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9) 나목(裸木)

[우리 말에 마음쓰기 420] ‘양가감정(兩價感情)’과 ‘두 갈래 마음’

등록 2008.09.12 19:13수정 2008.09.1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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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나목(裸木)

 

.. 교문 안으로 들어서자 나목(裸木)의 언덕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에 다가선다 ..  <떠날 때>(신지식, 평민사,1977) 117쪽

 

 “교문 안으로 들어서자”라는 글월을 생각해 봅니다. “회사 안으로 들어서자”나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또는 “부엌 안으로 들어서자”나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자” 같은 글월을 견주어 봅니다. ‘안’이라는 낱말을 넣어서 어느 쪽인지를 뚜렷하게 밝힌다고 할 텐데, “교문으로 들어서자”나 “회사로 들어서자”나 “학교로 들어서자”나 “부엌으로 들어서자”나 “화장실로 들어서자”라 적을 때에는 어느 쪽에 있는가를 못 가리키게 되는가 곱씹어 봅니다.

 

 ┌ 나목(裸木) :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

 │   - 겨울 산의 나목이 맨몸으로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

 │     남쪽 담벼락을 끼고 몇 그루의 나목이 앙상한 가지들을 뻗고 있었고

 │

 ├ 나목(裸木)의 언덕이

 │→ 벌거숭이 나무 언덕이

 │→ 벌거벗은 나무가 서 있는 언덕이

 │→ 앙상한 나무가 있는 언덕이

 └ …

 

 우리들은 흔히 “벌거숭이 나무”나 “벌거벗은 나무”라고 말합니다. 한자말 ‘나목’은 말 그대로 “벌거숭이(裸) + 나무(木)”를 한자로 옮겼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글로만 적어 놓으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보기도 할 테지요. 그런데요, 이런 말, ‘나목’을 묶음표 치고 한자를 밝힌다고 해서 알아보기에 한결 나을까요. ‘나목’이라고만 적으면 알아보지 못한다고 느껴서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어 주니 글맛이 살거나 글멋을 북돋우게 될까요.

 

 ┌ 겨울 산의 나목 → 겨울 산 앙상한 나무

 └ 몇 그루의 나목이 → 몇 그루 앙상한 나무가 / 앙상한 나무 몇 그루가

 

 국어사전 보기글을 봅니다. “몇 그루의 나목이 앙상한 가지들을 뻗고”가 있습니다. ‘나목’은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라지요? 그렇다면 국어사전 보기글은, “몇 그루의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가 앙상한 가지들을 뻗고” 꼴이 되어요. 겹말입니다.

 

 처음부터 “가지가 앙상하다”라 하든지 “벌거벗은 나무다”라고 적었다면, 겹말이 될 일이 없습니다. 다른 낱말과 헷갈린다거나 못 알아듣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벌거숭이나무’나 ‘벌거벗은나무’를 찾지 않고 ‘나목’을 찾거나 ‘裸木’을 읊으면서, 말이 흔들리고 글이 엉망이 되고 삶이 뒤바뀝니다.

 

ㄴ. 양가감정(兩價感情)

 

.. 1899년 6월 3일 베이징에서 여동생한테 써 보낸 편지의 첫머리는 사라의 양가감정(兩價感情)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  <칸의 제국>(조너선 D.스펜서/김석희 옮김, 이산,2000) 154쪽

 

 “편지의 첫머리”는 “편지 첫머리”로 적어서 ‘-의’를 덜 수 있습니다.

 

 ┌ 양가감정(兩價感情) = 모순 감정

 ├ 모순감정(矛盾感情) : 논리적으로 서로 어긋나는 표상의 결합에서 오는 혼란

 │    스러운 감정. 어떤 대상, 사람, 생각 따위에 대하여 동시에 대조적인 감

 │    정을 지니거나, 감정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따위이다

 │

 ├ 양가감정(兩價感情)을

 │→ 이랬다저랬다 하는 마음을

 │→ 갈팡질팡 하는 마음을

 │→ 두 갈래 마음을

 │→ 두 마음을

 └ …

 

 ‘모순감정’을 뜻한다는 ‘양가감정’입니다. 이 말을 한글로 적은 뒤, 묶음표를 쳐서 ‘兩價感情’을 덧붙이면 얼마나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차라리 ‘모순감정’이라고 적을 때가 낫지 싶은데.

 

 ‘모순감정’이란 “이랬다저랬다 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이랬다저랬다 하는 마음”으로 적으면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묶음표를 쳐야 할 일도 없습니다. 길이를 줄이면 “갈팡질팡 하는 마음”입니다. “왔다갔다 하는 마음”이나 “오가는 마음”이라 해도 넉넉합니다. 여기에 있다가 저기에도 있는 마음이라면 “둘로 갈라진 마음”이고, “두 갈래 마음”이나 “두 가지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두 마음

 

 마지막으로, “두 마음”이라고 딱 잘라 말해 봅니다. 한 가지로 오롯이 이어지는 마음이 아니니, “어지러운 마음”이나 “어수선한 마음”이나 “뒤죽박죽인 마음”처럼 풀어내어 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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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2 19:13ⓒ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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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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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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