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네 가족 이영순 할머니와 딸과 사위, 그리고 활짝 웃는 애리.
문종성
"한국이 그리워요?""네, 많이많이.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요."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일단 우리나라와 쿠바는 국교수립이 되어있지 않다. 우리야 여권 아닌 다른 곳에 입국허용 비자를 찍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지만 아마 제도상 쿠바인들이 우리나라를 함부로 왔다갔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정부의 허락을 받아 초대한다고 해도 항공료 값은 이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못 된다.
"우와, 태극기네?"그녀가 한국을 진심으로 그리워한다는 것은 방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 연예인 브로마이드로 수놓아지는 열여섯 소녀의 방 한 쪽 면에는 대신 거대한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거실은 태극모양의 부채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오래돼 색이 바랜 한국 모델 사진으로 장식해 자신이 한국 핏줄임을 선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CD케이스에서 뽑은 것은 반갑게도 양동근 주연의 한국 영화 <바람의 파이터>. 한국말 그대로 나오고 자막은 스페인어로 처리한 것이었는데 덕분에 오랜만에 한국 문화갈증까지 풀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매주 한 번씩 다니는 곳은 다름 아닌 한글학교. 이 정도면 그들의 한국 사랑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하겠다.
애리의 꿈은 한국에서 체계화 된 한글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단다. 쿠바라는 갇힌 공간에서 마음만은 한국을 향해 항상 열려 있다. 다른 사춘기 소녀들과는 분명 다른 그리움이자 꿈이다.
▲부채 한국의 가정집에서도 이젠 보기 힘들어진 전통 부채가 쿠바의 가정집에 걸려있다.
문종성
▲한복 사진 단아한 자태의 모델이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 밑 포스터에는 아리랑이라는 영문글씨가 보인다.
문종성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끝나고 밤이 깊어가자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쿠바에 있지만 꼭 한국 같았던 포근한 느낌이라서 그랬는지 더 있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김치를 먹고, 한국 영화를 보고, 대형 태극기와 태극부채와 한복 사진을 통해 내가 한국에서 누리는 평범한 것들이 다른 이에겐 얼마나 갈망하는 소중한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나조차도 한국이 다시 한 번 떠올려지는 나의 소중한 조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빠가 생긴 것 같아 좋아요."울먹이는 애리를 다독이고 숙소로 향하면서 이들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는 정부에 대한 섭섭함과 이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에 어쩐지 미안해졌다. 지구상에 두 나라 밖에 없다는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쿠바는 공교롭게도 모두 우리와 깊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곳이다. 하루 빨리 이들 나라와의 민간교류가 더욱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젠간 애리의 소박한 꿈이 이뤄지길 바라면서….
▲말레콘에서 필자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오랜만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문종성
한인 후예들 지원정책은 없는 것인가? |
멕시코, 쿠바에는 1세기 전부터 노동자로 이민 온 한인 후예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듣기로는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이런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전히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는 한인 후예들을 멕시코 유카탄 반도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일본정부는 같은 시기, 노예가 아닌 경영자로 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에게 아낌없는 지원 정책을 펼쳐 현지에서 정착할 수 있게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오히려 이민 초기 약속과는 달리 점차 노예화 된 우리나라 노동자들과는 달리 막대한 부를 가지고 경영하는 입장이었던 일본인들과의 경제적 간극은 좁히지 못하고 지원정책은 서로가 오히려 반대로 간 실정이다.
물론 쿠바로 간 한인후예들은 멕시코에서의 경제적 압박과 노동 수난을 이기지 못하고 탈출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들도 명백한 한인 후예들이므로 같은 맥락에서 지원정책을 논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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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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