 든 콩나물과 미나리를 한수저씩 건져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썰렁하게 여겨지는 요즈음 같은 가을날, 가까운 벗들과 소주 한 잔 주고 받을 때 술안주도 되고 한끼 식사로도 느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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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덕장에 수북히 쌓여있는 생아귀 ⓒ 이종찬

아귀의 간, 세계 3대 진미로 손꼽히는 집오리의 간에 버금

아귀는 등과 배 쪽이 모두 검은 것과 등은 검고 배 쪽이 흰 것이 있다. 그중 배 쪽이 흰 것을 '참아귀'라 부르는데, 그 맛이 일반 아귀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아귀탕을 전문으로 파는 음식점에서 재료로 쓰는 생아귀가 모두 이 참아귀다. 그리고 아귀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귀찜보다 이 참아귀로 만든 아귀탕을 더 즐겨 찾는다.

아귀탕은 희부연 국물 속에 든 아가미와 지느러미, 꼬리 부분을 건져 먹어도 씹으면 씹을수록 쫄깃한 감칠맛이 나지만, 아귀의 간과 위는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이 일품이다. 특히 아귀탕 속에 들어있는 아귀의 간은 세계 3대 진미로 손꼽히는 집오리의 간에 버금 갈 정도로 영양가가 높고 맛도 좋다.

게다가 생아귀를 포옥 삶아 우려낸 희부연 국물은 시원하고도 뒷맛이 참 깔끔하기도 하지만 주독을 해소시켜 쓰린 속을 상쾌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귀탕은 식욕을 북돋워 줄뿐만 아니라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물론 동맥경화, 당뇨, 심장병, 류마티스, 신경통 등 각종 성인병과 암까지 예방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흔히 즐기는 아귀찜이 매콤하고도 새콤달콤한 양념맛이라고 한다면 아귀탕은 아귀가 숨기고 있는 독특한 맛, 아귀 본래의 쫄깃하고도 담백한 감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죽했으면 글쓴이가 아는 사람 중에 아귀찜을 아주 좋아하던 사람이 아귀탕을 한번 맛 본 뒤부터는 툭 하면 아귀탕을 먹으러 가자고 졸라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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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탕은 시원한 국물을 즐기며 건져먹는 생아귀의 쫄깃한 살맛도 아주 좋지만 아귀탕 속에 든 콩나물과 미나리를 한수저씩 건져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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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의 간은 세계 3대 진미로 손꼽히는 집오리의 간에 버금 갈 정도로 영양가가 높고 맛도 좋다 ⓒ 이종찬

"아빠! 괴물처럼 생긴 이것도 물고기야?"

"아빠! 괴물처럼 생긴 이것도 물고기야?"
"아귀라고 하는 바다 물고기란다. 이게 생긴 것은 이렇게 못나도 조리만 잘하면 맛이 끝내준단다. 참, 그때 아귀찜은 먹어봤지?"
"수북하게 쌓인 시뻘건 콩나물이 엄청나게 매운 그 음식 말이지? 그럼 오늘 저녁 반찬은 아귀찜이겠네, 어휴~ "
"웬, 한숨. 걱정 마. 오늘 저녁은 아귀찜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귀탕을 끓이는 거야."
"아귀탕? 그런 음식도 있어?"
"그럼, 국물이 시원하고 국물 속에 든 쫄깃한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아빠! 그러면 너무 맵게는 만들지 마."


아귀탕을 만드는 재료는 아귀찜을 만드는 재료와 엇비슷하다. 다만 한가지 조심해야 할 점은 싱싱한 생아귀를 재료로 사용해야 하며, 탕의 간을 맞출 때 소금이나 간장을 사용하지 않고 묽게 탄 된장물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생아귀의 잡내가 나지 않고 아귀 특유의 감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첫째, 싱싱한 아귀 1마리와 멸치맛국물, 콩나물, 미나리, 고사리, 무, 양파, 대파, 쑥갓, 매운고추, 붉은고추, 고춧가루, 빻은 마늘, 청주, 생강, 집된장을 준비한다. 둘째, 멸치맛국물에 된장을 푼 뒤 콩나물을 깔고 그 위에 토막을 낸 아귀와 손으로 주물러 약간 풀어진 아귀간, 대파, 고사리, 어슷썰기한 무를 올려 한소끔 끓인다.

셋째, 어슷썰기한 매운고추, 붉은 고추, 양파, 빻은 마늘, 고춧가루 등 준비한 양념을 모두 넣고 청주 혹은 식초를 약간 부어 아귀의 비린내를 없앤다. 마지막으로 쑥갓과 미나리를 넣고 1분 정도 지난 뒤 재빨리 불에서 내리면 끝. 이때 입맛에 따라 적당한 크기로 썰어둔 깻잎이나 방아를 조금 넣어도 맛이 훨씬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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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에 따라 고춧가루를 살짝 부려 먹어도 맛이 괜찮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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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아귀탕 국물에 밥 한공기 말아 먹으면 피로가 뚝 ⓒ 이종찬

아귀탕 한 그릇에 온몸의 피로가 땀방울로 뚝뚝

"아빠, 나는 국물하고 콩나물만 건져줘."
"아빠, 나도."
"고기는 왜?"
"그냥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어."


지난 일요일 저녁, 오랜만에 아귀탕을 끓였다. 아니, 아귀탕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만들어보지 못한, 그러니까 그날 처음으로 만들어보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아귀전문점을 취재하면서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비법이 있어, 그때 그 주인의 얼굴을 떠올려가며 정성스레 아귀탕을 끓였다.

그래서일까. 내가 처음 끓인 아귀탕에서는 그때 그 아귀탕 전문점에서 맡았던 그런 구수하면서도 매콤한 내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멸치맛국물에 콩나물과 미나리까지 들어가서 그런지 국물도 아주 시원하고 뒷맛이 깔끔했다. 그리고 잘 삶아진 고기맛도 쫄깃쫄깃한 게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이 자꾸만 당겼다.

하지만 큰딸 푸름이와 작은딸 빛나는 "고기가 너무 미끌미끌한 게 잘 씹히지가 않고 이상하다"며, 콩나물 몇 수저 건져먹고, 밥을 말은 국물만 홀짝거리다가 이내 밥상 뒤로 물러났다. 아마도 아이들 입맛에는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아귀의 맛이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는가 보았다. 이는 모두 달착지근한 인스턴트 식품 탓이리라.

"이게 생긴 건 이래도 실제로 먹어보면 쫄깃한 게 얼마나 맛이 있는데. 자아~ 살점 한 점만 간장에 찍어 먹어봐."
"……"
"어때?"
"보기보다는 맛이 제법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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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생긴 건 이래도 실제로 먹어보면 얼마나 맛이 있는데 ⓒ 이종찬

아침 저녁으로 제법 썰렁한 바람이 불면서 몸이 갑자기 찌뿌둥해진다. 환절기를 맞아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 추운 게 감기 기운이 약간 느껴지는 것도 같다. 뭔가 따뜻한 국물이 있는 그런 음식이 그립다. 이럴 때, 가까운 시장에 나가 싱싱한 아귀를 사서 아귀탕을 끓여보자. 따뜻한 아귀탕 한그릇에 온몸의 피로와 세상 시름이 땀방울로 뚝뚝 떨어지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골아이', '시민의신문', '유포터', '씨앤비'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골아이', '시민의신문', '유포터', '씨앤비'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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