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의 '삼보일배'와 문국현의 '창조'

[取중眞담] 문국현은 더 무엇을 보여줄까

등록 2008.05.26 11:21수정 2008.05.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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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국회 기자실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왜 이회창 자유선진당과 손을 잡았는지에 대한 기사를 쓰던 23일 오후, 우연히 국회방송을 봤다.

 

정운천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부결된 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5분 발언을 하고 있었다. 정 장관에 대한 해임안이 부결됐다고 해서, 그 잘못이 없어진 것이 아니며, 자신은 쇠고기 재협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청계천에서 청와대까지 3보일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독하다!  또, 자신의 몸을 태우는 방식으로 싸우겠다니.

 

지난 4월 18일 쇠고기시장 전면개방을 골자로 한 한미간 쇠고기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것도 그였다. 4일간의 짧은(?) 단식이었지만, 그는 "고통스럽다"고 했다. 의원이 된 뒤 6번째 단식이었다. 경남 사천에 있는 그의 부인은 "남편이 단식 때 괴로워하기 때문에 나도 밥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한다.

 

강기갑의 단식과 삼보일배

 

그의 이런 우직함이 집권당 사무총장이자 이 정권의 실세인 이방호 의원을 무너뜨렸다.. '박사모'의 지원은 여기에 얹혀진 덤이었다.

 

강 의원의 승리에는 민주노동당 8년의 역사와 그 이전 진보정당 건설과정에서 있었던 당 해산을 비롯한 숱한 실패와 패배, 그리고 이를 이겨내기 위한 많은 이들의 목숨을 건 헌신이 녹아있다. 이른바 민노당을 둘러싼 '종북' 논란과는 별개로 인정받아야 할 대목이다. 그의 승리는 튼튼한 뿌리 속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 문국현 대표의 자유선진당과의 합작은 대단히 실용적이고 편의적이다. 이들 스스로 "기술적 접근"임을 강조한다.

 

문 대표는 24일 당원들에게 보내는 동영상 인터뷰에서 이번 합작에 대해 "3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임위원회 배정에서도 배제되고, 입법을 위한 전문위원 배정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20석 이상의 원내교섭단체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돼 있는 국회의 거대정당 독점구조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창조한국당은 "민주노동당처럼 원내에서는 아무 일도 못하고 거리로 나가야 하느냐"고도 한다.

 

대선이 넉 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등장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한탕주의'로는 충분히 가능한 사고방식이다.

 

그의 말대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20석 이상으로 만들어 군소정당의 국회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그간 숱하게 지적돼온 문제다. 그렇다고 그의 행동에 면죄부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국회의 거대정당 중심운영 구도를 바꾸기 위해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창조적' 꼼수로 이를 우회하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 정치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끈질기게 맞서 싸워야 할 문제이고, 그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용기있게 싸움을 벌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문국현의 '창조적' 꼼수... '이해타산'의 연대

 

의원 선서도 안 한 상태에서 벌써부터 우회로를 찾고 있는 그에게, 결과물이 핵심인 CEO출신이라 그렇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까지 갈 것도 없다. '바보 노무현'의 부산에서의 우직한 도전이 그에게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02년 미선이·효순이 투쟁이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95만여표의 초석이 됐고, 2004년 총선의 10석으로 연결됐다.

 

문 대표는 이번 합작의 '3포인트', 이른바 대운하저지, 쇠고기 문제, 중소기업 육성문제 등에 대해 "3대 공당중 하나인 자선당이 우리 정책에 따라왔다. 우리의 사람중심 창조적자본주의에 문서로 지지성명을 낸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가장 폐쇄적인 자유선진당이 놀랍게도 가장 유연했다. 자신들의 정책을 우리에게 받으라고 한 게 없다"고도 했다.

 

문 대표가, 자유선진당이 창조한국당의 3대 과제에 전적으로 동의해서 자신의 손을 잡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3가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을 제외하고 어느 정당도 부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운하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반대여론이 많다.

 

결국, 이번 합작은 '가치와 정책'의 연대가 아니라, 20석을 만드는데 절박한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이해타산의 연대'일 뿐이다.

 

문 대표는 이 합작이 '제한적이고, 한시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그 상대가 이회창 총재라는 점에서 그렇게 에둘러가기는 어렵다. 이 총재는 대선 때 문 대표 자신이 "정치 지도자의 부패는 그 나라를 근본부터 썩게 하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했던, 차떼기의 주역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긴 인사이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자신이 총재였고 두 차례나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당이 대선후보를 선출할 때까지 가만있다가, 후보가 확정된 뒤에 탈당해서 대선에 출마했다. 좌우나 진보보수는 민주주의의 기본규칙 그 다음 문제다.

 

결국 문 대표는 낮은 수준의 결합이라고 강조해도 민주주의 원칙을 어긴 이 총재의 힘을 키우는데 자신의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문 대표는 실용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처럼 역사와 가치를 배제한 실용은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무엇을 위한 실용인지 알 수 없게 될 때가 많다.

 

성공한 CEO 출신인 문 대표로서는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총재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교섭단체 구성 발표 뒤 문 대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창조적 보수'라고 표현했으며, 또 "저를 비롯, 저희 당의 국회의원 2명이 대기업 회장 출신이고 당원 중 기업인 출신이 1000명이나 되는 만큼 (노선에서) 선진당과 배치될 게 없다"고도 했다.

 

이런 것들과 비교해보면, 문 대표 혼자 판단하고 결정했다는 독단주의 역시 적지 않은 문제임에도 오히려 소소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지난 대선 전에 대해 문 대표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사람", "판단의 근거가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말 대선출마 선언때부터 지금까지 정동영 후보와의 단일화 무산 과정, 창조한국당 지도부 이탈과 그의 리더십, 비례대표 출마의사를 접고 은평을 출마와 당선, 이한정 당선자 사건에 대한 대처, 자유선진당과의 교섭단체 구성 등 그는 그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보여줬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이제 더 무엇을 보여줄까.

2008.05.26 11:21 ⓒ 2008 OhmyNews
#문국현 #창조한국당 #자유선진당 #이회창 #강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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