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에는 싸리비 하나 만들렵니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38] 싸리꽃

등록 2007.08.08 18:19수정 2007.08.0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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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한계령에서 ⓒ 김민수

한계령, 그곳에 싸리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장맛비가 내리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사이 바람을 타고 구름이 몰려왔다 몰려가곤 하면서 한 폭의 수묵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 수묵화에 짙어가는 연록의 빛이 은은하게 깔려있고, 그 연두의 빛 속에 작은 보랏빛이 은은하게 퍼져있었습니다. 싸리나무의 꽃이 그 보랏빛의 근원이었습니다.

싸리나무는 콩과의 식물로 흉년에는 구황식물이 되기도 했었지요. 봄에 올라오는 어린 싹은 나물로 먹고 씨는 갈아서 죽으로 먹거나 밥에 섞어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용도보다 싸리는 줄기들이 이모저모로 우리의 생활에 많이 사용되었지요. 싸리비뿐 아니라 싸리나무로 엮은 나지막한 담장에서부터 소쿠리를 만드는 세공재료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량이 높고 연기가 나질 않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던 시절에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회초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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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우리나라의 대표적 운반연장의 하나로 사용되던 지게가 있습니다. 지게는 양다리 방아와 더불어 우리가 발명한 가장 우수한 연장의 하나라고 합니다. 지게로 자잘한 짐들을 운반할 때 싸리로 만든 소쿠리를 지게 뒤에 얹어 많이 사용을 했지요. 그뿐 아니라 싸리비로 마당이나 봉당을 쓸면 생선가시처럼 가지런한 결이 바닥에 생기고 그를 통해서 그 집에 사는 분들이 얼마나 정갈한 분들인지 가늠하기도 했지요.

함박눈이 내린 겨울날 아침 싸리비로 눈을 쓸어내면 곧은 가지로 인해 여느 빗자루로 눈을 치우는 것보다 수월하게 길을 낼 수가 있었습니다. 싸리비는 사용한 만큼 닳아서 점점 키가 작아지지요. 그러면 헛간이나 재래식화장실에 두고 사용을 하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불쏘시개로 사용했지요. 화장실이나 헛간에 있는 몽당싸리비는 귀신이 된다고 해서 늦은 밤 화장실 갈 때 오금을 저리게 하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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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에서 ⓒ 김민수

그런데 오늘날에는 싸리가 구황식물로 사용되는 것도 아니고, 어린 싹을 나물로 먹는 일도 드물고 우리가 사용하는 연장 중에서 싸리로 만든 것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싸리비 대신 깎아 만든 나무봉에 플라스틱을 달아 만든 빗자루가 사용되고 있고, 그 외에도 많은 부분 플라스틱이 싸리의 역할을 잠식해 버렸습니다.

물론 싸리뿐 아니라 자연을 이용한 다른 세공품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면서 우리의 생활은 더 편리해졌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도 그만큼 더 행복해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그들과 멀어진 만큼 우리의 삶도 팍팍해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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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올 가을에는 싸리비를 하나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싸리비로 쓸어 낼 마당은 없지만 싸리비를 만들면서 생선가시가 성성한 유년시절의 마당을 떠올리기도 하고 작게 만들어 장식용으로 걸어놓고 내 마음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쓸어내는 용도로 사용하렵니다. 싸리비 만드는 방법을 아시는 아버님을 졸라서 전수를 받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싸리비 만드는 방법을 전수해 주어야겠습니다.

그 옛날 나지막하게 싸리로 만든 담장들이 그립습니다. 도둑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이웃과의 자연스러운 경계를 그어놓고 편안하게 이웃집 마당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그립습니다. 정갈하게 싸리비로 정돈한 마당만 보아도 살림살이가 어떨 것이라 짐작이 가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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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 김민수

그들은 우리 산하 어디에나 피어있습니다. 어쩌면 그들도 옛날을 그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소통을 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꿈을 하나 꿔봅니다.

아침이면 싸리비로 정갈하게 쓸 수 있는 작은 흙마당을 가진 집, 마당 한 켠에 식구들 상에 올릴 채소들이 있고, 툇마루가 있어 비오는 여름날이면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차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집을 꿈꿔봅니다.

이 시대에 너무 요망진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꿈을 꾸는 것마저 못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습니까?
#싸리나무 #싸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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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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