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묫길에 ‘유명조선’ 비문을 보거든 ……

등록 2007.09.24 16:04수정 2007.09.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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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소재 서울역사박물관 앞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은신군 신도비. 비문 첫줄에 ‘유명조선국’이라고 쓰여 있다. 은신군은 정조 임금의 이복동생이었다. ⓒ 김종성

추석 성묘를 가다 보면 이따금 옛날 묘비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명조선(有明朝鮮) 혹은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비문을 발견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유명조선은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는 표현이다. ‘밝은 조선’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고 ‘명나라에 있는 조선’이나 ‘명나라에 속한 조선’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명나라에 있는 조선’이나 ‘명나라에 속한 조선’으로 번역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 이를 수치스러운 사대의 역사를 입증하는 자료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유명조선은 결코 수치스러움을 입증하는 표현이 아니다. 서구적 시각에서 보면 수치스러운 표현일 수도 있지만,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다음 두 가지를 통해서 그 점을 납득하게 될 것이다.

첫째, 유명조선은 청나라의 동아시아 패권에 대한 도전의 논리를 담은 것이었다. 이 유명조선이란 표현은 명나라가 존속할 때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명나라가 멸망(1644년)한 뒤인 17세기 이후의 비문에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한 표현이다. 

명나라가 동아시아를 지배할 당시에는 등장하지 않은 표현이,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가 동아시아를 지배할 때에 등장했고 또 조선 역시 그 청나라로부터 굴욕을 당한 이후에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 비문에 담긴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청나라가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출현한 ‘조선은 명나라에 속해 있다’는 표현은 ‘우리 조선은 청나라의 패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항거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청나라를 최상위에 둔 동아시아의 위계적 국제질서에 편입된 조선의 양반 지배층들은 조상의 묘비에 ‘명나라에 속한 조선’이란 표현을 씀으로써 ‘우리는 청나라에 속하지 않았다’는 반청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미국의 패권이 미치고 있는 한반도 남쪽에서 친북노선이나 친중노선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꼭 사대노선이라기보다는 우회적인 반미노선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더 현실적일 것이다. 조선의 양반 지배층들도 그 같은 방식으로 청나라를 배척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자기 자신의 명의로 청나라에 대항하지 못하고 죽은 명나라의 이름을 빌려 청나라에 대항했다는 것 자체는 그리 자랑할 만한 게 못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회적인 방법으로라도 청나라에 대한 배척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일정한 공감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대목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유명조선이란 표현을 통해 조선인들이 반청감정을 표현했다고 치더라도, ‘명나라에 속한 조선’이라는 표현 자체는 조선의 자주성을 부정하는 표현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간에, 조선이 명나라를 상국으로 두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은 한국인들에게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서양적 시각을 버리고 동아시아 전통에 입각하여 조선-명나라 관계를 살펴보면 ‘유명조선’이라는 표현이 그다지 수치스러운 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 점에 관한 설명이 이어서 전개될 것이다.

둘째, 유명조선은 동아시아 특유의 위계적 국제질서를 반영하는 표현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서양의 눈이 아닌 동양의 눈으로 동양의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근대 서양이 만들어낸 국제질서 하에서는 모든 국가가 평등한 지위를 갖고 있다. 크든 작든 간에 모든 국가는 국제무대에서 원칙상 1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주권국가는 그 자체로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소속된 주권국가라는 개념이 현대 세계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 다른 나라에 소속된 국가는 종속국가로서 완전한 주권을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인들의 인식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명나라에 속한 조선’이라는 표현이 조선의 국가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는 평등하다’는 관념은 서구적 개념일 뿐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개념은 결코 아니었다.

예법질서가 존재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차별적 지위를 부여했다. 군주와 신하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남편과 아내 간에, 지주와 소작인 간에, 양반과 상민 간에 차별적 지위가 부여되었다. 아마 동아시아의 인간관계에서 서열이 매겨지지 않은 것은 붕우관계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을 통해 동아시아 사회는 질서라는 것을 창출했다. 오늘날에는 평등 속에서 질서를 창출하려 하고 있지만, 평등이란 관념을 몰랐던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차별을 통해 질서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남자들이 통성명 후에 곧바로 형님·아우를 결정하곤 하는 모습은 이러한 서열적 문화의 유풍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간에 상하질서를 정하지 않고서는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통시대 동아시아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 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차별적 지위를 부여했다. 정확히 말하면, 군주와 군주 사이에 차별적 지위를 부여했다. 국가 간에도 차별이 없으면 국제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과거 동아시아인들의 인식이었다. 

