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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
이름은 나팔꽃
소리가 안 나
아빠에게 물어보니
불어주는 사람 없어 소리가 없어
나팔꽃
뿌르뿌르 빠앙
소리난데요
불러주는 사람 있으면 |
지난 주 아침 일찍 아이들의 등교시간에 맞춰 집을 나설 때였다. 화단의 작은 나무들을 타고 오르는 나팔꽃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아침 지나가지만 나팔꽃을 본 것은 처음이어서 활짝 핀 꽃 앞으로 몸을 숙이며, '나팔꽃이 피었네'라고 말했다.
그런데 뒤에 따라오던 초등학교 일학년 아들 녀석이 대뜸 "그런데 왜 소리가 안 나?"라고 묻는 것이었다. 녀석은 웃기자고 한 말이 아니라는 듯,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불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소리가 안 나지"였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대화는 옆에서 보면 말장난을 하는 개그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 둘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나의 대답에 녀석은 나팔꽃을 불면 이런 소리가 날 것이라며, "뿌르뿌르 빠앙" 하며 나팔을 부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갑자기 "소리가 난데요, 사람이 불러주면"이라고 말을 이으며 씨익 웃는 것이었다.'나팔을 분다'와 '사람을 부른다'는 말을 혼동하는 건지, 의도적으로 바꾼 건지 끝말을 바꿔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놀랐다고 함은 언어를 구사함에 있어서 상식적인 틀을 벗어나지만, 그 창의성에 있어서 어른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언어 사용에 있어서 굳어진 표현에 익숙한 어른 입장에서야 상식이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구태를 벗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언어를 창의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아이와, 아이는 아니지만 실수를 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을 늘 만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 사람들은 성인이지만, 말에 있어서 아이와 같이 서툰 결혼이주민과 이주노동자와 같은 외국인들이다.
며칠 전부터 우리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서른다섯의 인도네시아인 수찝또다. 담낭에 염증이 생기고 돌이 있어서 수술을 한 후, 의사의 권고에 따라 얼마간 일을 하지 않고 요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술을 하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는 통증이 있어서 그런지 말수도 적고 웃음도 없었던 그가, 회복기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말이 많아지고,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일요일에 수찝또의 수술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가 보지 못했던 그의 친구들이 쉼터를 방문하여, 어디가 어떻게 아프고, 상태는 어떤지 묻고 또 묻자,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우리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 지금 불량!"
'불량'이라는 단어는 '빨리빨리'라는 말만큼 먼저 배우는 말들일 터. 다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끼어들었다.
"불량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불량은 잘못 만들어서 쓰지 못하는 '물건'이라는 말이에요."
그러자 불량이라는 단어를 아픈 사람에게 쓰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는 듯, '물건'이라는 단어에 집착해서 농을 거는 이가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만하게 한 손으로 다른 한 손을 받치며 "이거, 불량 맞아요. 지금 아무것도 못해요"라고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깔깔 대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수찝또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아픈 배를 움켜주고 키득거렸다. 말을 제대로 골라 쓰면 좋겠지만, 자기 자신을 불량이라고 말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 수술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언어유희'를 즐길 수 있는 지금이 그나마 행복한 순간이리라.
덧붙이는 글 | 나팔꽃은 아이와의 대화를 동시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2008.07.23 12:01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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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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