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42} 선線

[우리 말에 마음쓰기 391] ‘상식 선’, ‘선이 닿는 데’, ‘웬만한 선에서’ 다듬기

등록 2008.08.02 11:57수정 2008.08.0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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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상식 선

 

.. 상식 선에서만 말하자면, 남한 지배세력의 통일 정세는 이른바 남한식 자본주의의 위기 탈출 방식이고 북한 지배세력의 통일 정세는 이른바 북한식 사회주의의 위기 탈출 방식이다 .. <비급 좌파>(김규항, 야간비행,2001) 240쪽

 

 “남한 지배세력(支配勢力)의 통일(統一) 정세(政勢)”는 “남녘을 다스리는 무리가 생각하는 통일”로 다듬고, “북한 지배세력의 통일 정세”는 “북녘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통일”로 다듬습니다. “남한식(-式) 자본주의의 위기 탈출(脫出) 방식(方式)”은 “남한 자본주의가 위기를 벗어나는 길”로 손보고, “북한식 사회주의의 위기 탈출 방식”은 “북녘 사회주의가 위기를 이겨내는 길”로 손봅니다.

 

 ┌ 선(線)

 │  (1) 그어 놓은 금이나 줄

 │   - 선을 긋다 / 선을 치다 / 선이 똑바르다

 │  (2) 철선이나 전선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   - 진공청소기의 선이 짧아서 베란다는 청소할 수가 없다

 │  (3) 기차나 전화 따위의 선로를 이르는 말

 │   - 폭증하는 통신 수요에 대비하여 선을 늘리다

 │  (4) 물체의 윤곽을 이루는 부분

 │   - 선이 부드럽다 / 선이 거칠다 / 선이 뚜렷하다 / 얼굴의 선이 드러나다

 │  (5) 다른 것과 구별되는 일정한 한계나 그 한계를 나타내는 기준

 │   - 애인과 일정한 선을 긋고 만나고 있다 / 국민 소득이 만 달러 선에 있다 /

 │     주가는 500포인트 선이 무너지며 / 어느 선을 넘어가면 결국은

 │  (6) 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맺고 있는 관계

 │   - 권력층과 선이 닿다 / 거래하는 회사와 선이 끊기다

 │  (7)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광선’의 뜻을 나타내는 말

 │   - 감마선 / 엑스선

 │  (8) 물체와 물체를 경계 짓는 부분

 │  (9) 한 점이 연속적으로 움직여 이루어진 자취

 │  (10) 보표에 있는 다섯 개의 줄

 │

 ├ 상식 선에서만 말하자면

 │→ 상식으로만 말하자면

 │→ 누구나 아는 말을 하자면

 └ …

 

 ‘상식(常識)’이란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상식으로 말한다”고 할 때에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한다”는 소리가 됩니다.

 

 ┌ 선을 긋다 → 금을 긋다

 ├ 진공청소기의 선이 짧아서 → 진공청소기 줄이 짧아서

 └ 얼굴의 선이 드러나다 → 얼굴 테두리가 드러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퍽 널리 쓰이는 한자말 ‘線’입니다. 노래를 짓는 분들은 ‘오선지(五線紙)’에 ‘음표’를 그리지, ‘다섯줄종이’에 ‘콩나물’을 그리지 않습니다. 셈을 가르치는 학문에서는 ‘선분(線分)’만 말할 뿐, ‘금’이나 ‘줄’은 말하지 않습니다.

 

 ┌ 애인과 일정한 선을 긋고 → 애인과 어느 만큼 금을 긋고

 ├ 만 달러 선 → 만 달러쯤

 └ 500포인트 선이 무너지며 → 500포인트가 무너지며

 

 사랑하는 사람하고 어느 만큼 ‘금을 긋고’ 지낸다고 할 때에는 “어느 만큼 떨어져” 지낸다는 뜻입니다. “너무 가까이 지내지는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주식값은 만 점이 무너지기도 하고 천 점을 올라서기도 합니다. 힘, 돈, 이름이 있는 사람하고 ‘줄’을 대려고 ‘줄서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끈’으로 잇고자 아둥바둥 몸부림을 칩니다.

 

 ┌ 어느 선을 넘어가면 → 어느 만큼을 넘어가면

 └권력층과 선이 닿다 권력층과 줄이 닿다

 

 전기가 흐르니 ‘전깃줄’입니다. 새끼를 꼬아 이으니 ‘새끼줄’입니다. 전화가 이어지도록 하는 줄이라면 ‘전화줄’일 테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말로 우리 생각을 담아내는 데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로 물건이름을 짓거나 다독이는 데에는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ㄴ. 선이 닿는 데는 모두

 

.. 나는 그때부터 선이 닿는 데는 모두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  <말해요 찬드라>(이란주, 삶이보이는창, 2003) 119쪽

 

 “도움을 요청(要請)했다”는 “도움을 바랐다”나 “도와 달라고 했다”로 고쳐 줍니다.

 

 ┌ 선이 닿는 대로

 │

 │→ 줄이 닿는 대로

 │→ 알 만한 사람들한테는

 │→ 아는 대로

 └ …

 

 이 자리에서 말하는 ‘線’은 “아는 사람”이나 “아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는 데는 모두 연락해서”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연락해서”로 손질해도 되고요.

 

ㄷ. 웬만한 선에서

 

.. 은근슬쩍 로비하고 대놓고 아부하고 웬만한 선에서 고개 숙여야 성공한다고 ..  <더러운 것이 좋아!>(하정아, 북스,2005) 29쪽

 

 ‘로비(lobby)’는 세 가지 뜻이 있답니다. 먼저 “호텔이나 극장 따위에서 응접실, 통로 등을 겸한 넓은 공간”. 다음으로 “국회 의사당에서 의원들이 잠깐 동안 머물러 쉴 수 있도록 마련하여 놓은 방”. 마지막으로 “권력자들에게 이해 문제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는 일”. 첫째와 둘째는 골마루, 복도, 쉼터, 휴게실 따위로 걸러내면 됩니다. 마지막 쓰임새는 ‘뒷돈’이나 ‘뒷일’ 같은 말로 담아내면 됩니다.

 

 ‘아부(阿附)하고’는 “비위를 맞추고”나 “아양을 떨고”나 “알랑거리고”나 “손바닥을 비비고”로 풀어냅니다. ‘성공(成功)한다고’는 ‘뜻을 이룬다고’로 다듬습니다.

 

 ┌ 웬만한 선에서 고개 숙여야

 │

 │→ 웬만한 자리에서 고개 숙여야

 │→ 웬만하면 고개 숙여야

 │→ 웬만큼 했으면 고개 숙여야

 └ …

 

 사람들 말씀씀이를 헤아려 보면, “그 선에서 그만하지”나 “내 선에서 마무리짓지”하고 말하곤 합니다. 언제부터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일제강점기 앞뒤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자리에서는 “그쯤에서 그만하지”나 “거기에서 그만하지”로 손보거나 “내가 마무리짓지”나 “내 손에서 마무리짓지”로 손보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02 11:57ⓒ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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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선線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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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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