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는 논쟁 '정-문 단일화'
"현재에 최선" vs "미래를 준비"

[박형숙의 대선진맥 29] 김대중·노무현 이후 한국 정치는 어디로...

등록 2007.12.10 18:48수정 2007.12.1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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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원불교 교무,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유경재 예수교장로회 목사, 이돈명 변호사, 청화 스님, 함세웅 신부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시민사회·종교계 7인 모임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진화를 위한 분열인가, 분별없는 자중지란인가.

정동영-문국현 후보의 단일화 논란과 맞물려 87년 이후 운동진영의 세력 분화도 가시화되고 있다.   

우선 시민사회 원로들이 전면이 나섰다. 7일 소설가 황석영이 주도하는 '비상시국회의'는 단일화에 응하지 않는 세력을 '거짓 민주화 세력'으로 규정하고 규탄하겠다고 밝혔다.

또 10일 백낙청 교수와 함세웅 신부 등 '원로 7인'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고 "또 하나의 오만이요, 정치적 무능세력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문국현 후보의 자진 사퇴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백낙청 "방법은 모르겠고, 가능성도 안 보이고... 중재 예상 않는다"

회견이 끝난 뒤 백낙청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단일화를 보는 관점의 차이가 크다"며 "더 이상 중재 활동을 예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백 교수는 7인 원로 회견에 앞서 문국현 후보의 요청으로 구성된 시민사회 '9인 모임'의 좌장을 맡아 단일화 중재에 나선 바 있다.

단일화 전망과 관련, 백 교수는 "방법은 모르겠고, 가능성도 잘 안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누가 양보할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 사실상 '자진 사퇴'의 선택지만 남은 것으로 봤다.


두 번의 기로가 남았다. 우선 부재자 투표일(13·14일) 전이라고 보면 12일이 단일화 한계선이다. 하지만 백 교수는 "12일 이후에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하루 전인 18일까지도 극적인 단일화 가능성을 기대했다.

문 후보의 단일화 의지에 대해 백 교수는 "단일화를 한다 해도 '세력연합'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며 "단일화 과정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자신의 확신이 틀렸다고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난다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단일화 협상이 결렬된 뒤 독자 행보에 나선 문 후보는 "총선에서 부패 세력(이명박)은 물론 무능 세력(여권)도 다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백 교수의 평가는 다르다.

"정당이 총선을 생각하는 것을 나쁘게 볼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 실리적인 계산이 정확하냐는 점이다. 대선을 포기하고 총선에 집중하는 게 유리한 자세인가, 아니면 대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과정에서 세력연합을 통해 총선 준비를 하는 게 유리한가 하는 점은 따져볼 문제다. '총선이 더 중요하니 대선은 포기한다'는 것은 대의명분도 약하지만 실리에 있어서도 잘못된 계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재 과정에서 문국현 후보를 만나본 백 교수의 점수는 그리 후하지 않다. 막판 회의에서 백 교수는 "우리가 정치인이고 (문 후보 쪽이) 시민사회인 것 같다"고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백 교수는 "문 후보 쪽에는 정치인으로 보기 힘든 분들이 많다"며 "좋은 점도 있지만 더 답답한 면도 있다, 차라리 정치인들과 (중재협상을) 하면 낫지 않을까 싶은 때도 있었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한 발 떨어져있는 젊은 활동가들 "단일화가 해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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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오른쪽)가 지난달 21일 조계사 불교역사기념관에서 열린 '2007 불교계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와 악수한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 유성호


문국현 후보 측은 반발했다. 김갑수 대변인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화가 나면서도 서글펐다고 심경을 드러냈다. 김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거짓'을 전매특허 낸 후보는 따로 있는데 문국현 후보에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무척 화가 났다"며 "민주와 반민주의 구분점이 후보 단일화인가"라고 반문했다.

김헌태 정무특보는 강하게 반박했다.

"민주화 정신이 과연 무엇인가. 민주화 세력이 기득권에 갇힌 것 아닌가. 민주세력 원로들의 향후 대한민국의 구상은 무엇인가. 선거기득권에 안주하며 경제민주주의 새싹마저도 짓뭉개려는 것은 아닌가. 민주화 세력 내에서도 단일화에 절대 응하지 말하는 분들이 많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이뤄내지 못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불신은 크다. 민주화 세력이 과거 틀 속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우리의 극복 대상이다."

문 후보에 대해 우호적인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새진보연대 대표)은 정동영 후보와의 단일화에 반대한다.

시민사회의 젊은 그룹은 정치권 논의에 한 발 떨어져 있다. 대선시민연대를 구성해 생활 공약이나 선거법 개정운동 등 시민들과의 직접 소통에 주력하고 있으며, 삼성 비리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리더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40대들은 무조건 단일화에 대체로 비판적이다. 한 핵심인사는 "두 정치집단의 화학적 결합을 생략하고 선거공학적으로 단일화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원로들의 입장이 민주화세력 전체의 뜻인 양 비쳐지는 것은 문제"라며 "이명박이 엉터리인 걸 알면서도 지지율이 유지되는 것에는 진보진영에 요구됐던 새로운 가치와 세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단일화가 해법은 아니라는 얘기다.

민주의 분열... 몰락으로 이어질까, 새 출발의 물꼬 틀까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측의 차이에는 '87년 체제를 어떻게 보느냐'는 인식의 괴리도 존재한다.

통합신당의 이인영 의원은 "분열은 그 자체로 민주개혁세력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본다. 따라서 이들에게 단일화는 '절대가치'다. 보수진영이 60%의 대선 기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87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을 막는 것이 절대절명의 과제라는 논리다. 대선을 떠나 두 후보의 분열은 '민주개혁세력의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위기의식이 사회원로들에게 깔려 있다.

반면 문 후보 측은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이름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7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도 막아야 하지만 87년 체제로 극복의 대상으로 본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을 '미래세력'이라 규정한다. 이명박 후보뿐만 아니라 정동영 후보도 심판해야 할 과거 세력의 틀에 집어넣는다.

창조한국당의 정범구 전 의원은 "산업화와 군부독재로 요약되는 87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87년 이후 20년 동안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며 "우리는 2008년 체제로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87년 체제를 극복하자고 문국현과 같은 정치 신인이 만들어진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반부패수구전선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요구에 부응한다면 오늘이라도 단일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여권의 무능을 심판해 달라는 요구가 병존하고 있지 않냐. 과연 반부패수구전선에 역량을 다 쏟아야 하는 게 맞나.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막아야 하지만 미래 세력의 연대도 필요하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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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17대 대선후보 합동토론회에서 이인제 민주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이회창 무소속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손을 모으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반 이명박 진영', 넌 누구냐

반(反) 이명박 진영을 부르는 이름은 많다. '진보진영'이라는 너른 범주에서, 짧게는 '범여권' 길게는 '평화민주미래세력'이라는 이름까지 갖가지다.

민주노동당은 "우리가 유일 진보"라며 여권과의 차별화를 주장하고, 민주당은 "우리야말로 노무현 정권 하에 탄압받은 야당 중의 야당"이라며 범여권에 분류되는 것을 거부한다.

사회 원로들은 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통합신당·민주당을 향해 단일대오를 호소하며 "부패수구세력의 집권을 반대하는 민주대연합"이라 명명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후를 맞이할 '제3기 운동진영'의 이름은 무엇일까? 비상시국회의 성명서를 낭독한 황석영씨는 "한 5년 다시 이러고 다닐 생각하니 착잡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후보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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