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벌하기 위하여 압록강을 건너고 싶었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113] 포로를 이끌고 세자 돌아오다

등록 2008.10.25 16:20수정 2008.10.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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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보. 심양의 곡창 사하보. 지평선이 맞닿은 평야다. 세자관의 둔전도 이곳에 있었다. ⓒ 이정근


세자가 영구 귀국한다는 소식은 심양 교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포로출신 조선인들에게 희망이자 절망으로 다가왔다. 포로들은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세자도 볼모생활하고 있는데’라고 자위하며 의지했는데 이제 그 대상이 없어지게 됐다. 한을 삼키며 이곳에 남느냐? 목숨을 걸고 탈주하느냐? 기로에 선 것이다.

세자의 귀국 행차가 사하보와 백탑보를 거칠 때 논밭에서 일하고 있던 노예들의 대량 탈주 사태가 벌어졌다. 통원보를 지나고 봉황성에 이르렀을 때는 인원이 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포로로 잡혀와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조선인들이 탈주하여 합류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 세자와 빈객이 대책을 논의했다.


따라붙는 탈주 포로들, 데리고 가야 하나? 떨쳐내야 하나?

“청나라는 분명 책문에서 문제 삼을 것입니다.”
“책문도 걱정이지만 앞서 가는 칙사도 문제입니다. 여우 같은 정명수가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청나라는 세자 귀국과 함께 칙사를 내보냈다. 북경 평정을 조선에 알리고 등극 조서를 반포하기 위해서다. 상사에 예부시랑 남소이, 부사 히소이, 역관 정명수였다. 그들은 세자 일행보다 사흘 앞서 조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따라붙는 동포를 떼어놓고 갈수야 없지를 않소.”
“인정상 그럴 수야 없지만 세자저하의 행차에 누가 될까 봐 그렇습니다.”
“칙사의 입은 막을 수 있지만 책문 경비는 계통이 다릅니다.”

칙사는 예부 소관이고 책문은 병부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이다.


“심양을 떠나올 때 아문에 귀국자 명단을 넘겨주었는가?”

관원들의 난상토론을 지켜보던 세자가 물었다.


“명단을 넘겨준 것은 없지만 대략의 숫자는 일러주었습니다.”
“몇 명이라고 했는가?”
“5백 명이라고 했습니다.”

한두 명이라면 몰라도 배수가 넘는 인원이다. 먼 산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던 소현이 입을 열었다.

“탈주한 동포도 모두가 우리 백성이다. 하나도 떨구지 말고 데리고 가라.”

세자의 엄명이 떨어졌다. 무리가 되더라도 부딪혀서 돌파하자는 것이다. 드디어 책문에 도착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해?”

책문을 경비하던 수문장이 기겁을 했다.

너희가 하면 계산이고 우리가 하면 셈이냐?

“너희나라가 무고한 조선 사람을 많이 붙잡아 왔기 때문에 돌아가는 사람도 많은 것이다.”

보덕 서상리가 맞받아 쳤다.

“잡혀 왔는지 담배장사하러 왔는지 난 그런 거 모른다. 호부에서 5백 명이라고 했는데 이거 너무 많다 해.”
“너희 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와 백성들을 끌어갈 때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치부한 일이 있다. 그렇게 헤아리면 5백 명이 넘지 않겠는가? 너희가 하면 산법이고 우리가 하면 셈법인가?”

헐벗고 굶주린 군졸과 백성들이 산성에서 내려왔을 때 병약하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계산한 일을 상기하며 되갚아주었다.

“그런 셈법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 해? 난 그런 계산법 모른다 해.”

난관에 봉착했다. 수문장이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조선국 세자다. 고국에 돌아가라는 황제의 명을 받잡고 고국에 돌아가는 길이다. 돌아가는 식솔들이 한두 사람 많고 적은 것이 무슨 문제라고 길을 막는 것이냐? 냉큼 길을 열어라.”

