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비핵화가 아니라 관계정상화

등록 2007.09.03 12:06수정 2007.09.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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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부터 이틀간 제네바에서 진행된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제2차 회의에서 중요한 성과물이 나왔다. 북측은 연말까지 모든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모든 핵프로그램을 신고하는 대신, 미국은 관계정상화 등의 상응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한국 언론들은 관계정상화가 아닌 비핵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물론 6자회담의 의제가 ‘비핵화’라서 핵문제가 자연히 관심의 초점이 되는 측면은 있지만, 비핵화에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타당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동족인 북측이 비핵화 대신 관계정상화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관계정상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관계정상화가 아닌 비핵화에 초점을 맞출 경우 북미관계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향후 동북아 구도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뚜렷한 철학적 바탕 없이 한국 언론들이 관계정상화 대신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면, 한국 언론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될 수 있다.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어떤 이유에서 북미관계의 핵심을 비핵화가 아닌 관계정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두 나라의 적대적 관계는 결코 북핵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제1차 핵위기(1993년)와 제2차 핵위기(2002년 이후)는 전체 북미관계 속에서 동떨어진, 어떤 독립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두 차례의 핵위기는 1945년 이후 북미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북핵이 쟁점화된 제1차 핵위기 이전에도 북·미 양국은 치열한 상호대결을 펼쳤다. 다시 말해, 두 나라는 북핵문제가 없었던 시대에도 지금보다 더한 대결을 벌였던 것이다. 이는 두 나라 사이의 근본문제가 북핵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1945년 이래 오늘날까지 두 나라가 대결을 펼치는 이유는, 미국은 동북아에서 자국의 패권을 확대하려 하고 이에 맞선 북측은 주권과 자주성을 지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전과 응전의 양상이 두 나라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1950년대부터 동북아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였지만, 핵무기는 대결의 수단이고 핑계일 뿐 결코 그 본질은 아니다.

 

두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싸운다면, 그 싸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몽둥이인가? 그것은 아니다. 이 경우에 문제의 본질은 두 사람 간의 갈등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향후 과제는 두 사람 간의 관계회복이지 몽둥이 제거가 결코 아니다. 갈등이 사라지고 관계가 회복되면 몽둥이는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

 

마찬가지다. 북·미 대결의 핵심도 ‘몽둥이’가 결코 아니다. 그 핵심은 미국의 도전과 북측의 응전으로 인한 적대적 관계이며, 이 같은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는 관계정상화가 또 다른 핵심이 된다. 그리고 관계정상화만 이루어지면, 더 이상 ‘몽둥이’가 두 나라 사이에서 표면적 문제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의 북미관계가 1945년 이후 북미관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때에, 북미관계의 핵심은 도전 및 응전으로 인한 적대적 관계이며 그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는 관계정상화가 또 다른 핵심이 된다. 핵무기는 단지 현상의 일면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미국의 실제적 관심은 비핵화가 아니라 관계정상화일 수 있다. 미국정부나 언론은 북핵 제거에 일차적 관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미국의 행동과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미국이 진정으로 북측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데에 우선적 관심을 두고 있다면, 지금처럼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스스로 신고하고 핵시설을 스스로 불능화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북측을 신뢰하지도 못하는 미국이 북측의 ‘스스로 신고’ ‘스스로 불능화’에 만족한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이는 미국이 더 이상 북측을 압박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진정한 관심사가 북측 비핵화에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진정한 관심사가 거기에 있었다면, 미국은 이 정도의 타협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북측을 계속 압박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북측이 스스로 불능화에 도달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한편, 북측은 미국이 더 이상의 압박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한반도 비핵화’라는 비장의 명분을 언론에 이따금씩 흘리고 있다. 미국이 북측 비핵화를 위해 보다 더 실제적인 방법으로 압박을 강화할 경우에,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6자회담 의제를 명분으로 “미국도 동북아 핵무기를 철수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 경우 명분 싸움에서 미국은 북측에 밀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이 미국은 북측 비핵화를 ‘보다 더 강도 높게’ 또 ‘보다 더 실제적으로’ 관철시킬 명분도 능력도 없다. 그래서 미국은 이미 공개된 영변 핵시설 등이 불능화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은 그것으로써 외교적 성과를 자축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수순에 착수하게 될 것이다. 특단의 변수가 돌출하지 않는 한, 미국은 “숨겨놓은 핵무기도 마저 내놓으라!”는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북측 비핵화를 엄격히 관철시킬 수 없는 미국으로서는 하루빨리 이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다. 미국이 북한에게 엄격한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고 관계정상화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 것은 그러한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측을 새로운 파트너로 맞아들인다면 미국에게도 여러 가지로 득이 된다. 한국은 점차 미국에서 벗어나고 중국은 계속 떠오르고 일본도 어딘가 수상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북측이라는 새로운 파트너는 미국의 역내 영향력을 안정시키는 데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북측이 새로운 파트너가 될 가능성만 있다면, 미국으로서는 ‘미래의 동맹국’을 비핵화시키기보다는, ‘적절한 비핵화’로 동맹국의 국력을 유지시키면서 하루라도 빨리 관계정상화에 도달하는 것이 보다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셋째, 미국이 향후 동북아 전략을 안정적으로 수행하자면 비핵화보다는 관계정상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실효적이다. 

 

북측에서 핵이 사라지는 것 자체는 미국에게 안정적 전망을 주지 않는다. 그것이 일종의 무장해제 정도의 의미만 갖는 경우에는 동북아에 새로운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어떻게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만약 북측 비핵화가 순수한 비핵화의 의미를 갖는 경우에는 그것이 연쇄적인 비핵화 도미노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도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북측 비핵화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관계정상화에 초점을 맞출 경우에 북미관계는 매우 명확해진다.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1945년 이래의 냉전구도가 최종적으로 해소되고 동북아에는 평화를 위한 환경이 형성된다. 북측 비핵화의 경우에는 그 이후에 혼란이 올 수도 있고 평화가 올 수도 있지만, 관계정상화의 경우에는 답이 오로지 하나다. 평화 그것이다.

 

그리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될 경우에 김정일은 중국과 미국을 상호 견제시키면서 적절히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한반도 북부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관계정상화에 초점을 맞출 경우에 향후 구도는 이처럼 미국에게 유리하게 전개된다.  

 

내년에 치를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다가 중동에서 예측불허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미국으로서는 동북아에서마저 예측불허의 상황을 자초할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동북아에서만큼은 예측가능의 상황을 만들어야만 다른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대외전략을 유지할 수 있다.

 

북측 비핵화에 매달릴 경우에 위와 같이 예측불허의 상황이 조성될 수 있는 데 반해 관계정상화에 초점을 맞출 경우에는 예측가능의 상황이 조성되어 세계전략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면,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카드는 단 하나뿐이다. 북측 비핵화를 ‘적절한 선’에서 매듭짓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하루빨리 실현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북·미 간의 적대적 관계가 결코 북핵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 ▲미국의 실제적 관심은 비핵화보다는 관계정상화일 수 있다는 점 ▲미국이 여타 지역에서 대외전략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동북아에서 ‘예측가능’을 유지해야 하고, ‘예측가능’을 유지하자면 비핵화보다는 관계정상화에 더 주력하는 것이 실효적이라는 점을 볼 때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관계의 핵심은 비핵화가 아니라 관계정상화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네바에서 북·미 간에 진행된 회의의 명칭이 ‘비핵화 회의’가 아니라 ‘관계정상화 회의’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2007.09.03 12:06 ⓒ 2007 OhmyNews
#북미관계 #동북아 #북핵 #핵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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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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