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65) 전혀

[우리 말에 마음쓰기 609] ‘전혀 다른’, ‘전혀 없다’,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등록 2009.04.14 11:09수정 2009.04.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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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전혀 다른 생태적인 경제기적

.. 이번에는 경제기적이라는 의미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강력한 변화와 쇄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생태적인 경제기적이 독일 내에서, 그리고 독일로부터 퍼져나가게 만들 수 있을까? ..  《프란츠 알트/박진희 옮김-생태적 경제기적》(양문,2004) 15쪽


'의미(意味)에서'는 '뜻에서'로 다듬고, "강력(强力)한 변화(變化)와 쇄신(刷新)을 요구(要求)한다"는 "크게 바뀌고 거듭나기를 바란다"나 "확 달라지고 새로워지기를 바란다"로 다듬어 줍니다. '점(點)에서'는 '대목에서'로 손보고, "생태적(生態的)인 경제기적"은 "생태를 살리는 경제기적"이나 "생태를 사랑하는 경제기적"으로 손봅니다. "독일 내(內)에서"는 '독일에서'로 손질하며 '독일로부터'는 '독일에서'로 손질해 봅니다.

 ┌ 전혀(全-) : (주로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낱말과 함께 쓰여) '도무지',
 │    '아주', '완전히'의 뜻을 나타낸다
 │   - 전혀 다른 사람 / 전혀 생소한 모습 / 전혀 쓸모없는 물건 /
 │     전혀 새로운 분야 /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 전혀 관계가 없다 /
 │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 그는 고기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
 │
 ├ 전혀 다른
 │→ 아주 다른
 │→ 몹시 다른
 │→ 사뭇 다른
 │→ 크게 다른
 └ …

우리가 쓰기 나름인 말입니다. 한 번 두 번 쓰는 동안 입에 익고 손에 익고 눈에 익고 귀에 익은 말이 됩니다. 처음에는 낯선 말이었다고 해도, 차츰차츰 익숙한 말로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거리끼던 말도 하루이틀 지나는 동안 찰싹 달라붙는 말로 거듭납니다.

 ┌ 전혀 관계가 없다 → 아무 관계가 없다 / 아무런 관계가 없다
 ├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터졌다
 ├ 전혀 쓸모없는 물건 → 하나도 쓸모없는 물건 / 어디에도 쓸모없는 물건
 ├ 전혀 생소한 모습 → 참 낯선 모습 / 더없이 낯선 모습
 └ 고기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 → 고기를 조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아주'가 있고 '무척'이 있고 '몹시'가 있고 '매우'가 있습니다. '꽤'가 있고 '썩'이 있고 '퍽'이 있고 '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낱말도 우리 스스로 사랑하지 않으면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며, 우리 스스로 아끼지 않으면 하루하루 잊혀지고 맙니다. 그예 낯선 말로 바뀝니다.


하루이틀 멀어지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차츰차츰 우리 입과 눈과 손과 귀에서 멀어지는 가운데, 국어사전에만 실린 죽어 버린 말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이냥저냥 뜻만 대충 건네면 그만이지 하고 여기는 동안, 우리 말에 담기는 삶이 일그러지고 있는 줄을 느끼지 못합니다.

ㄴ. 전혀 관심이 없다


.. 나와 형제들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  《자비네 퀴글러/장혜경 옮김-정글 아이》(이가서,2005) 22쪽

"관심(關心)이 없었다"는 "눈길을 두지 않았다"나 "마음쓰지 않았다"나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나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나 "마음이 없었다"로 다듬어 줍니다. "그런 것에는"은 "그런 데에는"으로 손질합니다.

 ┌ 전혀 관심이 없었다
 │
 │→ 조금도 눈길을 두지 않았다
 │→ 하나도 마음쓰지 않았다
 │→ 눈꼽만큼도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 터럭만큼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 …

'도무지'나 '아주'를 뜻하는 '全혀'라면, 말뜻 그대로 '도무지'나 '아주'를 넣어 줍니다. 보기글에서도 '도무지'를 넣어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처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참말로 이렇게 쓰면 됩니다. 요 한 마디면 넉넉합니다.

느낌을 조금 달리하고 싶으면 '터럭만큼도'나 '털끝만큼도'를 넣어 줍니다. '하나도'나 '조금도'를 넣어도 됩니다. '눈꼽만큼도'라든지 '코딱지만큼도'를 넣어도 재미있습니다.

ㄷ.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 "국제적십자위원회가 필요하고도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의뢰한다"는 내용이지만, 그것이 어떤 조치인지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  《테사 모리스-스즈키/한철호 옮김-북한행 엑서더스》(책과함께,2008) 294쪽

"필요(必要)하고도 적당(適當)하다고"는 "꼭 있어야 하고 알맞다고"로 다듬고, "조치(措置)를 취(取)할 것을 의뢰(依賴)한다는"은 "일을 하도록 맡긴다"로 다듬으며, '내용(內容)'은 '줄거리'나 '이야기'로 다듬습니다. '그것이'는 '그 이야기가'나 '그 줄거리가'로 손질하고, '제시(提示)하지'는 '내놓지'나 '적지'로 손질합니다.

 ┌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
 │→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 한 마디도 적지 않았다
 │→ 한 글자도 적어 놓지 않았다
 └ …

두루뭉술하게 적어 놓고 알맹이는 없다는 소리입니다. 알맹이는 없으니 "하나도 안 내놓은" 셈입니다. "텅 비어 있는" 셈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셈이며, "고요한 산울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곳에도 따로 밝혀 놓지 않았으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어디에도 적어 놓지 않았으니 겉발림일 뿐이라는 소리입니다.

 ┌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 어느 곳에도 밝혀 놓지 않았다
 └ …

정치에서만 이루어지는 껍데기나 겉발림이 아닙니다. 우리 삶터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껍데기요 겉발림입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걷는 길에 깔아 놓는 벽돌을 갈아치우는 일이 쓸데없는 노릇이라고 하지만, 버젓이 되풀이됩니다. 이런 일이 쓸데없다고 하는 이야기가 가득한 가운데 새롭게 공무원이 된 사람들도 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되풀이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삶자리 구석구석 쓸데없는 일이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는 동안, 우리들 쓰는 말과 글이 나날이 찌들고 뒤틀리고 엉망진창이 되는 모습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더 크다고 하는 일, 더 작다고 하는 일 어느 곳에서도 아름답고 싱그럽고 밝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말이며 글이며 아름답거나 싱그럽거나 밝게 거듭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매무새를 우리 스스로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우리 말은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습을 우리 손으로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 글은 아무런 힘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 삶터를 우리가 기꺼이 나서며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 넋과 얼은 힘알이 없는 찌끄러기로 나뒹굴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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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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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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