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댓잎, 돌 위에 떨어지다

[태종 이방원 40] 혁명전야 5

등록 2007.02.09 19:23수정 2007.02.1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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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씁쓸하다

정몽주는 숭교리 이성계의 집을 나섰다. 만감이 교차했다. 애송이라 치부했던 젊은이와 대적한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고 참담하게 느껴졌다. 나라도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앞으로 처결할 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죽기를 바랐던 이성계는 쌩쌩하게 살아있고 강아지로 생각했던 방원이 훌쩍 커버린 것만 확인했다. 손자의 모공편(謀攻篇)에 나오는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적정(敵情)을 살피지 못하여 실수를 범하는 것보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스스로 자위해 보지만 씁쓸한 심정이었다.

이성계 슬하에 호랑이 한 마리가 자라고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어린 새끼일 뿐, 위협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오늘의 방원은 그것이 아니었다. 다 커버린 호랑이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발톱 사이에 용(龍)의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섬뜩한 소름마저 끼쳤다.

“어떻게 해야 하나?”

좌 날개 정도전과 우 날개 조준을 제거하고 반란괴수 이성계를 공략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온 것이다. 상처 입은 호랑이 한 마리를 전격적으로 처치하리라 마음먹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성계보다 더 튼실한 호랑이 한 마리가 떡 버티고 서있으니 자신이 오히려 벼랑에 선 느낌이었다.

“좋다. 내 몸이 부셔지는 한이 있어도 네놈들을 꼭 처치하고 말리라. 네놈들을 처치하지 않고서는 고려가 바로 설 수 없다.”


흔들리는 송악산

천천히 걷는 말 잔등에 올라 송악산을 바라보았다. 푸른 소나무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이 언제 보아도 듬직하고 변함없던 송악산이 오늘따라 달리 보였다. 바람이 불어서일까? 걸어가는 말 때문일까? 500년 도읍지를 묵묵히 지켜왔던 송악산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몽주를 죽이려면 이때를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멀어져 가는 정몽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화가 재촉했다. 지켜보고 있던 방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말발굽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잠시 눈을 감았다.

“정몽주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대쪽 같은 정몽주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 라고 최종 판단했다. 이제 결행의 순간만이 남았다.

“그런데 장군께서 노하시면 어쩌시겠습니까?”
정몽주를 죽이고 난 다음에 떨어질 이성계의 성화가 걱정스러운 듯이 이화가 다시 말했다.

“기회는 잃어서는 안 된다. 장군께서 노하시면 내가 마땅히 대의(大義)로써 아뢰어 위로하여 풀도록 하겠다.”
- <태조실록>

방원은 최종 결심했다. 돌아가는 길 노상에서 정몽주를 치기로 했다.

“몽주를 죽여라.”

방원의 명이 떨어졌다. 말 위에 대기하고 있던 조영규가 고여와 이부를 데리고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얼마가지 않아 정몽주가 타고 가는 말을 따라잡았다. 정몽주가 선지교에 이르자 조영규가 철퇴를 날렸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정몽주가 몸을 피했다. 정체불명의 불한당들의 공격을 간신히 피한 정몽주가 두 눈을 부릅뜨며 꾸짖었다.

“네 이놈, 어떤 놈이냐?”

말고삐를 감아 쥔 정몽주는 채찍을 날렸다. 놀란 말이 튀어나가자 조영규가 뒤쫓아 가 말 머리를 내리쳤다. 철퇴를 맞은 말이 꼬꾸라졌다. 말과 함께 넘어진 정몽주가 일어나 달아나자 고여가 달려들어 철퇴를 날렸다. 정몽주가 쓰러졌다. 정몽주가 쓰러졌는데 고려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다라니당의 애달픈 조종

선지교(善地橋)에 선혈이 낭자했다. 쓰러져가는 고려를 일으켜 세우려던 정몽주는 이렇게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향년 55세였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선지교의 다라니당(陀羅尼幢)이 조종(弔鐘)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셩난 가마귀 흰빗츨 시올세라
청강(淸江)에 죠히씨슨 몸을 더러일가 하노라
- <圃隱母>

지난밤 흉몽에 시달렸던 팔순 노모가 숭교리 이성계 집으로 향하는 아들을 문밖까지 따라 나와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들이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라고 만류하던 정몽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은 정몽주의 노모가 세상을 떠난 후, “죽어서도 아들을 지키겠노라”는 노모의 소망에 따라 선지교 옆 양지바른 곳에 노모의 비석을 세웠다. 기이하게도 그 비석은 언제나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후세의 사람들은 아들의 비명횡사에 한이 맺힌 어머니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훗날 등극한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의 충절을 높이 사 그를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익양부원군(益陽府院君)에 추봉하였다. 충절을 꺾어버리고 충절을 높이 산다는 것이 이율배반적인 일이지만 멋있는 생각이다. 정적이라면 끝까지 추적하여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를 벌이는 현대에 생각해봐도 음미해 볼만 한 일이다.

봄비에 새싹은 얼마나 돋았을까

영천에서 태어난 정몽주는 1360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문검열을 시작으로 관직에 출사했다.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하던 그도 이인임의 배명친원(排明親元) 정책에 반대하여 언양에 유배가기도 했다. 이인임의 퇴장으로 관직에 복귀한 그는 세 차례의 명나라 방문과 한 차례의 일본 방문으로 외교에 큰 공을 세웠다.

문인이면서도 한 때는 조전원수(助戰元帥)가 되어 이성계 휘하에서 왜구토벌에 참가하였으나 무인들과는 생각을 달리했다. 정몽주의 충(忠)의 개념은 임금과 왕조에 국한했을 뿐, 기득권자들의 착취와 수탈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백성에 대한 충(忠)에서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정도전의 민본사상과 다른 점이다.

春興(춘흥) / 정몽주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草芽多少生(초아다소생)
- <포은집>

봄비가 가늘어 방울지지도 않더니
밤중이 되니 조그맣게 소리가 들리는구나.
눈이 다 녹아 남쪽 시냇물이 불었을 테니
새싹은 얼마나 돋아났을까?


빗줄기가 가늘어 방울지지도 않던 봄비가 얼어붙었던 대지를 적시어 시냇물을 이루었는데 포은 정몽주가 기대하던 새싹은 얼마나 돋아났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면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면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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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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