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배꼽에도 꽃이 피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40] 며느리배꼽

등록 2007.08.16 14:22수정 2007.08.17 23:0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며느리배꼽의 꽃, 연녹색의 작은 꽃을 피운다. ⓒ 김민수

마디풀과의 며느리배꼽은 턱잎이 둥근 배꼽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배꼽 모양을 닮았는데 하필이면 '며느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며느리밑씻개와 줄기와 이파리 모두 흡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유말고도 옛날 며느리가 만만하던 시대에 뭔가 궁색하고 하찮은 것들을 며느리와 연관시킨 점도 있을 것입니다.

'며느리'라는 이름이 붙은 꽃에는 꽃며느리밥풀꽃, 애기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밑씻개 등이 있는데 그 꽃들 모두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며느리배꼽에 대한 특별히 전해지는 전설은 없지만 만든다 해도 며느리와 관련된 꽃들이 가진 전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조금 슬퍼 보이는 꽃입니다. 그래서 꽃도 여간해서 보기가 힘든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은 피었으되 없는 것 같은 존재, 살림이라는 큰일을 하면서도 없는 존재처럼 지내야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a

꽃이 피었나 싶으면 이내 둥글둥글 열매가 된다. 그래서 며느리배꼽의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 김민수

며느리배꼽의 열매가 보랏빛으로 익으면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계절의 가고 옴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가도 며느리배꼽이 익어가기 시작하면 '가을이구나!' 계절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지난 여름 누눈가가 며느리배꼽의 꽃을 찍어 보여주었습니다. 그제야 열매가 있으니 당연히 꽃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고, 며느리배꼽의 덩굴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피어 있는 꽃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연록색의 작은 꽃, 수 없이 많은 녹색 이파리에 밀려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줄기마다 낚시처럼 생긴 잔가시들로 인해 가까이 가기도 쉽지 않은 풀이니 꽃이 있으되 꽃이 있다고 보여주지도 못한 것이겠지요.

'며느리'이름이 붙은 꽃은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반면에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의 꽃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장모님의 사위사랑이 듬뿍 묻어 있습니다. 사위가 무거운 짐을 질까 툭툭 끊어지는 덩굴로 질빵을 만들어주는 장모님의 배려, 그런 배려가 며느리와 사위를 가리지 않아야겠지요.

a

며느리배꼽의 익어가는 모습, 꽃보다 더 아름다운 빛깔을 간직하고 있다. ⓒ 김민수

익어가는 며느리배꼽의 열매는 참 예쁩니다. 보랏빛으로 익어가는 열매를 보면 저는 잉태한 산모를 떠올립니다. 생명을 품고 있는 여인의 배처럼 신비스러운 것이 있을까요?

어린 시절 며느리배꼽의 이파리와 며느리밑씻개의 이파리를 따먹곤 했습니다. 연한 이파리를 따서 씹으면 신맛이 입안에 가득했지요. 지금도 생각만 하면 입에 침이 가득고입니다. 경기도 사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영'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지요. 시어서 시영이라고 하나보다 그랬고, 며느리밑씻개와 꽃은 달라도 줄기며 작은 가시로 달라붙은 성질까지도 비슷해서 그 꽃이 그 꽃인가 했습니다.

며느리밑씻개의 꽃도 작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분홍빛으로 모여서 피어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며느리밑씻개의 꽃은 많이 봤는데 열매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며느리배꼽을 보면서 꽃의 기억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a

줄기에 있는 가시들은 낚시바늘 같다. 연한 이파리를 따먹으면 신맛이 난다. ⓒ 김민수

손질이 안 된 어느 무덤을 며느리배꼽이 무성하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시부모님의 무덤보다는 친정부모들의 무덤에 피어난 며느리배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집살이를 하느라 친정부모들에게 효도하지 못한 아쉬움을 담아 돌아가신 후에라도 넋이 되어 그 무덤을 감싸고 있는 듯 느껴졌지요.

밭일을 하거나 산행을 할 때 맨살에 며느리배꼽의 줄기가 닿으면 상처가 나는 것도 그렇지만 자잘한 가시들이 박혀서 따끔거립니다. 긴 바지나 소매가 긴 옷을 입고 가면 바지나 소매에 착 달라붙어서 뿌리가 뽑히도록 따라올 때도 있지요. 얼마나 정이 그리웠으면, 사람이 그리웠으면 그럴까 싶기도 합니다.

며느리배꼽,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이 제법 오래된 뒤에야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이제야 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합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가까운 들녘에 나가 며느리배꼽의 보랏빛 열매를 보면서 가을을 느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운이 좋다면 이제 막 피어나는 작은 꽃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에 잠시 눈길을 준다고 우리 삶이 뒤처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친 삶에 활력을 주지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낙동강 해평습지서 '표범장지뱀' 본 전문가 "놀랍다"
  2. 2 "도시가스 없애고 다 인덕션 쓸텐데... '산유국 꿈' 경쟁력 없다"
  3. 3 윤석열 정부 따라가려는 민주당... 왜 이러나
  4. 4 껌 씹다 딱 걸린 피고인과 김건희의 결정적 차이, 부띠크
  5. 5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