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제재 해제의 반대급부는?

등록 2006.11.02 12:02수정 2006.11.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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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부분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2일자 <연합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묶여 있는 북한 자금 2400만 달러 중에서 소위 ‘합법자금’인 800만~1200만 달러를 선별 해제하는 방안이 미 행정부 안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미국·중국의 6자회담 재개 합의(10월 30일자) 직후에 미 행정부 내에서 위와 같은 움직임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미·중의 베이징 회동에서 금융제재 해제가 비중 있게 논의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에 대한 북한의 반대급부는 무엇일까? 핵 폐기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로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가하자, 북한은 그에 대한 대응으로 ‘6자회담 불참, 미사일 시험 발사, 핵실험’ 등의 강공수를 던졌다. 이것은 북한이 금융제재의 반대급부를 ‘6자회담 복귀, 미사일 유예, 핵 드라이브 유예’ 등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9·19 이후와 같은 고강도 금융제재가 없던 이전 시절에도 북한은 여전히 핵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므로 고강도 금융제재 해제를 핵 폐기와 연계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굳이 이러한 논리적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북한이 이제 와서 핵을 폐기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로 핵무장을 준비해 왔다. 그것도 외교적·경제적 고립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북한 핵개발에 깊숙이 관여해 온 인물이다. 군 경력이 없는 그가 군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현재 김정일은 ‘대미 자주를 위한 핵무장’을 권력 정통성의 한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이 핵을 폐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폐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할 수 없는 것은 비단 핵무장을 위해 많은 것을 투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일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에 핵이 없다면, 미국이 지금처럼 북한 앞에서 쩔쩔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핵을 폐기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망상’일 것이다.

그럼,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에 대한 선물로 북한은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6자회담 복귀, 미사일 유예, 핵 드라이브 유예 등이 될 것이다. 핵 문제와 관련하여 덧붙이면, 미국이 금융제재를 해제하고 추가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면, 북한 역시 추가 핵실험 혹은 또 다른 강공책을 구사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대결에 국가적 명운을 걸고 있는 북한은 마치 총알을 아껴 쓰듯이 대미 카드를 가급적 아껴 쓰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북 금융제재 해제 이후 핵 폐기를 주장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대해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향후 국제사회의 핵 폐기 요구에 대해 북한은 9·19 공동성명의 원칙을 집중적으로 거론할 것이다. 9·19 공동성명의 제1항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6자는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합의를 한 것이지 결코 북한 비핵화에 대해 합의한 것이 아니다. 또한 6자회담 참가국이 합의한 것도 한반도 비핵화였지 북한 비핵화가 아니었다. 그리고 최근 김정일이 언급한 바 있듯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전 주석의 유훈이기도 하다. 김일성의 유훈은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다.

또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서에서도 북한은 결코 핵 포기를 약속한 적이 없다. 미국의 대북 압박 철회를 조건으로 핵 프로그램 일부의 부분 정지를 약속했을 뿐이다.

이러한 점을 본다면, 향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핵 폐기 요구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응카드를 집중적으로 내세울 것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핵 무장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에 대한 검증은 하지 않고 북한의 핵만 폐기하려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부각시키는 한편(북한 비핵화의 부당성), 설령 북·미 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천하더라도 한반도 바로 옆에 있는 중국이 핵무장을 하고 있는데 미국은 그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묵시적으로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한반도 비핵화의 비현실성).

이상의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해제하면 북은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6자회담 복귀, 미사일 유예, 핵 드라이브 유예 등의 선물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논리를 집중 홍보함으로써 미국의 핵 폐기 요구의 부당성 및 비현실성을 부각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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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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