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캠프의 '땅 따먹기'
'어부지리' 이재오, 대표급 최고위원?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이재오 사퇴 유보, 정치적 손익계산서

등록 2007.05.02 09:03수정 2007.05.0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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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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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의 공력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명쾌하게 규정했다. 한나라당 분열상의 본질은 "당권 경쟁"이라고 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선후보들이 당권 경쟁 때문에 서로 극단적인 자기 입장과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돌아보니 실제로 그렇다. 한나라당 내부 분열상의 핵심문제는 강재섭 대표 퇴진 여부였다. 이명박 캠프는 강재섭 대표를 공격했고 박근혜 캠프는 엄호했다. 강재섭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에 가까운 인물이고, 비록 일부나마 그에게 당권이 쏠려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두 캠프의 공방전은 '땅따먹기' 게임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땅따먹기' 게임이 혈전으로 번진 이유는 <한국일보> 지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빙이라고 했다.

지지 의원 숫자가 이명박 전 시장 58명, 박근혜 전 대표 44명으로 자체 분류되고 있다고 했다. 당원협의회 위원장의 경우 50대 50이라고 했다. 대의원의 경우 <한국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3월 실시한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 40%, 이명박 전 시장 38.6%였다고 했다.

엇비슷하다.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제3자에겐 재미 백배인 관전거리지만, 두 캠프로선 속 태우는 불안상태다.

'소리 없는 전쟁', 즉 의원 줄 세우기로도 우열을 확실히 가르지 못하던 차에 4·25재보선에서 참패했다. 팽팽한 균형 상태에 금을 긋는 결정적 계기가 만들어졌다. 공격과 엄호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게 있다. 온도차다. 강재섭 대표가 당 쇄신안을 발표하자마자 박근혜 전 대표는 즉각 수용 방침을 밝힌 반면, 이명박 전 시장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 전 대표가 4·25재보선 패배, 특히 최대 승부처였던 대전 서을의 패배가 이명박 전 시장의 행정중심도시 반대 언행 때문이었다고 즉각 공격에 나선 반면, 이명박 전 시장은 말을 아끼면서 이재오 최고위원의 사퇴를 만류하는 데 진력했다.

'이명박 비토론'으로 공세 나선 박 캠프, 관리 모드로 방어 나선 이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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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 오후 '4.25 화성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승리를 위한 한나라당 경기도당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당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왜 이렇게 온도차를 보인 걸까? <한국일보>의 한 구절에 주목하자.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상당한 격차를 두고 앞서 있었다"고 했다. 이게 첫째 이유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점이다.

이 두 사실을 종합하면 온도차가 왜 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강재섭 대표를 앞세워 당권을 장악하고도 이명박 캠프의 진공에 조금씩 땅을 내주던 박근혜 전 대표다. 4·25재보선 참패 책임론에 휘말리면 이 흐름이 거센 물살이 된다. 공격에 나서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공세 발판을 마련한다.

범여권 통합 여부에 따라 대선 승부처가 될지도 모를 충청권에 이명박 비토론을 유포하면 이명박 전 시장의 공격 무기, 즉 지지율을 끌어내릴 수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처지는 정반대다. 당권을 쥐지 않고도 당내 기반을 확대해왔다. 강재섭 대표, 박근혜 전 대표도 상처가 날 만큼 났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를 극한으로 내몰면 자신도 다친다. 비록 지지율이 하락세라고 해도 지리멸렬한 범여권 상태를 볼 때 아직 여유는 있다. 당장 급한 건 당내 흐름을 계속 살려가는 것이다. 지금은 관리할 때다.

이명박 전 시장이 이재오 최고위원의 사퇴를 막은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판을 깰 때가 아니라 관리할 때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이명박 전 시장의 사퇴 만류를 받아들인 것도 이채롭지 않다.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의 위상은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 자신이 '용단'을 내린 만큼 '대표급 최고위원'의 기세도 높일 수 있다.

휴전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국지전까지 배제하는 건 아니다. 최후의 진공을 위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전투는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이명박 캠프가 박근혜 캠프의 네거티브 공세 차단과 강재섭 대표의 중립적 경선관리, 그리고 국민경선제 확대를 당 쇄신의 핵심 요소로 꼽는 이유는 자명하다. 큰 판은 그대로 두되 실리는 최대로 챙기는, 국지적 차원의 땅따먹기다. 이를테면 철의 삼각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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