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분할하려 했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96] 청나라의 대 조선 정책

등록 2008.09.08 19:39수정 2008.09.0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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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 심양과 의주 사이에 있다. ⓒ 이정근


홍타이지의 명을 받은 용골대는 서두르지 않았다. 최명길 압송 작전을 전격적으로 실시하면 속전속결이다. 하지만 그는 느긋했다. 그동안 청나라의 조선 통으로 조선을 상대하면서 비록 뇌물은 받았지만 심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자평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은군 이덕인으로부터 일격을 당했다.

조선 관료사회를 초토화 시키려는 용골대


자존심에 상처가 컸다. 욕스럽게 받아들였다. 회은군에게 당한 괴로움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었다. 이번 기회에 용골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조선 관료 사회를 초토화시키겠다고 단단히 벼른 것이다. 용골대가 천타마, 가린, 노시와 함께 세자관을 찾아왔다.

“세자는 소장과 함께 사냥을 떠나야 하겠소.”
“때 아닌 사냥은 웬 사냥이오?”
“봉황성에 사냥감이 많다 들었소. 슬슬 사냥도 하고 바람도 쏘이면 좋을 것이오. 내일 떠날 것이니 준비하도록 하시오.”

고압적인 자세다. 사냥을 같이 즐기자는 청이 아니라 명령이다. 사냥터로 봉황성을 지목한 것도 이상했다. 황실 사냥터는 북쪽 무순에 있고 장군들 사냥터는 교외에 있다. 명나라와의 마지막 일전에 전념해야할 장군이 요양을 지나 봉황성까지 간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봉황성은 조선으로 가는 길목이다. 그리운 조국이 있는 동쪽으로 간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지만 썩 유쾌하지 않았다.

소현은 부랴부랴 인원을 꾸려 사냥 길에 나섰다. 빈객을 비롯한 10여명의 신하가 세자를 호종했다. 용골대는 2백여 명의 군사가 따랐다. 괴이하다. 사냥 길에 수많은 군사를 대동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소현의 의문은 점점 깊어졌다. 사하보에서 일박하기로 결정한 일행은 군막을 설치했다. 용골대가 소현 막사를 찾아왔다.

짐승도 잡고 사람도 잡아야 하오


“이번 사냥은 단순한 사냥이 아니라 짐승도 잡고 사람도 잡아야 하오.”
“사람을 잡 다니오?”

소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사냥터로 봉황성을 지목한 것도 이상했지만 사람을 잡는다니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가슴 졸였다.


“의주 부윤이라는 자는 평안도 해안에 나타난 적선에 식량과 물자를 실어주고 여기 들어와서는 ‘전함이 없어서 잡지 못했다.’ 보고 하니 해괴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전함이 없어서 못 잡은 것이 아니라 잡지 않은 것이 분명하오.”

의주부윤 이계는 청나라 명에 따라 수시로 심양에 드나들며 특이사항을 보고해야 했었다.

“국왕께서는 적선이 나타나면 잡으라고 엄하게 명하셨을 것입니다. 지방관들이 잡지 못한 것은 전함이 없고 일이 갑작스럽게 일어나서 손쓸 사이가 없었을 것이오.”

“이번에 항복한 명나라 표하병 예씨에 의하면 명나라 병선이 조선 연안에 들어가면 후하게 대접하고 식량과 물자를 실어주었다 하오.”

“그럴 리가 없소.”

“명나라 수군 오난영이란 사람도 임경업이 폭풍을 핑계대고 명나라 수군에게 공격하지 않았다 하오.”

“낭설 일 것이오.”

용골대의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한반도를 분할하려 했소

“세자는 잘 들으시오. 우리가 삼전도에서 조선 왕의 항복을 받았을 때, 여러 왕들이 ‘조선 8도 가운데 3도는 국왕이 다스리도록 하고 나머지 5도는 직접 통치하자.’고 했소. 이 때 황제께서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사리에 맞지 않다.’고 반대하셨소. 지금 황제께서 이 말씀을 후회하고 계시오.”

소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청나라가 국토를 분할하여 직접 통치한다면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국토가 두 동강 난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용골대의 엄포는 빈말이 아니었다. 인조가 산성에서 내려와 항복한 직후, 청나라 진영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강원도만 조선 임금에게 통치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직접통치하자는 의견이 분분했다. 3개도를 조선왕에게 주어 일본을 견제하고 한성과 경기도,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를 묶어 총독을 파견하여 통치하고 후방기지화 하자는 전략이었다.

유사 이래 중국이 가장 예쁘게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형도는 분할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는 환상적인 그림이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 때 대동강 이북의 할양이 그것이었다. 고려조와 조선 초기에도 철령 이북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언어가 다르고 개성이 강한 민족이기 때문에 직접 통치는 껄끄럽고 그냥두면 강성해져 안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반도의 허리를 동강낸 휴전협정문에 조인한 사람은 클라크 국제연합군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 팽덕회, 조선인민군총사령관 김일성이다.

“병자년 이후, 저희 작은 나라는 황제의 은혜를 분에 넘치게 받았소. 어찌 감히 다른 뜻이 있었겠소?”

소현이 한발 물러섰다.

“봉황성에 나가는 것은 사냥도 하지만 명나라 배를 잡지 않고 돌려보낸 사람들을 잡아들여 세자가 벌을 주어야 할 것이오.”

“본국에 본조가 있는데 세자의 직분으로 상벌을 주는 것은 간여할 바가 아니오.”

