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60회

등록 2007.03.27 08:17수정 2007.03.2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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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것은 능효봉이란 놈이 구양단을 복용시키고 그 효능을 완전히 흡수시키려면 중의의 생사금침(生死金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대충 처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비치며 넌지시 독촉하는 바람에 중의는 어쩔 수 없이 설중행의 몸에 다른 안배도 해 놓지 못하고 완벽하게 벌모세수(伐毛洗髓)를 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역시 나름대로 자기에게 유리한 점을 계산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천룡의 후예가 나타난 이상 이를 견제할 인물이 필요했다. 어차피 구룡과 동정오우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영원히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 그렇다면 운중의 자식인 설중행으로 하여금 능효봉이란 자식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고, 나중에 모든 것이 밝혀지면 설중행과 능효봉의 일전은 불가피할 것이었다.

능효봉이란 자식이 왜 굳이 무서운 적을 만들려는지 몰라도 위기란 곧 기회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노회한 중의는 그런 이유로 심혈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다른 계산을 깔아놓고 들어준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운중을 의식한 계산이었다. 중의는 고개를 돌려 성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이자 당부를 하고 싶네."

그리고는 중의는 입 안이 타들어 가는지 몸을 돌려 탁자 위의 찻잔을 들어 차 한 모금을 입안에서 돌리며 우물거렸다. 갑자기 심각한 말투로 말하는 중의를 보며 성곤이 눈을 껌뻑거렸다. 중의가 다시 탁자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

"자네는 앞으로 이 운중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서지 말게. 누구의 편을 들어줄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게. 설사 내가 곤경에 빠진다고 해도 자네는 나서지 말라는 말이네."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자네가 다치는 것을 원치 않네. 그렇게 생각하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게. 이것은 진심이네. 그저 친구의 진심어린 부탁이라 생각하게."

더 묻지 말라는 말이다. 성곤이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떠올리자 중의가 말을 이었다.


"대신 어젯밤 자네가 나에게 약속하라고 종용한 일을 말해주겠네."

성곤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어젯밤 약속이라면 바로 운중의 혈육에 대한 약속이다. 성곤이 중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숨도 한 번 쉬지 않고 물었다.

"운중에게 혈육이 있단 말인가? 자네가 알고 있단 말이지? 그 아이가 누구지? 지금 그 아이는 어디 있는 겐가?"

저렇게 서두르는 성곤의 모습은 언제나 느긋한 모습을 보이던 것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마치 달려들 듯 바싹 상체를 중의 쪽으로 기울였다. 중의는 내심 씁쓸한 마음을 감추며 입을 열었다.

"서두르지 말게. 자네가 서두르는 것은 그 아이에게도 별로 좋지 않네. 그 아이는 지금 이 운중보에 들어와 있다네. 설중행이란 아이지. 운중이 운중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맡긴 함곡과 풍철한의 일행에 끼어있네. 이미 운중은 만나보았을 걸세. 자네도 어쩌면 지나치다 보았을지도 모르고…."

"정말인가? 설중행이란 그 아이가 정말 운중의 혈육이 맞단 말인가?"

다짐을 받듯 성곤이 재촉하자 중의는 아무리 말해도 흥분하고 있는 성곤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거의 확실하네. 그의 몸속에는 운중의 단원심공이 자리하고 있네. 외부로는 전혀 유출된 적이 없는 운중의 독문심공이 말이네."

"단지 운중의 독문심공을 익혔다고 해서?"

"또한 그 아이 역시 젊었을 적 운중이 용봉쌍비로 심인검을 익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팔목 아래에 두 자루의 비수를 달고 있네. 심인검을 완벽히 익히기 위한 전 단계로 보여지네만 그 아이는 이미 심인검을 상당 수준 익혔을 가능성이 높네."

점차 성곤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더욱 흥분이 되는지 손을 가만두지 못했다.

"자네가 그것을 어찌 아는가?"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그 아이가 운중의 자식인지 확인하기 위해 묻고 있었다.

"자네 역시 혈간의 시신에 나있는 심인검의 상흔을 보았을 걸세."

성곤의 얼굴에서 흥분이 가시며 짙은 의혹이 떠올랐다.

"지금 자네는 혈간의 몸에 나있는 심인검의 흔적이 그 아이 짓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말도 안 된다는 말투였다. 그 아이가 운중의 자식이라면 무슨 연유로 혈간을 죽인단 말인가? 혈간의 동창의 비영조란 쓰레기들에 의해 기습을 당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아이는 동창의 비영조에 몸담고 있었네. 그것도 최근에 와서 조장의 임무를 맡고 있었지. 혈간을 죽이고 철기문 구천각의 추격을 피해 살아남은 두 명 중 하나이네."

"어찌 그런 일이? 도대체 그 아이가 왜? 그 아이는 자신이 운중의 자식인줄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네. 그 아이는 자신의 신세가 그저 알려진 대로 아미파의 화부였던 설가의 자식으로 알고 있을 걸세."

"그렇다면 혈간이 부친의 친구임을 모르고 기습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봐야지.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만 동창의 명령이었을 가능성이 높네. 그 아이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고. 물론 누군가가 중간에서 장난을 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네."

중의는 확인해봐야 한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분명 동창의 명령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중간의 명령체계를 건너뛰었다는 점에서 내놓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그저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본 것일세. 재미있는 것은 그 아이의 모친이 이곳에 들어와 있는 아미의 회운사태가 아닐까 하는 점이네."

그 말에 성곤이 매우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뭣? 회운사태…?"

"그 아이는 이십여 년 전 이곳 운중보에 들어온 적이 있었던 아이네. 아미파의 추천을 받아서 말이지. 아미에서 화부노릇을 하던 설가의 자식이라고 알려졌지만 회운사태가 적극 나서서 운중보에 입보시킨 아이라네. 그 후 게으르고, 행실이 바르지 못하여 십수 년 전에 이곳에서 쫓겨났지."

중의가 모르는 것이 무엇일까? 누구보다 운중보 내부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설마 운중이 자기자식을 쫓아냈단 말인가?"

"철담이 쫓아냈네. 당시에는 그 아이가 운중의 혈육인지 아무도 몰랐다고 하더군."

"운중마저도?"

"모르지. 운중은 어쩌면 자기 곁에 있는 것보다는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네. 그게 더 그 아이의 신변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겠지."

"운중은 또 마음이 상했겠군."

잠시 운중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던 성곤은 곧 표정을 바꾸었다. 어쨌든 운중의 혈육이 존재 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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