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게나. 어서 일어나게."
조유만이 부스스 일어나니 이제 막 해도 뜨고 있었다. 조유만의 주위에는 가죽 흉갑을 입고 말을 끌고 온 박산흥과 한량들이 몰려와 있었다.
"자네들이 이 이른 때에 어인 일인가?"
"이 사람 저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가?"
조유만이 귀를 기울여 보니 멀리서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와 함성소리가 때때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 친구 잠이 덜 깼구먼. 왜군이 이리로 진군해 오고 있네."
"뭐!"
조유만은 허겁지겁 일어나 총통을 찾아서 들고 벌떡 일어섰다.
"아서게 아서. 그런 걸로 뭘 어떻게 싸우겠다는 건가? 마필이 없는 이들은 모두 이곳에 머무르라는 명이 내려졌네."
조유만은 약간 맥이 빠져 괜히 손에 든 총통을 칼처럼 허공에 휘둘러보았다.
"총통을 든 이들은 뒤쪽으로 가라는 명이 있었네. 아마 거기에 화병(취사병)들이 밥도 지어 놓았을 걸세. 우리는 마필을 받으며 일찌감치 밥을 먹어두었네."
"알겠네 알겠어. 부디 몸성히 다녀오게."
"자네나 조심하게 이 친구야. 총통소리에 놀라 오줌 지리지 말고 하하하!"
짓궂은 농담을 하며 등을 돌려 멀어져 가는 박산흥을 보며 조유만은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만 같은 불길함에 사로잡혔다. 그런 마음이 전해졌을까. 박산흥은 다시 한 번 조유만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마치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는 것 같이 보일까봐 돌아보지 않았다. 박산흥과 한량들이 말을 끌고 도달한 벌판에는 신립과 김여물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창억을 비롯한 초관들이 모여 있는 기병들을 나누고 있었다.
"너희들은 제일 마지막 열로 가라."
강창억은 박산흥과 한량들을 제일 마지막 대열에 편성시켰다. 총 4천의 기병은 4개 대열로 나뉘었는데 선두인 제1대에는 강창억이 앞장서서 왜군의 기세를 꺾어놓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모두 들어라!"
신립이 중심에 있는 높은 바위 위에 올라 임금에게 하사받은 보검을 뽑아들며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박산흥과 한량들은 신립의 모습을 가까이에서는 처음 보는 지라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비록 지금 삼도의 원군은 도달하지 않았고 적의 수는 많다! 허나 우리가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면 먼 길을 달려오느라 지친 왜군을 맞이해 승리하지 못할 까닭은 없느니라! 싸움에 임해 물러서는 자는 내가 직접 참(斬 : 베다)할 것이니라! 큰 전공을 세운 자는 후히 포상할 것이니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짓쳐 나가라!"
신립은 구불구불한 수염을 떨며 목이 찢어져라 크게 외쳤다. 4천의 기병들은 신립의 독려에 크게 소리를 지르며 기세를 올렸다. 기병들의 함성소리를 들은 뒤쪽의 4천 궁, 보병들도 함성을 질러 그들을 응원했다. 그들의 뒤쪽에는 유유히 흐르는 달래강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뢰오! 적의 병력 백여 명이 이쪽으로 진군해 오고 있습니다!"
신립은 김여물을 불러 깃발을 쥐어주고서는 명했다.
"그대를 선봉으로 삼을 것이니 나아가 적의 기세를 꺾어라!"
김여물은 눈을 부릅뜨고 깃발을 받아 들고서는 강창억과 함께 천기의 기병을 대동하고 넓게 포진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앞에는 백 명의 왜군 궁수가 사각형의 대오를 유지한 채 조심스럽게 진군하고 있었고 그 뒤에는 수많은 왜군이 도열해 있는 본진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 나가라! 적을 무찔러 버려라!"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은 김여물의 호령소리와 함께 조선 기병은 지축을 울리며 왜군을 향해 돌진해가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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