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도 일을 본 뒤 비데를 한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 36] 플라밍고 떼가 떠난 버린 마니아라 호수

등록 2007.07.08 11:52수정 2007.07.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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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나무 잎을 먹고 있는 기린가족. ⓒ 김성호

아프리카 여행 중 가장 흥미로운 세렝게티 사파리를 가는 날이다. 르완다의 루수모 국경을 건너 탄자니아 베나코를 거쳐 아루샤까지 2박 3일 동안 죽음의 길을 달려온 것도 아프리카 대초원의 동물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니 날씨가 쌀쌀하다. 오랜만에 비가 왔다. 내가 선택한 3박 4일짜리 세렝게티 사파리의 첫째 날은 마니아라 호수 국립공원을 구경하고, 둘째 날은 응고롱고로 보호구역 안의 응고롱고로 분화구, 셋째 날은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보고, 넷째 날 응고롱고로 보호구역 안의 마사이 부족 마을과 올두바이 계곡을 구경한 뒤 돌아오는 일정이다.

오전 9시, 사파리 차가 숙소로 와서 나를 태웠다. 이미 사파리 차에는 프랑스 출신의 60대 후반의 할머니와 젊은이 3명이 타고 있었는데, 같이 사파리를 할 여행객이다. 사파리를 하는 국립공원은 여행객의 안전과 동물보호 등을 위해 사파리 차량이 아니면 입장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사파리 회사를 통해 투어를 신청을 해야 한다.

프랑스 할머니는 혼자 온 여행객이었고, 젊은이들은 중동계와 중국계, 유럽계 출신 등으로 각각 미국과 캐나다, 영국으로 국적이 다른데 현재는 영국의 뉴캐슬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사이라고 한다. 사파리 차량의 운전사 겸 안내자는 피터라는 40대 중반의 남자였고, 요리사는 리처드라는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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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의 일종인 임팔라 무리. ⓒ 김성호

여행이란 뜻에서 유래된 사파리

운전사인 피터는 "멋진 게임 드라이브를 기대하라"며 "운이 좋으면 빅 파이브를 모두 볼 수도 있다"고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사파리(Safari)는 일반적으로 차를 타고 다니면서 야생동물을 구경하는 여행을 의미한다. 최근 자주 쓰이는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라는 말도 차를 타고 다니면서 동물을 본다는 뜻에서 사파리와 같다.

게임 드라이브의 '게임(Game)'이란 용어는 일반적인 의미의 놀이가 아니라 사냥감이라는 뜻이다. 사냥감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어 이제는 '동물'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아프리카 여행책자나 사파리 회사 광고 중에 자주 보게 되는 '빅 게임(Big Game)'이란 큰 경기라는 뜻이 아니라 바로 코끼리와 사자 같은 덩치가 큰 동물을 보는 것을 말한다.

피터가 말한 '빅5(Big Five)'라는 것도 '덩치 큰 동물(Big 'Game')' 다섯 종류를 말하는 것으로 사자와 코끼리, 아프리카 물소, 표범, 코뿔소를 의미한다.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응고롱고로 보호구역에 맞닿아 있는 마스와 게임 레저브(Maswa Game Reserve)는 바로 마스와 동물 보호구역이란 뜻이다. 탄자니아에는 셀루스와 키시고 등 많은 게임 레저브가 있는데, 모두 동물 보호구역이란 의미다.

아루샤 시내 숍라이트(Shoprite)라는 슈퍼마켓에 들러 각자 마실 생수와 주스 등을 산 뒤 외곽으로 조금 달리자 커피나무가 심어져 있는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이 나왔다. 탄자니아 역시 킬리만자로 주변의 아루샤와 모시 지방을 중심으로 커피가 유명하다.