익위사 관원과 건장한 호위무사를 거느린 소현이 호통을 쳤다. 황제의 명이라는 말에 수문장이 꼬리를 내렸다. 드디어 굳게 닫혀 있던 책문이 열렸다. 세자관 식솔들과 탈주한 포로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책문을 통과했다. 책문을 빠져나온 포로들은 싱글벙글 어찌할 줄 모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구련성에서 하룻밤을 묵은 세자 일행은 애자하에서 압록강 도하작전에 돌입했다. 소현이 강빈과 함께 배에 올랐다. 소현은 다가오는 고국산천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정축년, 볼모로 끌려갈 때는 다시는 못 볼 것 같았던 조국산천이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의주 삼각산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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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압록강 강변에 있는 표지석. ⓒ 이정근

소현이 탄 배가 압록강 푸른 물을 건너 의주에 도착했다. 강 건너 청나라 땅을 바라보는 소현은 감회가 새로웠다.

“도르곤이 요하를 건너던 심정으로 내 다시 압록강을 건너리….”

도르곤과 소현은 동갑내기다. 띠동갑 도르곤이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요하를 건너던 모습을 소현은 잊지 않고 있었다. 당당했던 그 모습. 자신만만했던 그 모습. 자신에게 여건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러한 모습으로 압록강을 건너고 싶었다. 허나, 소현은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임금

세자의 영구 귀국을 통보받은 조정은 환영 일색이었으나 임금 인조는 불안했다. 청나라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인조는 소현을 내보낸 청나라의 저의에 모든 관심을 집중했다.

“소용! 청나라가 세자를 내보낸 까닭이 무엇이라 생각하오?”
“젊고 건강한 세자를 내보내 왕을 시키려는 거겠지요.”

항상 병석에 누워 있는 인조의 아픈 곳을 찔렀다.

“그렇다면 날 북경으로 데려간단 말이오?”
“중원을 장악한 그들이 그러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겠어요.”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인조는 충격을 받았다.

“아, 안돼….”

그럴 수도 있다는 소용 조씨의 말에 인조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부랴부랴 어의가 들어오고 이형익이 불려 들어왔다.

“소란스럽게 할 것 없다. 주상전하의 병은 내가 잘 아는 병이다. 어의는 물러가고 이형익이 침을 놓도록 하라.”

소용 조씨가 개갈을 냈다. 후궁이 나설 일이 아니지만 그녀가 진두지휘에 나선 것이다. 진맥도 없이 침을 놓으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어처구니없는 처사에 어의 박군은 기가 막혔으나 조용 조씨의 성화에 아무 말도 못하고 침전을 물러나왔다. 이형익이 임금의 13군데 혈에 침을 놓았다.

움직이지 않는 칙사, 어떻게 모셔올 것인가

소현 일행과 평양에서 합류한 칙사가 임진강을 건너며 임금의 교외 영접을 요구했다.

“주상전하께서 병환 중이라 교외 영접은 어렵습니다.”

원접사가 조정의 형편을 전달했다.

“세자를 돌려보내는 경사인데 고약하구나.”

심기가 불편한 칙사는 벽제관에 도착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세자를 돌려보내는 선심을 쓰는데 대접이 소홀하다는 것이다. 조정에서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기왕 줄 거 은 3천 냥을 청나라 세 사신에게 똑같이 사례한다고 미리 말해주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호조에서 비답을 내놓았다. 조정의 중지라고는 뇌물밖에 생각하는 것이 없었다. 비국당상이 인조가 침을 맞고 있는 침전을 방문하여 조정의 의견을 품의했다.

“은 1600냥을 청나라 사신 두 사람에게 주고 정명수에게는 3500냥을 주라.”

임금은 사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역관 정명수가 두려웠던 것이다. 병중에 있는 자신을 정명수가 청나라에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조의 재가를 받은 조정은 낙흥부원군 김자점을 파견했다. 국가 원로를 보내어 통사정하기 위해서다.
#압록강 #임진강 #칙사 #벽제관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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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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