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원칙에 '북핵불용'만 있나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북핵 대하는 우리 정부의 즉각적인 반응

등록 2006.10.10 11:09수정 2006.10.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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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지하 핵실험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지하 핵실험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책임 있고 신중하게" 그리고 "전략적이고 조율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정부의 대응은 즉각적이고 즉자적이다. 대응책을 신중하게 조율하려면 시간을 갖고 상황을 살펴야 할 텐데 정부의 행보는 그렇지가 않다.

당장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북 포용정책 재검토를 언급했다.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했고, "더 이상 대화를 강조할 수 없다"고도 했다.

말만이 아니다. 행동에도 나섰다. 오늘 동해항에서 시멘트 4천톤을 싣고 북한으로 가려던 선박의 출항 일정을 유보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어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등 대북 교류 민간단체들에 전화를 걸어 내일로 예정된 방북을 연기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규탄을 하는 건 상관없다. 아니 필요하다.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 가운데 하나가 '북핵 불용'이었다. 1991년에는 북한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핵 실험은 '도발'임이 분명하다. 도발을 규탄하는 건 당연하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표현은 그래서 타당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북핵을 '불용'한다고 해서 과정과 결과를 '불문'하는 건 단선적이다.

즉각적이고 즉자적인 정부 반응


a 지난 15일 유엔 안보리는 북한 미사일 관련 대북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사진은 지난 6월 30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

지난 15일 유엔 안보리는 북한 미사일 관련 대북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사진은 지난 6월 30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 ⓒ 유엔 포토

눈 여겨 보자. 북한이 핵 실험을 한 직후 미국이나 일본 모두 규탄 입장을 내놨지만 즉각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유엔을 통한 제재'라는 대원칙을 천명하는 선에 머물고 있다. 아베 일본 총리가 독자 제재 가능성을 내비치긴 했지만 미국의 기조는 유엔을 앞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핵실험 이후 조성될 한반도 정세는 며칠 내에 채택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문의 수위와 강도가 조율할 것이다. 행동 개시시점은 바로 이때다.


관심사는 역시 유엔이 군사 제재안을 허용하는 유엔헌장 7장 42조를 원용할 것인지의 문제다. 부시 미 대통령이 특별성명을 통해 일단 '외교적 방법'을 강조했지만 상황은 유동적이다.

상황은 유동적이고 흐름은 긴박하다. 이 와중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는 자명하다.

지금의 국면은 제재를 가할 것인지 여부가 아니다. 제재는 기정사실이다. 관건은 제재 수위와 범위다. 제재 수위를 고강도에서 저강도로, 제재 범위를 '포괄'에서 '제한'으로 '전략적으로 조율'하는 게 긴요하고 절박하다.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우리 정부가 한 술 더 뜨고 있다. 지난 7월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을 때의 태도와 너무 흡사하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전에 쌀과 비료 지원 중단을 선언해버린 것과 거의 똑같은 행보를 놓고 있다.

이런 행보가 '북핵 불용'과 함께 내세운 대북정책 3대원칙, 즉 '평화적 해결'과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조응하는지는 의문이다.

달리 볼 수도 있다. 상황이 파국이라면 이것저것 가릴 계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볼 수도 없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내외신은 북한 핵문제가 인도·파키스탄 모델이 적용되는 선에서 정리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998년 두 나라가 핵 실험을 했고, 그에 따라 유엔 안보리가 의장성명을 채택한 뒤 미국 주도로 경제제재에 들어갔다가 몇 년 뒤 핵 보유국, 더 나아가 미국의 우방국의 지위를 인정한 모델이다.

이 전망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면 과정은 지난할지언정 우리 정부의 역할은 더욱 커져야 하고 인내심 또한 더욱 질겨져야 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그랬다. "상황은 한국의 역할이 축소되는 쪽으로 급변하고 있다"고 했다.

갈라서 볼 점은 있다. 그런다고 사태의 본질이 완전 해소되는 건 아니다. 설령 북한이 핵 보유국의 지위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조성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핵 보유국인 북한에 맞서 우리의 안보전략을 새로 짜야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태의 근원적 해결은 오로지 북한의 핵을 완전 제거하는 방법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 북폭을 용인하지 않는 한 핵을 근원적으로 제거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그건 2단계 과제다.

"전략적이고 조율된" 대응으로 돌아가야

a 북한 핵실험 소식이 알려진 9일 낮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속보를 시청하고 있다.

북한 핵실험 소식이 알려진 9일 낮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속보를 시청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선 위기상황을 관리하는 게 급선무다. 미국이 설정한 실제 레드라인은 핵 기술·무기의 이전이다. 부시 미 대통령의 특별성명에는 이 점이 명시돼 있다. "북한이 핵 무기나 핵 물질을 다른 나라 또는 비국가적 실체들에게 이전한다면 미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핵의 완전 제거는 그 다음 과제다. 그러기 위해선 대북 포용정책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 대북 포용정책의 근간은 민관분리, 정경분리, 군사와 비군사 분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책임 있고 신중하게" 그리고 "전략적이고 조율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은 맞다. 당위를 넘어 절체절명의 명제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추상적 표현에 담길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을 예단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우려감을 완전히 지울 수 없다. "대북 포용정책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또 다른 언급이 너무 탁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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