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종호
앞서의 비서실 관계자에 따르면, 김홍업씨는 무소속 출마를 결심하며 아버지에게 세 가지 명분을 내세웠다. 그중의 첫 번째가 본인의 '명예회복'이었다. 다른 두 가지 명분은 낙후된 지역(서남해안) 발전과 민주평화세력 통합에의 역할론이다.
김씨는 지난 23일 민주당으로부터 공천장을 받는 자리에서 명예회복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김씨는 이날 출마 선언에서 "이번 선거가 무안·신안의 지역발전과 민주평화세력의 통합에 새로운 출발점이자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이를 위해 미력하나마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의 핵심 측근에 따르면, 김씨는 이번 보궐선거 출마 자체를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회로 삼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이 측근은 김씨의 무소속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김씨가 설령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유세를 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호소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알다시피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도가 높은 편이다. 현재 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선거구이다. 민주당은 23일 김씨를 공식적으로 '전략공천' 했다.
김씨의 출마에 대한 이 지역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그러나 재보궐 선거는 투표율이 낮아 정당을 업은 조직표가 당락을 좌우한다. 투표 성향도 젊은층보다는 장·노년층 중심으로 이뤄진다. 인정에 따른 정서적 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따라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같은 변수가 남아있지만, 그가 '민주당 간판을 달고 출마한 이상 당선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월초 고향 방문 때만 해도 '무소속 출마' 공언
김홍업씨는 지난 3월초 처음으로 3박4일 일정으로 아버지의 고향 땅을 찾았다. 그의 출마설이 심심찮게 나올 때였다. 그의 한 참모는 "공식 출마 선언을 하기 전에 고향 어르신들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라는 판단에서 무안·신안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때만 해도 그의 40년 지기이자 정치적 후원자인 윤흥렬(58) EtN TV 대표는 필자에게 김씨의 무소속 출마를 공언했다. 윤 대표는 "홍업씨가 민주당 출마는 당에도 부담이고 통합에도 보탬이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무소속으로 나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윤 대표는 김홍업씨의 경희대 ROTC(학군단) 동기(10기)이자 둘도 없는 친구이고 사돈지간이다. 김씨는 친구인 윤 대표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다가 형수감으로 점찍어둔 윤 대표의 누이 혜라씨를 형(김홍일 전 의원)과 묶어준 중매쟁이다.
72년 경희대 법대를 졸업한 윤 대표는 ROTC 중위로 전역후 LG애드의 전신인 금성사와 동방기획 등에서 상업광고 제작 CD(creative director) 일을 하다가 86년에 광고기획사를 차려 독립했다.
대신고를 졸업한 김씨는 당초 경희대 의예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2년 만에 경영학과로 과를 옮겨 윤 대표와 함께 72년 졸업과 동시에 ROTC 소위로 임관했다. 의사 공부를 감당할 가정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박정희 대통령의 간담을 서늘케 한 아버지를 둔 탓에 엄혹한 철권통치의 유신 치하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된 것이었다.
한때 출판사와 한약재 수입상을 하면서 돈을 벌기도 했으나, 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때 형과 함께 남산(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었다. 그후 사실상 미국 망명길에 오른 아버지를 따라가 미국에서 반정부·인권운동을 하다가 다시 귀국하는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평화기획'이라는 정치광고 대행사를 만들어 아버지의 선거를 도왔다.
이런 인연으로 윤 대표는 김씨와 한 몸이 되어 ▲평민당 대통령선거본부 홍보팀장(87년) ▲민주당 대통령선거본부 미디어대책실장(92년) ▲국민회의 대통령선거본부 메시지총괄팀장(97년)으로 대선을 세 번이나 치렀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정치광고 기획사를 차린 김씨와 광고판에서 잔뼈가 굵은 윤 대표가 자연스레 의기투합한 결과였다.
"음지에서 활동한 홍업씨, 공직 나설 마지막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