1시간 정도 달리자 왼쪽으로 타랑기레 국립공원이 나오고 오른쪽 길로 빠져 다시 1시간 반을 더 달리자 마니아라 호수 국립공원 입구의 음토 와 음부(Mto Wa Mbu)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모기의 강'이라는 뜻의 음토 와 음부는 마니아라 호수 여행객을 위한 관광 마을이다. 많은 호텔과 야영장 등이 즐비한 곳이다.

우리는 은자케 잠보(NJake Jambo) 롯지 겸 캠핑장으로 들어갔다. 하루 숙박비가 미국 돈 60달러나 되는 2층짜리 고급 오두막집 형태의 롯지 옆 잔디밭에 싼 캠핑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사파리 회사에서 가져온 각자의 텐트를 잔디밭에 하나씩 설치했다. 아프리카에는 이처럼 여유 있는 여행객을 위한 고급 롯지와 가난한 여행객들을 위한 싼 캠핑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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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 모양의 열매가 달려 있는 소시지 나무. ⓒ 김성호

아프리카 호수에는 언제나 나비가 있다

텐트를 친 뒤 우리는 차를 타고 마니아라 호수(Lake Manyara) 사파리에 나섰다. 5분 정도 달리자 마니아라 호수 입구가 나타났다.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차가 들어서자 공원 매표소 입구에 오래된 바오밥 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처럼 서 있었다. 매표소 입구에는 '히치하이커의 입장을 금지한다'는 팻말도 붙어 있었다. 사파리 차량을 얻어 타려는 자동차 편승 여행자의 출입금지 게시판이다.

분지에 물이 고여 생긴 호수인 마니아라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나비였다. 우간다의 상가 도로의 나비 숲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하얀 나비와 노란 나비가 춤을 추듯 날갯짓을 하며 숲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날개를 나풀나풀 움직이는 나비의 모습이 평화롭다.

나비는 늘 여행객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하늘을 나는 나비를 보면 훨훨 날아오르는 풍선을 보는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프리카에서 호수가 있는 곳에는 늘 나비가 있다. 우간다 상가 지역의 음부로 호수도 그렇고, 이곳 마니아라 호수도 그렇다.

도로 왼쪽으로는 수세미나 소시지 모양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신기한 나무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수세미 나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데, 외국인들은 소시지 모양의 열매라는 뜻에서 '소시지 나무(Sausage Tree)'라고 부른다. 원숭이나 코끼리, 기린 등은 소시지 모양의 이 열매를 먹지만, 약간의 독성이 있다 보니 사람들은 먹지 않고 고약 형태의 치료제로 관절염과 뱀 물린 데에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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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강물에서 일을 본 뒤 비데를 하는 코끼리. ⓒ 김성호

물과 흙으로 비데를 하는 코끼리

좀 더 울창한 숲 사이로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무엇을 하나 살펴보니 계곡물을 흠뻑 마신 뒤 파란 똥을 함빡 싼다. 코끼리도 부끄러운지 일 볼 때는 잘 보이지 않는 숲속으로 들어가나 보다.

파란 작은 언덕을 만들 정도로 큰 흔적을 남긴 코끼리는 어슬렁거리며 숲 속에서 나오더니 코로 물을 담아 온몸에 뿌려 비데를 한다. 물 다음으로는 흙으로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려면 물과 흙을 거꾸로 해야 할 텐데 물로 씻은 뒤 흙으로 더럽히는 것은 코끼리식 샤워인가보다. 비데를 하는 것인지, 샤워를 하는 것인지 어떻든 코끼리는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물론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벌레나 곤충, 새들을 내쫓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우산처럼 펼쳐진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보였는데, 운전사 피터는 "사자가 가끔 올라가 쉬는 나무"라고 설명했다. 피터는 "아주 운이 좋으면 사자가 나무에 올라가 쉬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했으나 우리는 그런 행운을 갖지 못했다.

이곳 마니아라 호수는 나무 타는 사자와 한낮에 뭍에 올라와 쉬고 있는 하마로 유명하다. 다른 곳의 사자는 표범과 달리 나무에 잘 오르지 않고, 하마도 낮에는 주로 물속에 있는데 이곳의 사자와 하마는 특이하기 때문이다.

