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백범의 죽음, 안두희와 김학규

[김갑수 역사팩션 182] '열두 개의 눈동자' 편

등록 2009.01.06 13:31수정 2009.01.0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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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호는 신문에서 김구와 김규식 등이 남북회담을 위해 38선을 넘었다는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는 김구가 반탁운동에서 무리수를 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구는 신탁통치안이 불거지자 그동안 미군정에 억눌렸던 감정을 분출이나 한다는 듯이 반탁운동의 선봉을 자처하며 미군정을 공격했었다.

김구는 임시정부 공식 승인을 요구하면서, 전국 군정청 관리의 총사직, 38선 이북의 조선인 행정·사법 당사자 총 이탈, 전 국민 총파업, 신탁통치 배격운동 불참자에 대한 민족 반역자 규정, 전체 정당의 즉시 해체 등을 골자로 하는 12개 항의 실행 방법을 관철하려 했다.

또한 그는 '국자 1호'를 발표하여, "현재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조선인 직원은 전원 임정 지휘 하에 들어오라"고 촉구함으로써 임시정부의 행정권 행사를 강행하려 했다. 그는 아울러 전국 총파업을 재차 촉구했다.

그때 임주호는, 김구의 강경책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과 같다고 말했었다. 김구는 정치를 해야 할 시점에 여전히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군정은 이런 임정의 기도를 쿠데타로 간주한다면서, 임정 요원의 중국 추방을 통고했다. 그러자 김구는 국민 총파업을 철회했다. 결국 김구의 강력한 반탁 운동은 오히려 군정의 장악력과 이승만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에 철저히 이용되고 만 것이다.

임주호는 미국과 소련의 신문까지 구해 읽으며 나름대로 정확한 국제정세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북에서는 이미 '스탈린 지령'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인민정부가 구성된 것도 스탈린 지령에 의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삼팔선을 베고 죽더라도 민족의 분단을 막겠다."

임주호는 김구의 이런 수사법이 안타깝고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김일성과 회담을 한들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리라고 그는 예측했다. 다만 그것은 김구가 분단을 막으려고 고심했다는 점을 역사에 남기는 정도의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김구, 김규식의 북행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반대세력의 저지 노력도 드세게 일었다. 미군정과 우익단체, 기독교 단체와 월남동포 단체들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문화인과 법조인 단체들은 남북회담에 찬성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평양에서는 이미 '전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미· 소 양군의 즉시 철수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가 결의되었다. 북에서는 김일성과 연안독립동맹 주석이었던 김두봉이 김구와 김규식 등을 맞이했다. 이어 남쪽 대표 11인과 북쪽 대표 4인이 모여 15인 연석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에서는 외국군 즉시 철수와 철수 후 내전 발생 부인, 조선 정치회의 구성과 그 주도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 실시와 정부 수립, 남한 단독 선거 반대 등 4개 항이 채택되었다. 다음으로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4인이 따로 모여, 남쪽에 대한 북쪽의 송전 계속, 연백 수리조합 개방, 신탁통치 반대로 북에 억류되어 있는 조만식의 월남 등이 합의되었다.

이어서 남북 대표는 합의안을 관철시키려는 행동에 돌입했다. 그들은 소련과 미국군 군사령부를 방문해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소련은 미군이 철수하면 하겠다고 응대했고, 미국은 유엔의 결의대로 정부 수립 후 철수하겠다고 대응했다.

사실 안타깝게도 남북 합작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미· 소의 동의 없이는 성과를 낼 수가 없도록 되어 있었다. 결국 김구, 김규식은 미구에 닥칠 무서운 민족 결별을 예감하며 노을이 지고 있는 38선을 허허로이 걸어 내려와야 했다.

오호! 여기 발 구르며 우는 소리

장준하는 김구의 장의 행렬을 따라가고 있었다. 상여는 소공동 전차길 위를 지나고 있었다. 흰옷 입은 수만 명의 청장년들이 상여를 따라 걷고 있었다.

김구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한국인들은 노선의 구별 없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통일의 염원을 담은 혈서들이 연일 경교장으로 답지했다. 그의 죽음을 따라 할복과 음독을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상객 중에는 거지도 있었고 여승도 있었다. 고구마 장수 할머니도 그의 영정 앞에 나와 오열했다. 신분고하를 막론한 추모객들이 경향 각지에서 몰려들어 1분 당 100명꼴로 분향 배례했다.