한없이 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소현이 반발했다.

직접 나가 치죄할까요?

“그럼 우리가 한성에 나가 궁궐에 진을 치고 죄인들을 직접 다스려도 좋겠소? 이번 사냥 길에 심양에서 따라나선 2백여 군사 외에 봉성에서 2천 군사가 합류할 것이오. 우리 군대가 조선에 들어가도 좋다는 말이오? 이번 일은 국왕을 대신하여 세자가 일을 맡아주어야 조선에 좋을 것이오.”

협박이지만 실행한다면 큰 낭패다. 또 다시 청나라 군대의 말발굽이 조선 강토를 짓밟는 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소현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군대를 끌고 나온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이현영, 이식, 비국의 유사당상, 양사(兩司)장관, 의주부윤, 평안감사와 병사를 봉황성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전 평안감사 심연, 전 병사 김응해, 전 선천부사 홍이성을 불러 세자가 직접 심문하시오. 또한, 정주의 정씨 성을 가진 상인과 고씨 성을 가진 장사꾼을 비밀리에 잡아들이시오”

줄 소환이다. 지방관뿐만 아니라 대사헌과 대사간까지 호출하니 보통일이 아니다. 요동 신성에서 하룻밤을 묵고 낭자산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정명수가 세자를 찾아왔다.

“용장군이 거명한 사람을 빨리 불러오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귀 뜸인지 협박인지 모르겠다. 소현은 장계를 작성하여 금군 장사민을 내보냈다. 통원보에 머무를 때 용골대가 찾아왔다.

“봉항성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으니 사람을 또 내보내 신속히 처리하라 하시오. 그리고 전 선천부사 이계도 믿을 만한 사람을 내보내 잡아 오시오.”

“조정의 관원은 모름지기 조정에서 잡아 보낼 수 있소.”
“세자께서는 황제의 명으로 죄인을 잡아 오라는데 그걸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용골대가 눈알을 부라렸다. 황제의 명이라면 소현은 왜소해졌다.

“이계는 도망갈 염려가 있으니 본조에 알리지 말고 날쌘 사람을 보내어 비밀리에 잡아 오도록 하시오.”

도리가 없었다. 소현은 선전관을 내보내 이계를 잡아 오라 명했다. 지켜보던 한형길이 비밀리에 장계를 작성하여 내보냈다. 발각되면 곤혹을 치러야 하는 밀계다.

안타까워 볼 수가 없습니다

“황제의 명이라 하면서 세자를 협박하니 세자께서 운신의 폭이 좁아 안타깝습니다. 본국에 보내는 장계와 심양으로 보내는 서찰을 저들이 검열하고 저들 보는 앞에서 밀봉해야 하니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배종 신하도 단 두 사람이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마음 졸일 뿐입니다. 의주에서 봉황까지 십리마다 파발을 세워 신속히 연락이 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심양일기>  

소현의 마음은 타들어 가는데 용골대는 봉황성에 이르는 곳곳에서 군사들을 쉬게 하고 사냥을 즐겼다. 드디어 일행이 봉황성에 도착했다. 봉황성에는 호출을 받은 평안감사 구봉서. 의주부윤 허적, 청성첨사 김여로, 창주첨사 최득남이 먼저와 대기하고 있었다. 용골대가 평안감사를 직접 심문했다.

“바다에 적선이 나타난 것을 감사는 몰랐느냐?”

구봉서가 머뭇거리자 세자가 대신 나섰다.

“감사가 평안도에 새로 부임하여 업무파악도 되어 있지 않았고 관내를 순시하는 중에 보고는 받았지만 문서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문에 알리지 못했을 것이오.”

“세자께서 이렇게 감사를 감싸고 있으니 마음을 같이하고 의논을 같이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소.”

“의심이 이토록 깊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

소현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웃음은 힘이 없었다. 이튿날, 이계가 오랏줄에 묶여 잡혀왔다. 손목이 오라에 묶인 이계에게 칼을 씌우고 용골대가 심문했다.

“명나라 배를 그냥 돌려보낸 일을 이실직고 하라.”
“저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고 군관 고충원과 정이남이 선천과 철산을 오가면서 감사와 병사의 명을 받들었습니다.”

말끝을 흐리던 이계가 쪽지를 내놓았다. 그 쪽지에는 최명길, 정태화, 임경업, 고충원, 정이남 등 10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군관 고충원과 정이남 그리고 선천부사 민응건, 전 철산군수 김여기를 잡아 오라”

밑으로 부터의 저인망 작전

분명히 전 영의정 최명길과 전 평안감사 정태화가 불거져 나왔는데도 손대지 않았다. 밑으로 부터의 저인망 작전이다. 또 다시 체포조가 압록강을 건넜다. 심문을 받던 이계는 격리수용 되어 후한 대접을 받았다. 지목된 사람들이 잡혀오는 동안 용골대는 유유자적 사냥을 즐겼다. 고충원과 정이남이 먼저 잡혀왔다, 군사들에게 곤장을 잡게 한 용골대가 고충원을 심문했다.

“네가 돌려보낸 명나라 배에 대하여 소상히 말하라.”

“지난해 명나라 배가 선천에 나왔을 때 최명길이 임경업과 상의하여 향산의 승려 한 사람과 뱃사공 네 사람에게 문첩(文帖)을 주어 보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자세히 아느냐?”

“직접 보았습니다.”

직접 보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용골대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최명길과 임경업을 잡아오라.”
#소현세자 #심양 #용골대 #의주 #봉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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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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