엄마 코끼리와 새끼가 풀을 먹다 사파리 차량 소리에 숲 속으로 몸을 숨긴다. 코끼리가 몸을 숨긴 숲 속에는 영양의 일종인 임팔라 10여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한 마리의 수컷만 큰 뿔이 있고 다른 여러 암컷들은 뿔이 없다. 임팔라가 가젤과 다른 것은 바로 수컷에만 뿔이 있다는 것이다. 임팔라는 보통 건기 때에는 한 마리의 수컷과 15∼20마리의 암컷으로 작은 집단을 만드는데, 간혹 암수가 100마리나 되는 대집단을 이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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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 올라와 벌렁 드러누워 자고 있는 마니아라 호수의 하마들. ⓒ 김성호

하마가 물속에서 사는 이유는

임팔라를 뒤로 하고 호수가 있는 습지로 차를 몰았다. 다른 사파리 차량 3대가 습지 근처에서 이미 모여 있었다. 하마들이 많이 살고 있어 '하마 연못(Hippo Pool)'이라 불리는 곳이다. 얕은 늪에서 뭍으로 올라와 배를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 하마의 모습이 마치 둥근 바위 돌이 솟아 있는 것 같았다.

더 가까이 가서 보니 30여 마리의 하마들이 점심을 먹은 뒤 낮잠을 자는 듯 바닥에 누워 있고 한 마리만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마치 적의 공격에 대비해 경계를 서는 경비병처럼 보였다.

하마는 대개 한낮에는 강이나 늪 속에 눈과 코, 귀만 내놓고 지내다 밤이 되면 뭍으로 올라와 풀을 뜯어 먹는 초식동물이다. 그런데 이곳 마니아라 호수의 하마만이 무슨 이유인지 낮에도 자주 뭍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곤 한다.

하마가 물속에 주로 있는 이유는 피부가 약하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강렬한 햇볕에 바로 더위를 타는데다, 뚱뚱한 몸무게 때문에 뭍보다는 물속이 생활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하마의 몸무게는 3∼4톤이나 나가니 땅 위에서 생활하기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하마는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에는 사람이든 사자 든 무자비하게 공격하는데, 실제는 푸른 풀만을 먹고 사는 채식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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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서 바라다본 마니아라 호수의 모습. ⓒ 김성호

플라밍고 떼가 떠나 버린 마니아라 호수

하마 옆에서는 플라밍고(홍학)와 펠리컨, 아프리카대머리황새(Marabou Stork), 이집트 거위 등 100여 마리의 물새들이 먹이를 쪼고 있었다. 특히 플라밍고는 얕은 물가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열심히 부리를 물속에 집어넣다 뺏다 하면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주인공 카렌과 연인 데니스가 쌍발 경비행기를 타고 나쿠루 호수 위를 날자 덩달아 날아오르던 플라밍고 떼와 같은 많은 무리를 볼 수는 없었다.

지난 1997년과 1998년 엘니뇨 이상기류에 의한 홍수로 마니아라 호수의 물의 소다성분이 희박해지면서 많은 플라밍고 떼가 다른 곳으로 떠났다. 플라밍고는 소금기가 있는 소다 성분이 있는 호수에서만 서식하기 때문이다. 마니아라 호수는 옛날 케냐의 나쿠루 호수나 보고리아 호수, 탄자니아의 나트론 호수와 함께 수십만 마리의 플라밍고 떼가 모여 사는 동아프리카의 4대 플라밍고 집단 서식지였다.

