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안주로 떠오른 임금님의 병환

[태종 이방원 69] 1차 왕자의 난 ②

등록 2007.04.07 10:53수정 2007.04.0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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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에서 천도한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은 신도에는 개경의 왈패들도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읍지에는 먹잇감이 있으니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뒷배를 봐주는 사람들이 권문세도가들이다. 이러한 먹이사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팔이'가 날뛰었으니까.

운종가에서 어슬렁거리던 왈패들도 자연스럽게 두 패로 갈렸다. 정도전 막하에 들어간 동방파와 이방원 수하에 들어간 서방파다. 누가 이름을 지어주어서 라기 보다도 경복궁을 중심으로 정도전이 동쪽에 살고 있고 이방원이 서쪽에 살고 있기에 그 졸개들이 상대를 비하해서 부를 때 그렇게 불렀다.


날치는 개경에서도 발이 빠르기로 소문난 왈패였다. 두 길 담장을 번개처럼 뛰어 오르는가 하면 칼을 겨누는 무뢰한의 면상을 발로 공격해서 칼을 떨어뜨리는 발차기의 명수였다. 그가 서방파에 들어가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 취월당에 드나드는 사람이 누구누구인지 알아오라는 것이었다.

취월당에 드나드는 자를 체크하라

이른 새벽부터 취월당 근처를 맴돌았지만 소득이 없었다. 대문 앞마당에 가마가 여러 대 있었지만 누가 타고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지체 높으신 분들이라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솟을대문 가까이 다가가니 문지기가 나른한 오수를 즐기고 있다. 고개를 꺾고 졸고 있는 옆모습을 살펴보니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어이 칠복이 자네가 여기에서 왠일이야?"

개경 십자로에서 같이 거들먹거렸던 왈패였다. 칠복이는 시전에서 놀았고 날치는 남문에서 놀았다. 개경에 두고 온 마누라를 꿈속에서 만났는지 입가에 흐르던 침을 손등으로 스윽 문지르며 배시시 웃었다.


"어, 날치 자네는?"
"돈벌이가 좋을까 해서 한양에 왔는데 별 볼일 없고 춥고 배고프구먼, 다시 개경으로 돌아가야 할 모양이야."

“이 사람아 오뉴월 삼복더위에 춥다하면 보신탕집 가마솥에 개가 웃겠네, 개경에서 여기까지 왔으면 한건 하고 가야지 그냥가면 뭐하나? 잠시만 기다려 보게, 여기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곧 세상이 뒤바뀔 거라 그러던데 그럴 때가 우리들에겐 호시절이지 않은가?”


"세상이 바뀌어봐야 있는 놈들에게나 좋은 세상이겠지, 우리같이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는 놈들이 무슨 좋은 세상 구경할 수 있으려구."

"저 안에서 기집 끼고 술 타작하는 정대감이 그러는데 백성들이 잘 살게 될 거라고 큰소리치던데."
"에끼 이 사람아, 그런 소릴 믿어? 죄다 지놈들 배 채우려고 하는 짓들이지."

"아니야, 이집 주인 대감도 그렇지만 정대감과 같이 술 퍼마시고 있는 세자 장인 심대감도 그렇고 판중추대감, 참찬대감, 흥성군영감, 성산군영감도 맞장구를 치던데."

"에끼 이 사람아 그런 세상이 어디 있어? 지 놈 들이나 잘 먹고 잘 살아라 하소."

날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술안주로 떠오른 임금님의 병환

취월당에서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정도전과 나는 새도 떨어뜨릴 세도를 부리고 있는 남은, 딸을 세자 방석에게 시집보내 일약 권세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심효생이었다. 그 외에 이들을 추종하는 판중추(判中樞) 이근, 전 참찬(參贊) 이무, 흥성군(興城君) 장지화, 성산군(星山君) 이직 등 이었다.

"전하의 환우가 심각하시다면서요?"
"그거야 다 아는 병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맞는 말씀이에요. 흐흐흐."

웃음소리가 임금을 조롱하는 듯했다.

"딸보다 더 어린 김원호의 딸을 궁인으로 들인지 며칠됐다고 또 유준의 딸을 들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랬다. 태조 이성계는 현비가 돌아간 5개월 만에 전 판사 김원호의 딸을 궁인으로 들이더니만 불과 3개월 만에 전 밀직 유준의 딸을 궁인으로 들였다. 술자리에 안주로 떠오른 태조 이성계의 병환은 명나라의 압박에 지쳐 병이 난 것이 아니라 젊은 여자를 너무 가까이한 나머지 양기가 소진하여 쓰러졌다는 뜻이다.

"대전 내시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원호의 딸은 하체가 부실한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유준의 딸을 매일 밤 불렀다 합니다."

"맞아요, 맞아, 내가 유준의 여식을 어릴 적에 본 일이 있는데 이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니게 보였어요. 무쇠도 녹일 만큼 강하게 보였어요. 하하하.”

"훗훗훗."
"히히히."

여러 사람의 웃음소리가 계곡을 메아리쳤다. 그리고 몇 순배의 술이 돌았다.

"참, 대궐에서 점쟁이를 불러다 점을 쳤다면서요?"
"전하의 환우가 심각하여 점쟁이를 불러다 점을 쳤는데 아, 글쎄 전하는 조만간 일어 나실거라는 점괘가 나왔고 세자의 배다른 형 중에서 천명(天命)을 받을 사람이 하나뿐이 아니라는 해괴한 점괘가 나왔다는군요."

기생을 희롱하며 술잔을 들고 있던 심효생이 술잔을 떨어뜨렸다. 세자의 배다른 형 중에서 천명을 받을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사위 방석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사위가 왕위에 오르면 이보다 더한 권세를 누릴 꿈에 젖어있는데 아찔했다. 마셨던 술이 확 깰 일이었다.

골목길로 사라지는 검은 그림자

“부성군은 왜 이리 걱정이 많으시오? 곧 마땅히 제거할 것인데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취흥이 고조된 좌중을 휘어잡으며 정도전이 말했다. 방원을 포함한 왕자들을 제거할 것인데 걱정할 것 없다는 얘기다.

“자, 자, 자, 농담들 그만 하시고 내 얘기를 주목하세요.”
좌중의 흐트러진 모습을 휘어잡으며 정도전이 말을 꺼냈다.

“이번 기사일(己巳日)에 거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전하의 병세가 위독하니 왕자들에게 들라 이르고 들어오는 데로 궁내의 건장한 노비와 갑사를 동원하여 요절내기로 했습니다. 시위패 없는 왕자들이 궁에 들어오면 독 안에 든 쥐 꼴 이지요.”

“교지를 어떻게 받아내시려고 그러십니까?”

“하하하,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시 조순과 김사행 그리고 좌부승지 노석주와 우부승지 변중량에게 손을 써놨으니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술 마시며 기다리다 그들이 척살되었다는 전갈이 오면 입궁하여 왕자들이 반역을 도모하였기에 척살하였다고 전하께 말씀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간드러진 기생들의 웃음소리와 낄낄거리는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소나무 사이로 퍼져 나갔다. 이 때였다.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검은 그림자가 두 길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골목길로 사라졌다. 이에 놀란 까마귀 한 마리가 퍼드득 날개 짓을 하며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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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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