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물어 나르는 새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 여행 21

등록 2006.11.21 14:14수정 2006.11.2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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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희

왕소희
베이비의 목에선 러브라고 새겨진 금빛 목걸이가 빛나고 있었다. 베이비의 이름은베이비. 별다른 이름도 없이 18년을 살아온 소녀.

“베이비, 이 목걸이 너무 예쁘다!”
“그건 딥바거예요! 아킬레스가 딥바한테 준 거예요! 아킬레스는 딥바를 좋아한데요!”


깔깔 웃으며 모여 있던 동네여자애들이 소리쳤다. 딥바는 베이비의 동생. 이 어린 소녀는 마음도 착하고 얼굴도 배우처럼 예뻤다. 그러니 동네에서 가장 멋진 소년 아킬레스가 좋아하게 된 것이다.

멋쟁이 아킬레스는 아버지의 작은 노점에서 목걸이를 슬쩍해서 선물했다. 그런데 목걸이를 선물 받은 딥바는 그것을 언니의 목에 걸어줘 버렸다. 뭐든 좋은 게 생기면 언니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딥바는 새처럼 날아다니며 언니에게 온 세상을 물어다 놓느라 바빴다. 그건 베이비가 다리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니, 메이! 베이비 언니한테 놀러가요! 지금. 지금 가요!”

덤불이 우거진 들판에서 나무를 하던 딥바가 머리를 쏙 내밀고 소리쳤다. 딥바는 어디서든 우리를 만나기만 하면 베이비 언니에게 놀러 가자고 손을 잡아끌었다.

“그래, 그래. 가자.”


딥바의 재촉에 우리는 바쁜 걸음을 잠시 돌려 베이비네 집으로 갔다. 마당에는 동네 여자애들도 놀러와 있었다. 집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옆집 아저씨가 우리를 불렀다.

"얘들아! 이리와 봐! 구아바 따 줄께. 얼른 와!"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인 아저씨네 마당에는 구아바가 가득했다.

“와아!”

구아바라니! 그것도 한 조각이 아닌 몇 개씩이나! 밥 먹을 때나 가끔 시퍼런 낫으로 베어주는 구아바 한 조각을 먹을 수 먹었었다. 그러니 그건 정말 군침 도는 간식이었다. 모두들 좋아서 우르르 달려갔다. 나도 신이 나서 달려가려다 주춤거렸다. 딥바가 달려가지 않고 언니 옆에 앉아 웃기만 하고 있었다.

‘구아바 안 좋아하나? 어떻게 하지?’

난 주춤거리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베이비 옆에 앉아서 보니 바로 앞에 작은 턱이 하나있었다.

'베이비가 혼자서 저 작은 턱을 넘어갈 수 없었구나’

멀리서 아이들이 맛있게 구아바를 먹고 있었다. 나는 침만 꼴깍 삼키며 바람에 실려 오는 구아바의 희미한 향을 맡고 있었다. 한참 후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그제야 딥바가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이번엔 나도 따라 나섰다.

아저씨는 나무에서 구아바를 따 주셨다. 갓 따낸 구아바는 특유의 향을 내었다. 기다릴 것도 없이 물어뜯었다. 양손가득 받았던 구아바는 허무하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 빈 손 너머로 아직도 흙바닥 위에 앉아 있는 베이비가 보였다.

‘아! 베이비!’

아차하는 사이 딥바가 언니에게로 뛰어갔다. 딥바는 아저씨가 준 구아바를 하나도 먹지 않고 쥐고만 있었다. 그리고 언니 앞에 와르르 쏟아 놓았다.

해 질 무렵이면 나는 가끔씩 순리 바이삽네 옥상에 올라가서 마을을 둘러보는 걸 좋아했다. 하늘은 옅은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집집마다 짜파티를 굽느라 구수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딥바네는 바로 뒷집이어서 마당이 훤히 보였다. 딥바가 마당에 나와 있었다.

“메이! 람람!(안녕)"

나를 본 딥바는 소리쳐 인사를 하더니 집안으로 부리나케 달려 들어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언니를 앉힌 방석을 힘겹게 끌고 나왔다. 베이비와 나를 인사 시켜주려고 그런 것이다.

"람람!"
"람람!"

나도 방방 뛰며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물가로 가는 길가 옆 작은 담장 위에는 늘 베이비가 앉아 있었다. 딥바가 우리의 손을 잡아끌고 언니에게로 가기 전까지는 별 관심 없던 풍경이었다. 하지만 딥바에게 이끌려 베이비와 친해진 후로 길가를 지날 때 먼저 베이비에게 달려갔다.
우물가에서 엄청 무거운 물통을 이고 오다가도 베이비가 보이면 괜히 더 비틀거려 보았다.

'이런 코메디를 하면 베이비가 좋아하지 않을까'

지니도 그랬다.

"시내에서 예쁜 귀걸이를 사다 줘야지"

우리는 어쩐지 베이비에게로 날아가야 할 것 만 같았다. 저렇게 열심히 언니에게 세상을 물어다 나르는 딥바를 생각하면 그랬다.

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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