나는 이곳 마니아라 호수와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 채우지 못했던 플라밍고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의 마지막 여행지인 나미비아의 웰비스 베이 바닷가까지 달려갔다. 나는 그곳에서 멀리서 나마 수십만 마리의 플라밍고 떼가 불그스름한 하얀 목화밭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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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 혼자 외로이 서 있는 기린. ⓒ 김성호

기린은 왜 목이 긴데도 땅에 닿을 수 없을까

하마 연못에서 돌아오는 데, 저 멀리 초원에서 기린 한 마리가 긴 목을 쭉 빼어 어딘가 먼 곳을 쳐다보고 있다. 다른 짝을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고독을 즐기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외로워 보이는 기린이다. 초원을 지나 수풀 지대로 나오자 여섯 마리의 기린이 옹기종기 모여 긴 목을 이용해 커다란 나무의 잎을 따서 먹고 있었다.

이곳 마니아라 뿐 아니라 세렝게티 등 대부분의 탄자니아 기린은 그물무늬 기린과 달리 담쟁이덩굴 잎을 뭉개놓은 듯한 얼룩무늬가 있는 마사이기린이다. 마사이족이 '트위가(Twiga)'라고 부르는 기린은 키가 5m 이상이나 되는 가장 큰 동물이다.

키가 큰 기린이 목을 땅에 댈 수 없는 것은 목뼈의 크기에 비해 그 수가 적기 때문이다. 기린의 목은 2m가 넘는데 목뼈는 5cm 정도인 사람과 같은 7개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구부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기린의 목이 길다고 편한 것만은 아니지만, 기린은 자신의 큰 키를 이용해 다른 동물들이 닿지 못하는 높은 나무의 잎을 먹고, 멀리 보고, 뒷발차기로 포식자들을 물리친다. 이처럼 모든 동물은 야생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생존방식을 타고났다. 기린이 큰 키라면, 코끼리는 큰 덩치, 사자는 날카로운 이빨, 치타는 빠른 속도, 하이에나는 집단의식이다.

사람도 각자의 재능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동물이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살아가듯이, 사람도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아실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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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줄기에서 곤충을 찾고 있는 호로새. ⓒ 김성호

마니아라 호수의 절벽은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의 장관

오후 3시께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캠핑장으로 돌아오는데, 커다란 나뭇가지 줄기 위에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곤충을 찾느라 분주하다. 이마에 붉은 볏과 목 부분에 푸른 털, 날개에는 에메랄드빛 무늬가 점점이 박혀 있는 호로새(Guinea fowl)이다. 꿩 같기도 하고 닭 같기도 한 호로새는 색시닭이라고도 불리는데, 한 마리가 울어대면 여러 마리가 시끄럽게 합창을 하듯 소리를 낸다고 한다.

캠핑장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오후 4시께 다시 마니아라 사파리에 나섰다. 요리사 리처드는 우리가 사파리 하는 동안 캠핑장에 남아서 식사를 준비했는데, 닭고기와 감자튀김, 채소, 바나나 등이 먹을 만했다.

오전 1차 사파리가 하마 연못 탐험이었다면, 오후에 가는 2차 사파리는 마지모토(Maji Moto) 온천 지역 탐험이다. 마지모토라는 말 자체가 스와힐리어로 '뜨거운 물'이라는 뜻.

호수 입구에서 사파리 차를 타고 마지모토를 향해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마니아라 호수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절벽이 솟아있다.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의 동부지구대의 한 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절벽이다. 오른쪽 절벽 위의 지구대를 따라가면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연결되어 있고, 그 너머에 세렝게티 초원이 펼쳐진다.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에서 내려온 동부지구대가 나트론 호수를 거쳐 마니아라 호수까지 내려왔다. 이 동부지구대는 마니아라 호수에서 다시 말라위 호수로 뻗어내려 가면서 서부지구대와 합쳐진다. 마니아라 호수의 절벽은 대지구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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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다시 가로 질러 가는 개코원숭이 떼. ⓒ 김성호

