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세월을 낚은 강태공의 노련한 용병술

[태종 이방원 81]개경을 휩쓴 피바람

등록 2007.04.26 17:17수정 2007.04.27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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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번은 역성혁명정권이 고려의 유민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치러진 과거 문과에 급제했다.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했던 안산을 평온케 하라는 명을 받고 안산군사로 있을 때 하륜의 천거로 ‘무인변란’에 참여했다. 문인답지 않은 용맹으로 공을 세워 방원의 최측근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의협심이 강하고 저돌적이어서 방원의 총애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비상상황에서 제일 앞에 있어야 할 사람이 맨 꽁무니에 쳐진 것이 부끄러웠다. 자신의 자존심에도 용납되지 않았다.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던 방원이 눈동자의 근육을 풀었다.


"알았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소생이 선봉에 서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숙번은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선봉에 서서 무공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군사가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저쪽에서 쏘는 화살에 우리는 화살 받이가 된다. 이지란장군은 군사를 거느리고 활동(闊洞)으로 들어가 남산을 타고 태묘(太廟) 동구에 이르도록 하시오. 이화는 군사를 이끌고 파자반(把子反)과 주을정(注乙井) 그리고 묘각(妙覺) 어귀에 군사를 매복하고 다음 명령을 기다려라. 숙번은 본대를 이끌고 선봉이 되어 숭인문으로 진공하라."

방원의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장수출신 무장도 아닌데 군사를 나누어 배치하는 용병술이 예사롭지 않다. 무골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서일까? 방원이 실전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성계가 남해안에 상륙한 왜구를 지리산에 몰아넣고 황산대첩을 일구어 낼 때 어머니의 서찰을 갖고 전장을 찾은 것이 전부다.

노련한 강태공의 용병술


여기에서 잠깐, 우리는 숨은그림찾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숙번이 과연 가장 늦게 합류했냐?’ 하는 점이다. 밤늦도록 술을 마셔 늦게 나왔다는 것은 배경설명을 하기 위한 멍석이었고 실록에는 분명 늦게 합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인변란’ 이후 좌숙번 우하륜으로 부상한 이숙번이 이토록 중요한 출정을 사전에 몰랐고 늦게 합류한 것이 사실이냐 하는 점이다.

조선 초기 실록의 신뢰도에 의문을 표하는 일부 학자들은 ‘무인변란’은 무장하지 않은 정도전과 방석을 무장한 방원세력이 기습하여 제압한 사건으로 전투가 아니다. 하지만 방간과의 투쟁은 대규모 군대를 동원한 시가전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대량학살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것을 축소 은폐하기 위한 개연성은 충분하다. 태조실록이 편찬되던 태종 3년은 하륜과 이숙번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고 하륜이 편찬했다.”고 실록 자체를 색안경을 끼고 본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실록에 문제가 있고 실록이 사실이라면 방원의 용병술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충성심이 강한자로 하여금 실수를 유발케 하여 능력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고무공 이론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압력을 받아 찌그러졌던 고무공이 튀어 오르는 반발심을 이용하여 능력을 배가 시키는 기막힌 전술이다. 7년간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은 노련한 강태공의 용병술을 엿볼 수 있다.

회심의 기회를 잡은 숙번이 본대를 이끌고 숭인문 쪽으로 튀어 나갔다. 선죽교에 이르자 척후병으로 내보낸 한규(韓珪)와 김우(金宇)가 말에 화살을 맞고 퇴각하여 도망오고 있었다.

"네 말이 죽게 되었으니 말을 바꿔 타고 앞으로 진격하라."

이숙번이 타고 있던 말을 내주며 고함을 질렀다.

"네 말은 상하지 않았으니 빨리 되돌아가서 싸워라."

한규를 화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적진으로 내보낸 숙번이 김우(金宇)를 질타했다.

"한 곳에 서서 쏩시다."

화살을 날리던 서귀룡이 말했다.

"나는 내(川) 가운데 서서 쏠 테니 저쪽 언덕에서 쏘도록 하시오."

선죽교가 걸쳐있는 백천(白川)을 사이에 두고 공방전이 벌어졌다. 숭인문을 선점하기 위한 전초전이다. 방원의 휘하 목인해(睦仁海)가 얼굴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했고 김법생(金法生)이 화살에 맞아 즉사했다.

매복 작전으로 재미를 본 방간

a 개성 선죽교의 봄. 북한 화가 홍석남의 작품이다.

개성 선죽교의 봄. 북한 화가 홍석남의 작품이다. ⓒ 홍석남

방원이 동대문 쪽으로 진출하리라는 것을 예견한 방간이 마정동(馬井洞)에 보졸(步卒) 40여명을 매복 시키고 전목동(典牧洞) 동구에 기병 20여기를 대기시켜놓아 방원의 피해가 컸다. 매복 작전에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이다. 하지만 맨 앞에 서서 군사를 지휘하는 이숙번을 꺼꾸러뜨리기 위하여 방간의 군사들이 집중 공략했으나 화살은 비켜나갔다.

정종임금은 대장군(大將軍) 이지실을 현장에 보내 방간에게 전투를 중지하게 하려 하였으나 화살이 비 오듯이 쏟아져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방간이 비록 성미가 광패(狂悖)하나 그 본심이 아니다. 반드시 간인(奸人)에게 매수된 것이다. 골육(骨肉)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정종 임금은 탄식했다. 곁에 있던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하륜이 아뢰었다.

"교서(敎書)를 내려 달래면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하륜에게 명하여 교서를 짓게 했다.

"부덕한 몸으로 종실과 대소 신하의 마음을 다하여 태평에 이를까 하였더니 뜻밖에 동복아우 회안공 방간이 무뢰한 무리의 말에 현혹되어 골육을 해치려하니 내가 심히 애통하게 여긴다. 방간이 군사를 해산하고 사저로 돌아가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교지를 내린 뒤에 곧 해산하지 않는 자들은 용서하지 아니하고 군법으로 처단하겠다."

좌승지(左承旨) 정구로 하여금 교서를 방간에게 전하도록 했다. 이무렵 상당후(上黨侯) 이저가 경상도 시위군을 거느리고 검동원(黔洞源)을 거쳐 묘련점(妙蓮岾)에 도착했다. 검동(黔洞)앞 노상에서 이저를 맞이한 방원이 시위군들에게 명했다

"만일 우리 형을 보거든 화살을 쏘지 말라. 어기는 자는 베겠다."

명을 받은 이저의 군사들이 이화의 군사들과 합동으로 남산에 오르며 (角)을 불자 방간의 군사들이 혼비백산 퇴각하기 시작했다. 허둥지둥 도망가는 방간의 군사 중에서 숙번이 한 사람을 지목하며 궁수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자 명중했다. 그는 방간의 조아(爪牙) 입속의 혀 이성기였다.

이 때였다. 목인해(睦仁海)가 탔던 말이 잔등에 올라탄 주인이 화살을 맞고 나딩구러지자 겁을 먹고 도망하여 자신의 마구간으로 돌아왔다. 이 말은 방원이 내준 말이었다. 깜짝 놀란 민부인은 싸움에 패한 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싸움터에 나아가 방원과 함께 죽으리라 다짐했다.

민부인이 대문을 박차고 나서자 이에 놀란 시녀 김씨(金氏)와 종 다섯 사람이 만류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이 때 종 한기(韓奇)가 대문을 들어서며 승전보를 알리자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들어갔다. 이 때 만류했던 시녀 김씨가 훗날 태종의 제2부인이 되어 경녕군을 낳은 효빈 김씨이며 민부인과 애증관계를 엮어간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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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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