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통을 쌓아 놓고 설 대목 준비를 하시는 안골 할머니송성영
달콤한 꿀을 내놓더니 이번에는 이야기보따리까지 술술 풀어내 주십니다. 할머니의 고향은 안골에서 큰 산 몇 개를 넘어 가야 하는 남이면 건천리라고 합니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진짜로 못 먹고 살 때 시집을 갔다고 합니다. 잠시라도 손 놓고 있으면 굶어 죽을 판이었던 그런 끔찍한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결혼할 때 남편은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살았지, 그래서 결혼혔어, 남의 집 머슴은 그래도 먹는 것만큼은 잘 먹었으니께."
잘 먹는다고 해봤자 쫄쫄 굶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땅이란 땅은 몇몇 지주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은 오죽하면 머슴을 살아야만 먹고 살만했겠습니까. 지금은 먹고 살만함에도 불구하고 자청해서 자본가에게 머슴살이 하는 사람들이 쌔고 쌨지만요.
"살만한가 싶어 시집 왔는디, 노름해서 다 날려 먹었어, 웬수도 그런 웬수가 없었지, 오두막집까지 다 팔아 먹었으니께, 나중엔 나무 장사를 했는디, 하루 나무 장사하믄 하루 끼니도 못 먹었으니께. 손바닥만한 내 땅은 고사허구 붙여먹고 살 넘땅도 없었어, 그래서 애들에게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이고 싶어서 여기 안골로 들어온 거여. 여기서는 아무 데나 화전을 일궈 먹고 살 수 있었으니께."
할머니네는 안골에 들어와 화전으로 산비탈 다랑이 논밭을 일궜습니다. 조금이라도 공간이 있어 보이면 죄다 논과 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제법 머리통이 굵은 자식들은 큰 일손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 비좁은 안골에서 나락 50가마니를 수확하기도 했답니다. 어린 일곱 남매를 데리고 들어와 자식 둘을 더 낳고 화전을 일구고 벌을 쳐가며 40년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노름 좋아했던 남편이 죽으믄 겁나게 부자 되는 줄 알았는디, 있을 때나 읎을 때나 사는 게 한가지여, 다를 게 없더라구."
원수 같기만 했던 남편이었지만 할머니는 일찍 세상을 뜬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할머니 나이, 올해 일흔 다섯. 자식들은 벌써 다 대처로 떠났고 큰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옛날 생각허믄 나두 오래 살고 있는 거지, 옛날에는 아들 환갑까지 살믄 망령이 들어 잿통에 빠져 죽는다고 했는디, 지금은 증손자 까지 본다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