보병의 장거리 행군처럼 길을 건너는 개코원숭이 떼

마지모토 은도고(Ndogo)라는 작은 온천 지역 가까이 왔을 때 수백 마리의 개코원숭이가 무리를 지어 도로를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집단으로 이동하다 보니 사파리 차량들도 개코원숭이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프리카 여행 중 이처럼 많은 개코원숭이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보병의 도로 장거리 행군을 떠올리게 했다. 원숭이 떼라기보다는 원숭이 군단이라고 해야 적합하다. 원숭이 무리가 200∼300마리는 되는 것 같으니 군대로 치면 대대급 규모의 병력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덩치가 큰 수컷 원숭이 한 마리가 앞장서서 달리자 다른 무리들이 일제히 뒤따라 쫓아가는데, 새끼가 어미 등 꼬리에 기마자세로 올라타 이동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개코원숭이는 개의 코처럼 길쭉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개의 코와 비슷하다. 우리말로는 비비라고도 하는데, 영어로는 바분(Baboon)으로 불린다. 마니아라 호수는 개코원숭이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여기저기 많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길을 건너왔던 우두머리 수컷이 방향을 돌려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다른 무리들도 수컷을 따라 되돌아가기 위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앞으로 가려는 원숭이와 뒤돌아가려는 원숭이들이 한데 엉켜버린 것이다.

수컷 원숭이의 회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두머리의 지휘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개코원숭이를 보니 잘 훈련된 군대집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운전사는 "개코원숭이는 코 모양뿐 아니라 항상 꼬리를 쳐들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개코원숭이는 정말 꼬리를 엉덩이에서부터 위쪽으로 쳐들고 걷는 것이 다른 원숭이와 확연히 구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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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그늘에 쉬고 있는 숫사자. ⓒ 김성호

사자가 낮에 잠만 자고 밤에만 사냥하는 이유

호수 깊숙한 곳에 있는 큰 온천인 마지모토에 거의 다다를 무렵 예닐곱 대의 사파리 차량이 한군데 모여 있었다. 뚜껑이 열린 차량 위로 여행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진기를 꺼내들어 무언가를 찍고, 망원경을 꺼내 열심히 보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 밑의 풀밭에 갈기가 있는 수사자 한 마리가 더위를 피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배는 땅에 대고 머리는 꼿꼿이 쳐든 자세로 앉아 있는 수사자가 오히려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 위를 올라간다는 그 유명한 마니아라 호수의 사자이다. 우리는 사자가 나무 위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기 위해 한참 동안 기다렸으나 끝내 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자는 사냥을 하기 위해 어둠이 짙게 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자는 해가 지면 어둠의 저승사자로 나선다. 어둠 속에서 사람보다 6배나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야간 기습작전으로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 사자의 눈의 망막 뒤쪽에는 빛을 반사하는 층이 있어 어둠 속에서도 눈에서 빛이 나고, 동공도 훨씬 크게 열리기 때문에 희미한 빛과 동물들의 움직임을 재빨리 포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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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양의 일종인 귀여운 스틴복. ⓒ 김성호

동물들도 온천욕을 하나?

오후 6시가 되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사자와 주둥이 근처의 코끝에 두 쌍의 혹이 난 야생 혹멧돼지(Warthog)들도 숲 속에서 나와 어슬렁거리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작은 영양의 일종인 귀여운 스틴복(Steenbok, Steinbuck)이 숲 속에서 나오다 사파리 차량이 신기한 듯 빠끔히 쳐다본다. 콧잔등에 검고 쐐기모양의 흰 표적이 있다. 귀여운 스틴복은 작고 곧은 뿔이 나 있는 수컷이었다.

마지모토 온천 지역의 주변은 흙은 물렁물렁했다. 코끼리와 물소, 사자 등의 동물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물을 마시러 오는 것인지, 아니면 동물들도 밤에 몰래 온천욕을 하러 오나 보다.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지각균열에 의해 생긴 온천이다. 지구대의 깊은 곳에서 발산되는 뜨거운 물이 바위 틈새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다. 마지모토 온천의 물은 60℃나 되어 계란을 물속에 그대로 넣으면 삶아질 정도로 뜨겁다.

