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면허증' 신세가 된 '행복한 눈물'

[조은미의 비틀어뷰] 관객과 만나지 못하는 예술도 예술일까

등록 2008.02.02 15:19수정 2008.02.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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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서울 가회동 서미갤러리에서 열린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공개에서 삼성특검팀이 작품의 진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날 공개는 그동안 논란이 된 삼성그룹의 미술품 비자금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삼성그룹이 아니라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가 '행복한 눈물'을 보관 중인 점을 확인하기 위해 열렸다.
1일 서울 가회동 서미갤러리에서 열린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공개에서 삼성특검팀이 작품의 진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날 공개는 그동안 논란이 된 삼성그룹의 미술품 비자금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삼성그룹이 아니라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가 '행복한 눈물'을 보관 중인 점을 확인하기 위해 열렸다.연합뉴스 김현태


1일 공개된 '행복한 눈물'은 신기했다. 저 그림이 100억이 넘는 그림이란 말야? TV나 신문으로만 보는 그림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동그라미 많은 가격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2002년 11월 14일, 뉴욕 크리스티 이브닝 세일 경매는 화제였다. <뉴욕타임스>도, BBC도 이날 경매 분위기를 '거센 경쟁'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아티스트 6명의 작품이 그 작가 작품 가운데 최고가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셋이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측에서 구매했다고 밝힌 작품이다. 이때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있었다.

당시 크리스티 경매사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1964) 낙찰가를 500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이 작품은 716만 달러에 팔렸다. 리히텐슈타인의 '키스2'가 1990년 세운 최고가 기록(605만 달러)이 이때 깨졌다.

비싸게 주고 샀지만, 투자 가치는 확실했다. 아트 마켓이 호황을 이루며 이 작품들의 판매가는 승승장구했다. 현재 시장에 내놓으면 그때보다 두세 배는 오른 값에 팔린다는 게 정설이다. 이처럼 예술 작품은 어느새 주식처럼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 '아름다운 투자'인 이유는 딴 데 있다. 소유주가 확실하고 기록이 남는 땅이나 주식과 달리, '묻지 마'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행복한 눈물'도 이 그림이 '국내에 있다'는 사실만 확인됐지 누구 소유인지 묘연하다.

'삼성이 샀다, 아니다,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가 샀다.' 말만 무성하다. 홍 대표도 작품을 공개했지만, 딱히 "내 작품"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작품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됐지 그게 누구 소유인진 알 수 없었다. 이러니 작품 값이 두 배로 뛰어 누군가 돈 벌었겠다 싶어도, 정작 누가 돈을 번 건지는 미궁이다.


김 변호사가 삼성 측에서 샀다고 밝힌 작품들은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었다. 포스트 팝 아트의 사도 로이 리히텐슈타인 작품부터 피카소의 '재클린의 머리'(220만 달러), 앤디 워홀의 '모나리자'(29만5천 달러), 리히터의 '추상화'(100만 달러)도 있다.

미술계 관계자는 "이 리스트가 진짜라면, 세계적인 명품 컬렉션"이라고 말했고, 다른 미술 관계자는 "이런 작품을 산 것만으로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냐"고 되물었다.


25분 깜짝 공개... '행복한 눈물' 흘리는 것 같던 '행복한 눈물'

하지만 샀더라도 꽁꽁 봉해져 누군가 개인 금고에 고이 보관돼 먼지만 뒤집어쓰는 작품이 과연 국익일까? 루브르나 오르셰에 걸린 그림처럼 전 세계 관객을 부르는 그림이라면 또 모를까.

일찍이 에프라임 키숀은 '독자' 입을 빌려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란 책에 이렇게 썼다.

"그림 한 장에 수백만 마르크를 지불하는 것은 예술과 문화의 본질적인 가치 평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무 가치도 없는 작품 하나하나에 터무니없이 돈을 처바르고, 그 작가들을 신격화하며 그들을 알 수도 없는 말로 칭송하는 것은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실제 '행복한 눈물'은 무늬만 그림이지, 실은 '금괴'가 됐다. 관객과 만나지 못한 채 100억이 넘는 그림 값만 화제다. 그나마 김용철 변호사 폭로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을 뿐이다. 특검 요청으로 그림을 공개할 때도, 10여 명에게 딱 25분만 공개됐다.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가 "그림 가격이 100억 원이 넘는 고가여서 보안이 우려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이 국내에 있다는 건 희소식이지만 또 불행한 소식이다. 한 미술 관계자는 "문제는 비자금으로 샀고, 공개를 못 하니까 전 세계 베스트 컬렉터에도 이름을 못 올린다"고 꼬집었다.

박정수씨는 <나는 주식투자보다 미술투자가 좋다>란 책에 이렇게 썼다.

"주식이 그렇듯 미술품도 소통되어야만 존재 가치가 인정된다. 돈으로 교환되지 않더라도 이미지 자체가 사람들에게 보이고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다면 이 역시 소통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미술품은 그 흐름 안에 있어야만 가치가 있다. 골방에 있는 미술품은 장롱면허증과 같다."

현재 김용철 변호사가 지목한 명화 30점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행복한 눈물'도 이렇게 '존재'를 증명한 뒤, 미술품 후송용 무진동 차량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직행했다. 유명세는 탔지만, 다시 세상에 얼굴을 내밀진 아직 알 수 없다. 다시 '장롱 면허증'으로 돌아간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딱 25분이었더라도 공개된 '행복한 눈물'은 진짜 '행복한 눈물'을 흘리는 걸로 보였다. 그림이 태어난 이유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감금돼 있다 겨우 관객과 만났으니 '행복한 눈물'이 나지 않았겠나? 물론 곧 끌려나갔지만.

에프라임 키숀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서 이렇게 적었다.

"예술은 관객이 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호소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기능할 수 있다. 예술은 그림을 보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행복한 눈물'을 그린 리히텐슈타인은 저세상에서 억장이 무너지겠다.
#행복한 눈물 #삼성특검 #서미갤러리 #컬렉터 #미술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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