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48) 하이웨이

[우리 말에 마음쓰기 431] '길'과 '도로'와 '하이웨이(highway)'

등록 2008.09.25 11:06수정 2008.09.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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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선으로 이어졌던 이 도로는 이후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하이웨이의 확장 및 부분 포장 공사를 마쳤다 ..  <신상환-세계의 지붕, 자전거 타고 3만 리>(금토, 2000) 31쪽

 

 “한 줄 선(線)으로”는 겹치기이니, “한 줄로”로 고쳐 줍니다. ‘이후(以後)’는 ‘그 뒤’나 ‘그때부터’로 다듬고, “확장(擴張) 및 부분(部分) 포장(鋪裝)”은 “넓히고 군데군데 다지는”으로 다듬어 봅니다.

 

 ┌ highway

 │  1 간선 도로, 공로(公路), 주요 도로, 한길, 큰길;공수로(公水路), 교통로

 │  2 탄탄대로, 평탄한 길 《to》;(연구 등의) 정도(正道)

 │  3【컴퓨터】 하이웨이

 │

 ├ 하이웨이

 └ 고속도로

 

 마땅한 소리이지만, 국어사전에는 ‘하이웨이’라는 낱말이 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어사전을 뒤적여 이 낱말을 살펴봅니다.

 

 영어사전을 펼쳐 ‘highway’ 뜻풀이를 읽어 봅니다. ‘간선 도로’부터 ‘탄탄대로’까지 실려 있으나, 우리가 이 낱말 ‘하이웨이’를 쓸 때 생각하는 ‘고속도로’라는 풀이는 달리지 않습니다.

 

 ┌ 빠른 길

 ├ 너른 길 / 널찍한 길

 ├ 탄탄한 길

 └ 큰길 / 한길

 

 문득 궁금해집니다. ‘하이웨이’ 같은 낱말을 쓰신 분은 무슨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떠한 뜻을 담아서 이 낱말을 쓰셨을까요. ‘하이웨이’가 아니면 당신 속내를 밝힐 수 없었을까요. 꼭 ‘하이웨이’여야만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 이 도로는 오늘날 하이웨이의 확장 및 부분 포장 공사를 마쳤다

 │

 │→ 이 길은 오늘날 크고 시원하게 넓히고 바닥까지 다졌다

 │→ 이 길은 오늘날 널찍하게 바뀌었고 바닥도 다져져 있다

 │→ 이 길은 오늘날 넓고 시원한 길로 바뀌었다

 │→ 이 길은 오늘날 넓고 시원하고 고르게 바뀌었다

 └ …

 

 생각해 보면, 길은 ‘길’이기에, 도로이건 고속도로이건 간선도로이건 하이웨이건, 한 마디로 ‘길’이라고 해도 됩니다. 그저 길은 ‘길’이니, 이도 저도 꾸밈말을 덧달지 않고 ‘길’이라 해도 넉넉합니다.

 

 길이 넓으면 ‘한길’이나 ‘큰길’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말 그대로 ‘넓은 길’이나 ‘너른 길’이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널찍한 길’이라 해도 좋고, ‘시원한 길’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길이라면 ‘빠른 길’이라 할 수 있으며, 조금 길더라도 ‘빨리 달릴 수 있는 길’이라고 적을 수 있어요.

 

 ‘-道路’를 뒷가지로 삼아서 ‘간선도로-지방도로-고속도로’ 같은 새 낱말을 지을 수 있듯, ‘-길’을 뒷가지로 삼아서 ‘큰길-시골길-빠른길’ 같은 낱말을 알맞게 지으며 국어사전에도 싣고 널리널리 쓸 수 있습니다.

 

 차가 다니니 ‘찻길’입니다. ‘車道’가 아닙니다. 사람이 다니니 ‘사람길’입니다. ‘人道’가 아닙니다. 거니는 길이니 ‘거님길’입니다. ‘步行路’가 아닙니다. 자전거가 다녀서 ‘자전거길’입니다. ‘자전거道路’가 아닙니다. 버스가 다녀서 ‘버스길’입니다. ‘버스專用車線’이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 빠른길 / 느린길

 ├ 좁은길 / 넓은길

 ├ 트인길 / 막힌길

 └ …

 

 우리 스스로 푸지고 살뜰히 말을 가꾸고 살리고 있다면, 어줍잖게 ‘하이웨이’를 쓰는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답고 즐겁게 글을 보듬고 돌보고 있다면, 어설프게 갖가지 미국말을 아무 데나 함부로 쓰는 일은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우리 넋도 보살피지 않고, 우리 얼도 매만지지 않으며, 우리 땅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라는 틀에 매이거나 갇힐 까닭은 없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어디에 있고 우리 이웃이 누구인지를 돌아보지 않는 가운데 세상 살아가는 재미나 보람을 어떻게 찾거나 느낄 수 있겠습니까. 무너지는 삶에 따라 무너지는 말이 되고, 망가지는 삶터에 따라 망가지는 글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09.25 11:06ⓒ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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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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