마니아라 호수는 풍부한 물과 작은 초원, 밀림이 어우러져 다양한 야생 동물들과 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본격적인 사파리 장소인 응고롱고로와 세렝게티로 가기 전 맛볼 수 있는 작은 사파리의 최적지이다.

마니아라 사파리를 마친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마사이 중앙 시장'이라는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전통 공예품 등을 파는 크고 작은 기념품점 등으로 가득했다. 다양한 아프리카 장식품과 조각품, 액세서리, 동물조각품, 마사이족 조각, 천연색 옷감 등을 팔고 있었다. 나도 한 기념품점에서 길쭉한 마사이족 여성의 얼굴이 새겨진 작은 나무 목걸이를 3500실링(3000원)을 주고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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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숙소 직원인 마사이족 출신의 크리스티나(왼쪽)와 제임스. ⓒ 김성호

아프리카의 나이트클럽은 어떤 모습일까

저녁을 먹고 텐트에서 쉬고 있는데 영국 대학생 3명이 맥주를 마시러 간다며 나를 불러냈다. 캠핑장에서 일하는 마사이족 출신의 여자 직원 크리스티나와 남자 직원 제임스 등과 함께 시장 근처 술집을 간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할머니만이 몸이 불편하다며 텐트에서 쉬었다.

영국 대학생들이 간 곳은 맥주를 마시면서 춤을 추는 나이트클럽이었다. '마니아라 호수 나이트클럽(Lake Manyara Night Club)'이란 간판이 걸려 있는 작고 허름한 곳이었다. 시골 관광지 마을의 나이트클럽답게 시멘트 바닥에 간이 건물식으로 철제 지붕을 올린 비닐하우스 같다고 해야 할까.

춤추는 무대도 가운데에 있는 흙을 파서 낮은 네모난 분지처럼 만들었다. 무대보다 높은 사방으로 테이블과 좌석들이 몇 개씩 놓여 있어 손님들이 앉아서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해 놓았다. 주로 아프리카 젊은 남녀 40∼50여명이 춤을 추고 있었다. 레게 음악풍의 노래가 나오자 술을 마시던 젊은이들이 무대로 내려가 춤을 추는데, 크리스티나는 "탄자니아 댄스 음악"이라고 했다.

크리스티나는 맥주를 한잔 마시자 마사이족의 열정적인 성격만큼이나 우리를 위해 무대에 나가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이와는 달리 제임스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춤을 추려 하지 않았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아프리카인들의 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음악이 아프리카인들의 율동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천부적인 그들의 몸짓이 어떤 음악에도 어울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프리카인과 음악은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아공의 유명한 댄스 뮤지컬 <우모자(Umoja, 공동체 정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온몸을 이용하는 아프리카인들의 격정적인 춤은 힘과 생명의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삶 자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일상의 노동과 춤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결과이다. 케냐 나이로비의 '보마스 오브 케냐' 기예단의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묘기와 마사이족의 하늘을 향해 껑충껑충 뛰는 춤 등은 아프리카 춤의 자연스러움과 힘을 보여준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가야하기 때문에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텐트의 침낭 속으로 들어가니 포근했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야외 캠핑장에서의 텐트 생활이다. 젊은 시절 텐트를 짊어지고 지리산과 해인사 등 우리나라 서부종단 배낭여행을 갔던 때가 생각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텐트 속으로 빗물이 들어와 온몸이 흠뻑 젖어 추위에 덜덜 떨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당시는 우리나라도 기차와 시골 버스를 타거나 먼 거리라도 배낭을 메고 도보여행을 해야 했다. 기차 여행과 도보 여행은 어느새 승용차 여행으로 바뀌었고, 텐트 여행은 호텔 여행으로 변해갔다. 나는 젊은 시절 이후 오랫동안 잊었던 텐트 여행의 즐거움을 아프리카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아프리카 여행 #탄자니아 #마니아라 호수 #하마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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