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작은 일터
.. 대부분 29인 이하의 작은 사업장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박채란-국경 없는 마을》(서해문집,2004) 72쪽
"29인(二十九人) 이하(以下)의 작은 사업장"은 "스물아홉 사람이 안 되는 작은 사업장"으로 다듬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마음을 기울여서 "스물아홉 사람이 안 되는 작은 일터"로 다듬어 봅니다. '사업을 하는 곳'이라고 하여 '사업장(事業場)'일 텐데, '사업'이란 다름아닌 '일'을 가리키는 한자말일 뿐입니다.
┌ 소규모(小規模) : 범위나 크기가 작음
│ - 소규모 거래 / 소규모 건물 / 소규모 공장 / 소규모 농장 /
│ 소규모의 자본 / 집에서 소규모로 닭, 돼지 등의 가축을 길러 왔다
│
├ 작은 일터 (o)
└ 소규모 사업장 (x)
나라안에서 쓰이는 말을 헤아려 보면, '소규모 사업장'과 '대규모 사업장'일 뿐, '작은 일터'와 '큰 일터' 같은 말은 쓰이지 않습니다. 쓰려 하지 않습니다. 쓸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집이 작으면 '작은 집'이고 집이 크면 '큰 집'입니다. '소규모 주택'도 아니요, '대규모 주택'도 아니며, '저택'이나 '대저택'도 아닙니다.
┌ 조금 사고팖 / 조금 주고받음 ← 소규모 거래
├ 작은 건물 ← 소규모 건물
├ 작은 공장 ← 소규모 공장
├ 작은 농장 ← 소규모 농장
├ 적은 돈 ← 소규모의 자본
└ 돼지 같은 집짐승을 조금 길러 왔다 ← 소규모로 돼지 등의 가축을 길러 왔다
우리 말은 '크기'입니다. 중국말과 일본말은 '規模'입니다. 우리 말은 '작다'와 '크다'이고 중국말과 일본말은 '小規模'와 '大規模'입니다.
사람에 따라, 또 자리에 따라, 우리 말이 아닌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쓰고플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미국말을 아무 자리에나 아무렇지도 않게 쓰니, 중국말이건 일본말이건 어느 자리에나 얼마든지 쓸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다만, 우리가 우리 말 아닌 말을 왜 써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말 아닌 말을 누구하고 주고받으려 하는지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말 아닌 말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곱씹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좋자면서 우리 말을 안 쓰는지, 우리가 우리 삶터를 가꾸려는 마음으로 우리 말을 안 쓰는지, 차근차근 되짚어 보면 좋겠습니다.
┌ 작은 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 작은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 …
'먹을거리'나 '밥'이라는 말은 알맞지 않다고 '飮食'이라는 한자말을 들여왔다가, 이제는 'food'라는 미국말만을 쓰는 듯한 흐름입니다. '부엌'을 밀어내고 '廚房'에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kitchen'에서 '料理'도 아닌 'foodstyle'을 뽐내고 있습니다.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생기고, 대학교에서는 푸드스타일학과를 열었으며, 푸드스타일링으로 새로운 멋을 가꾸기까지 합니다.
숨이 꽉 막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가 차서 쓴웃음이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제 둘레 어느 누구도 숨이 막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제 둘레 동무나 선후배 가운데 쓴웃음을 짓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모두들 같은 배를 타고 흘러갑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 마음 고이 붙안는 이웃이나 동무가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사랑 애틋이 나누는 이웃이나 동무를 찾기 어렵습니다. 작은 몸 소담스레 돌보며 작은 일 하나로 기뻐하며 작은 몸짓으로 작은 믿음 주고받는 벗님과 길동무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ㄴ. 기름밭
.. 따라서 첫 번째 근거대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전(油田)이 풍족하다 하더라도 .. 《정혜진-태양도시》(그물코,2004) 31쪽
한글로 '유전'이라고만 적으면 못 알아들으리라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묶음표를 치고 한자로 '油田'을 적어 넣습니다만, 이렇게 적어 넣는들 무엇이 달라질는지 궁금합니다. 한자를 모르는 이한테는 이렇게 적으나 마나가 아닐까요? 한자 모르는 사람은 아예 이 낱말을 읽어내지 말라는 일이 아닐까요? 말로 휘두르는 주먹질이 아닌가요?
┌ 기름밭 : 기름이 나는 밭. 그러니까 기름, 곧 석유가 나는 곳을 가리킨다
└ 유전(油田) : 석유가 나는 곳
기름을 파는 가게를 두고 '기름집'이라고 해 왔습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곳이 '주유소(注油所)'라는 이름이 붙지만, 먹는기름이건 기계를 돌리는 기름이건, "기름을 파는 집"이라 하여 '기름집'이었습니다.
배추를 기르는 밭은 배추밭입니다. 고추를 기르니 고추밭입니다. 마늘을 길러 마늘밭이며 뽕을 길러 뽕밭입니다.
소금을 일구니 소금밭입니다. 우리가 쓰는 기름을 얻어낸다고 하면 '기름밭'입니다. 집 앞에 '텃밭'을 일구고, 사람마다 '마음밭'을 가꿉니다. 저는 글쓰기를 하니 '글밭' 또한 일굽니다. 게다가 사진도 찍으니 '사진밭'을 돌봅니다. 그림까지 그린다면 '그림밭'을 가꾸는 셈이 될 테고, 깊이깊이 생각을 톺으며 지낸다면 '생각밭' 가꾸기도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방송에 나와 이야기판을 벌이는 분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라면 '말밭'이나 '이야기밭'을 일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분은 바다농사, 곧 '바다밭'을 돌보실 테지요. 그렇지만, 요즈음 우리 나라 사람들은 뭐니뭐니 해도 '돈밭' 하나만 바라보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3.01 16:30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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