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온갖 벌레들에 시달렸던 3대째 배추. 씨를 받기 위해 이 중 몇 포기를 남겼다.송성영
자본주의가 그래왔듯이 한미FTA가 체결되면 풍요로운 삶을 앞세워 온갖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이 땅에 살아가는 온갖 생명들을 착취하고 학살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 사람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가 이익을 보든 손해를 보든 어떤 식이로든 끊임없이 사람들의 욕망을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도 더한 먹히고 먹는 자본의 세상이 건설 될 것이다. 지구 저 편에서 굶어죽어 가는 사람들은 그저 자연도태의 현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가방끈 긴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인간들은 아이들을 박 터지는 입시경쟁의 전쟁터로 몰아내기 위해 벌써부터 게거품을 물고 있다. 그들에게는 자식들의 인간성이 되먹든 말든 상관없다. 자본에 의해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다. 불알 발린 소돼지나 일회성 배추 씨앗에 담겨 있는 진실이 그러하듯 오로지 자본의 살을 찌우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국내 시장 점유율의 70%에 달했던 '흥농종묘' '중앙종묘' '서울 종묘'는 이미 10년 전 미국의 거대 자본가들에게 차례로 넘어갔다. 우리 동네에 토종 배추씨앗이 사라진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에 군소리 없이 배추씨를 구입해야 한다. 그것도 씨알머리 없는 배추씨를 구입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이 바라는 대로 한미FTA가 순조롭게 체결되면 눈에 보이는 국익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꼬박꼬박 미국의 거대 자본가들이 조작한 배추 씨앗을 구입해야 하는 것처럼 결국 국익은 고사하고 미국의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자국민들의 고혈을 짜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에 종속되어 우리의 배추 토종 씨앗들이 사라졌듯이 그렇게 우리는 그들의 일회성 배추씨 없이는 옴싹달싹 못하는 쭉쟁이 배추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다.
배추 농사를 망쳤던 그해, 종묘상에서 구한 일회성 배추씨로 400포기를 심어 겨우 40포기 정도를 건졌다. 거대 자본에 도전했다가 몰매를 맞은 기분이었다. 꼼짝 없이 당해야 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오기가 생겼다.
"000들! 농사 끝나는 그 날까지 어디 한번 해보자!"
'자본'에 도전장을 던졌다. 쭉쟁이들 중에서도 그나마 우성으로 자란 몇 포기의 배추를 남겨 두었다가 작년 겨울 다시 씨를 뿌렸다. 그리고 올 봄 그 3대째 씨앗들이 잘 자라고 있다. 꽃을 피우고 있다. 2대 씨앗들에 비해 쭉쟁이들이 훨씬 많이 줄어들었다.
2대째에는 쭉쟁이가 아닌 멀쩡한 배추가 10분의 1에 불과했다면 3대째는 2분의 1 수준이었다. 여기서 다시 우성인 씨앗들을 모아 올 가을에 다시 파종할 것이다.
배추씨는 다른 씨앗에 비해 몇 배가 더 비싸다. 이번 실험 재배가 성공한다면 더 이상 비싼 씨앗을, 그것도 생명력없는 씨앗을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일회성 농사가 아닌, 생명을 살려나가는 배추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본에서 멀어져야 한다. 적게 먹을 각오로 자본에 의해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야 한다. 뒤로 물러서는 만큼 생명과 평화의 세상이 보인다. 노무현 정권은 지금 저 썩어빠진 자본가들과 함께 '한미FTA'라는 생명이 아닌 죽음의 가속 폐달을 밟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