이러한 관념에 따라 동아시아에서는 최강국인 A국 군주를 중심으로, B국 군주는 A국 군주의 1품 신하에 해당하고 또 C국 군주는 A국 군주의 2품 신하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각 나라 군주의 서열을 정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세 나라 사이에는 A-B-C의 서열이 정해졌던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양나라(502~557년)는 백제왕에 대해서는 정동대장군이라는 지위를 준 데 비해, 가야왕에 대해서는 그보다 낮은 보국장군 지위를 부여했다. 이러한 차별적 책봉을 통해 이 세 나라 사이에서는 양나라-백제-가야라는 차별적 질서가 창출될 수 있었다.

이런 경우에 ‘양나라에 속한 백제’ 혹은 ‘양나라에 속한 가야’라는 표현이 성립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제나 가야의 국가적 정체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양나라가 백제나 가야를 지방정권으로 두고 있었다면 백제·가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고 요역을 징발했겠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백제·가야는 양나라와 무관하게 자국의 왕을 옹립하고 독자적으로 법률을 시행하였다.

양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저 양나라의 국제패권을 인정한다는 뜻에 불과했다. ‘양나라에 속한 백제 혹은 가야’라는 것은 바로 양나라의 패권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양나라의 국제정책을 인정하고 혹시라도 전쟁 등이 벌어지면 양나라와 함께하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오늘날 영국·중국 등이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추종 혹은 협력하고 있다고 해서 영국·중국 등의 국가적 정체성이 부정되지 않듯이, 전통시대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위와 같은 방법으로 최강국의 패권을 인정했다고 해서 그 나라들의 정체성이 부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청나라가 등장하기 이전의 조선도 명나라의 역내 패권을 인정했다. 조선과 명나라 외에도 몽골, 여진족 군소정권, 일본 다이묘 정권들이 존재하고 있던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조선은 명나라를 역내 패권국가로 인정하고 명나라의 동아시아 정책을 추종했다. 명나라의 ‘대테러전쟁’ 즉 여진족 토벌전쟁에 동참한 것은 ‘명나라에 속한 조선’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조선이 명나라를 역내 패권국가로 인정한다는 뜻일 뿐, 조선의 국가적 정체성을 없애고 명나라에 귀부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이는 조선뿐만 아니라 당시 명나라의 책봉을 받은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또 훗날 청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이고 청나라의 패권을 인정했을 때에도 조선은 여전히 자주국이었다. 조선이 자주국이었다는 점은 1845·1866·1873·1876년 청나라 정부의 공식 성명과 1879년 광서제의 상유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은 청나라에 속해 있으나 내치와 외교는 조선의 자주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 청나라의 공식 입장이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독립성과 자주성을 유지하는 독특한 국제질서가 존재했다. 나라마다 서열이 있어서 하위 국가는 상위 국가에 소속한다는 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나라마다 서열이 있으면서도 각 나라가 독립성과 자주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서양적 시각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유명조선이라는 표현도 그렇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표현은 ‘우리는 죽은 명나라에 속해 있으며 죽은 명나라의 패권을 인정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우리 조선은 명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사실, 오늘날에도 이 같은 서열적 국제질서가 ‘사실상’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일본·한국은 형식적으로는 평등한 나라들이다. 하지만, 미국이 최상위에 있고 그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일본이 한국보다 상위에 놓이는 관계가 사실상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동북아 국제질서에서는 미국-일본-한국의 차등적 질서가 ‘사실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시대 동아시아와 다른 게 있다면,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위계질서를 규범적으로 인정한 반면에 오늘날에는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사실적으로 인정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질을 따지자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예전에 유명조선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유미한국(有美韓國)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일부 조선시대 비문에 남아 있는 유명조선이란 표현은 신흥 패권국 청나라에 대한 대항논리인 동시에 동아시아 전통시대의 위계적 국제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적 시각에서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표현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개인관계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서열을 정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동아시아인들의 예법전통이 그러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유명조선’이란 표현은 ‘명나라의 패권을 인정하는 조선’이라는 의미다. 오늘날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면서도 주권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중국 등을 보면, 유명조선이란 표현이 결코 부끄러운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묫길에 혹 유명조선 비문을 보거든, 그것을 부끄러운 역사의 증표로 치부하기보다는 독특한 동아시아 문화의 징표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유명조선 #유명조선국 #사대주의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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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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