상여가 시청 앞 광장에 이르자 백범 추도가가 울려 퍼졌다.

오호!/ 여기 발 구루며 우는 소리/ 지금 저기 아우성치며 우는 소리/ 하늘도 땅도 울고 바다조차 우는 소리/ 끝없이 우는 소리 / 임이여 가십니까?

이 겨레 나갈 길이/ 어지럽고 아득해도/ 임이 계시옴에 든든한 양 믿었더니/ 두 조각 갈라진 땅 그대로 버리고서/ 천고에 한을 품고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범인은 포병 소위 안두희라고 했다. 그는 장준하의 고향과 가까운 평안도 용천 사람이었다. 그는 한독당의 비밀 당원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 한독당 조직부장 김학규가 안두희를 경교장에 출입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했다.

장준하는 김학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장준하가 학병에서 탈출하여 중경에 이르기 전 임천에 머물렀을 때 만난 광복군 책임 장교였다. 그는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안두희에게 넘어갔을 것이었다.

장준하는 고인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자기가 경교장을 나오지 않고 고인의 비서 역을 계속 했더라면, 이 어처구니없는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두희는 비서들이 보는 가운데 총을 차고 경교장에 들어갔다고 했다. 장준하는, "우익은 좌익보다 좌익에 협조하는 우익을 더 증오한다"고 한 임주호의 말을 떠올렸다.

안두희는 서북청년단의 회원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범석의 족청에도 잠시 몸담았다고 했다. 전력으로 보아 그는 극우주의자임이 분명했다.

같은 형량을 받은 안두희와 김학규

안두희는 범행 직후 총을 계단에 던지면서, "내가 주석 선생을 시해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하고 있던 헌병들에게 연행되었다. 당일 오후 2시 헌병 부사령관 전봉덕은, "범인이 의식을 찾는 대로 배후를 엄중 조사하겠으나 아직까지 알려진 바로는 단독 범행인 것 같다"고 발표했다.

다음 날 오전 안두희는 특무대로 이송되었다. 국방부 보도과는, "진상은 목하 엄중 취조 중에 있으며 지금까지 판명된 것은 다음과 같다"고 공식 발표했다.

1. 안두희는 한독당원으로 김구의 측근이었다.
2. 안두희는 누누이 김구와 상봉하여 직접 지도를 받은 자이다.
3. 당일 인사 차 김구를 만나러 갔다가 언쟁 도중 격분하여 순간적으로 살의가 발생했다.

사건 다음 날인 6월 27일, 호남 순찰 도중 김구의 암살 소식을 전해들은 국무총리 이범석은 백범의 죽음을 애도하고는, "일반 국민은 억측과 요언을 엄금하기 바란다"라고 덧붙이는 성명을 발표했다.

3일 후 이승만도 성명에서, 암살 사건은 한국독립당의 당내 분쟁의 결과임을 강조하면서, 암살의 자세한 동기를 밝히지 않는 것이 고인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추후 안두희는 검사에게 총살형을 구형받았지만, 재판장 원용덕은 종신형으로 감형한다. 1949년 8월의 일이었다. 그는 술, 담배, 집필, 목욕, 신문 열람, 특별 면회가 허용되는 감방에서 생활했다. 그는 3개월 후 15년으로 감형되었다. 다시 4개월 후 10년으로 감형되었고 11개월 후에는 아예 잔형 면제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 후 육군 장교로 복귀했다. 대위로 진급한 그는 대북 특수공작대에서 일하다가 제대하여 강원도에서 군납 사업을 벌였는데 도내 납세액 3위에 오를 정도로 성공했다.

한편 김학규는 안두희를 한독당에 가입시킨 혐의로 헌병사령부에 구속되었다. 당시 현행법에는 군인의 정당 가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는 24시간 수갑을 채워놓는 육군 형무소 지하 감방에 투옥되었다.

그는 채병덕 총참모장의 장인 백홍석 대령이 재판장인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이후 15년으로 감형되었다. 안두희와 같은 형량을 받은 것이었다. 이후 그는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석방된 후 수원에 내려가 이름을 바꾸고 변장하며 살다가 발각되어 재수감되었다. 그는 4·19 때까지 복역했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6, 7회 정도 더 연재된 후 막을 내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소설은 6, 7회 정도 더 연재된 후 막을 내립니다.
#백범 #남북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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