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동맹 단절 향한 황장엽의 꿈

[김태경의 동북아 브리핑] 미국이 중국의 안정을 보장할까

등록 2006.11.15 10:40수정 2006.11.1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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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민포럼 창립 세미나에서 `북핵 문제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민포럼 창립 세미나에서 `북핵 문제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6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한나라당이 주최한 한 토론회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에 있어 김정일은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가 중국으로 밀려오는 것을 막는 것 이상의 가치가 없다. 김정일 정권 제거를 위해서는 중국이 북한과의 동맹을 끊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에 찬성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아 중국 체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을 천명하면 북한 문제는 해결된다."

그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력이나 경제적 제재는 일부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내부 봉기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일 제거를 위해서는 북·중 동맹 관계를 끊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남북 통일이 된 뒤에도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바람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 내부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보장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올 10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황 전 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굴레 벗은 망아지처럼 제멋대로만 하려는 김정일을 계속 붙들고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압록강까지 다가오는 것을 억제하기 위하여 쓸모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초강국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침습은 13억 다민족 국가의 정치적 통일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으며, 이것은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을 위태롭게 하는 기본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황 전 비서의 논리는 일종의 '대(對)중국 체제 보장론'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나 경제적 제재나 중국의 태도가 관건이다.


보수적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선 그의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중국에 대한 견제보다 북한 문제가 더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워싱턴의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앞으로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자가 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은 기본적인 우선 순위였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직접 협상을 피하고 결과적으로 북핵을 방치한 데에는 기본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분석까지 있을 정도다. 논란 많은 미사일방어체제(MD)가 겉으로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은 상식이다.

둘째 황 전 비서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외부로 수출돼 특정 나라에 이식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의 압록강을 통해서가 아니라 중국은 이미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통제한다고 하지만 인민들은 인터넷이나 위성방송을 통해 얼마든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접할 수 있다. 중국 안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출신 사람들이 수백만명 상주하고 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온다. 경제 성장에 따라 해외 여행을 하는 중국인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 미국의 국제교육원(IIE) 자료를 보면 2005·2006년 학기 미국에 유학중인 중국 학생수는 6만2582명으로 인도 다음으로 많았다. 이들 상당수는 공부를 마친 뒤 귀국한다.

중국은 이미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접하고 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민포럼 창립 세미나에서 `북핵 문제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민포럼 창립 세미나에서 `북핵 문제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중국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에 노출되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한다면 일국 양제에 의해 대만의 체제를 50년간 보장하겠다는 주장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왜 중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직 탄생하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단, 중국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들어가는데 통일된 한반도의 압록강을 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남북통일이 중국에 위협이 된다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압록강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한미 군사동맹을 통한 군사적 압력이 될 것이다.

황 전 비서는 6일 강연에서 "지금 중국이 제일 사활적인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바로 13억의 자기 주민들을 통일시키는 것"이라며 "그전에는 미국 세력이 압록강까지 들어오는 것, 군사적·경제적 부분을 위협으로 느꼈지만 이제는 자유민주주의가 들어오는 것을 가장 큰 위협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느끼는 위협의 대상을 잘못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한국이나 남미 등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는데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한 쪽은 좌파 세력이었다. 유학을 통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은 역설적이다.

중국에서 만약 제대로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탄생한다면 이는 미국에 유학한 뒤 사회의 기득권층이 된 사람들이 아니라 토지에서 쫓겨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농민·노동자들, 그리고 이들과 결합한 지식인들의 활동에 의해서일 것이다.

아무튼 황 전 비서의 주장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북한 문제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북한 문제는 핵이나 미사일 문제이지만 동시에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이 벌이는 국제적 파워 게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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