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7) 에고이즘(利己主義)

[우리 말에 마음쓰기 411] ‘외피(外皮)’와 ‘껍데기-겉-겉가죽’

등록 2008.08.29 11:47수정 2008.08.2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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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에고이즘/이기주의

 

.. 그의 에고이즘(利己主義)과 나의 그것, 그의 독점욕(獨占慾)과 나의 그것, 그의 자유로우려는 성격과 나의 그것 ..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전혜린, 민서출판사, 1979) 286쪽

 

‘그의’와 ‘나의’를 쓰며 여러 가지 느낌과 모습과 생각을 적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부터 유럽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와서 서양말에 깊이 물들었기 때문에 그러겠구나 싶은데, 이런 말투는 글쓴이뿐 아니라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 말투가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이기주의인 그와 나, 독점욕에 불타는 그와 나, 자유로우려는 그와 나”처럼 말을 했고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투는 차츰 사라집니다. 어쩌면 이런 말투는 지나간 옛 말투로 여기고, 전혜린씨 같은 분이 쓰는 말투가 ‘새로운 세상에 걸맞는 우리 말투’라고 느끼기 때문이지 싶어요. 그래서 교과서도 신문과 방송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조차도 두루 이런 말투를 쓰겠지요.

 

 ┌ 이기주의(利己主義) :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

 │   ≒ 애기주의ㆍ에고(ego)ㆍ에고이즘ㆍ자기주의ㆍ자애주의ㆍ주아주의

 │   -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치닫다

 │

 ├ 그의 에고이즘(利己主義)과 나의 그것

 │→ 자기만 아는 그와 자기만 아는 나

 │→ 이기주의자인 그와 이기주의자인 나

 │→ 이기주의인 그와 나

 └ …

 

글쓴이는 ‘이기주의’라 안 하고 ‘에고이즘’이라 합니다. 묶음표를 치고 ‘이기주의’를 적는데 한자로 적습니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일기장에 적은 글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일은 썩 내키지 않습니다. 일기장은 글쓴이 마음대로 어떤 말이든 풀어내는 편이 좋으니, 이런 말투를 다듬자고 하기 껄끄럽습니다. 다만, 이 보기글을 일기가 아닌 일상말로 생각해 보면서, 이렇게 쓰는 말투가 얼마나 알맞는지, 또 이런 말투가 아니고는 우리 생각을 담아낼 수 없는가를 헤아리면 어떨까 싶어요.

 

 ┌ 나만 알다

 ├ 자기만 알다

 ├ 남을 모르다

 ├ 남 생각을 않다

 ├ 남 일은 모르쇠다

 ├ 나 몰라라 하다

 └ …

 

‘이기주의’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자기만 생각하려는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이기주의’라는 말을 두루 씁니다. 한 낱말로 적어야 하는 자리라면 ‘이기주의’를 넣을 때가 나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굳이 한 낱말로 못박지 않아도 된다면, “나만 알다”나 “남 생각은 않다” 같은 말로 풀어내면 잘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글을 쓴 전혜린씨 같은 분으로서는, 또 1960년대 그때 철학하는 사람들 말투나 성격으로는 ‘이기주의’도 아닌 ‘利己主義’로, 나아가 ‘에고이즘’으로까지 쓰는 편이 좀 더 멋스럽고 나아 보였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때는 그랬으니까요. 요즘도 비슷하고요. 그렇다면, ‘에고이즘’이나 ‘利己主義’가 아닌 ‘이기주의’라고 적었을 때에는 우리가 나타내려는 마음이나 뜻을 못 나타낼까요. 우리가 펼치거나 나누려는 생각을 못 펼치고 못 나눌까요. “나만 알다”나 “남 생각은 않다”라는 말을 쓰면 내 뜻이 맞은편한테 엉뚱하게 다가갈까요.

 

ㄴ. 외피(外皮)

 

.. 그들의 피 흘리는 투쟁의 모습은 단지 겉면, 외피(外皮)일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DNA(유전인자)를 남기기 위해 그렇게 끊임없이 다툼질을 한다 ..  <권오길 교수가 들려주는 생물의 섹스 이야기>(살림,2006) 3쪽

 

“그들의 피 흘리는 투쟁(鬪爭)의 모습”은 “그들이 피흘리며 싸우는 모습”으로 다듬습니다. ‘단지(但只)’는 ‘다만’으로 손보고, ‘궁극적(窮極的)으로’는 ‘알고 보면’이나 ‘속으로는’으로 손보며, ‘남기기 위(爲)해’는 ‘남기려고’로 손봅니다.

 

 ┌ 외피(外皮)

 │  (1) = 겉껍질

 │  (2) = 겉가죽

 │  (3) 동물의 거죽이나 몸 안의 여러 기관을 싸고 있는 세포층을 통틀어 이르는 말

 │

 ├ 단지 겉면, 외피(外皮)일 뿐이고

 │ 그저 겉면, 껍데기일 뿐이고

 │ 다만 겉면, 밖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고

 └ …

 

보기글을 보면 ‘겉면’이라 한 다음 곧바로 ‘외피’라는 말을 뒤에 붙입니다. 꼭 이처럼 써야 할 까닭이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다만 겉모습일 뿐이고”라고 하면 넉넉할 텐데요.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뿐이고”라든지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일 뿐이고”처럼 적어도 되고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08.29 11:47ⓒ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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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한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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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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