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30)

[우리 말에 마음쓰기 612] ‘자기 존재의 존엄성’, ‘사제로서의 나의 존재’ 다듬기

등록 2009.04.17 10:47수정 2009.04.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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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자기 존재의 존엄성

 

.. 니어링에게 귀농이란 자기 존재의 존엄성을 구현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삶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길이었습니다 ..  《이병철-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이후,2007) 209쪽

 

'구현(具現)하면서'는 '드러내면서'나 '나타내면서'로 다듬고, "자본주의에 대(對)한 대안적(對案的) 삶을 실현(實現)하는 구체적(具體的)인 길"이라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다른 삶을 이루어내려는 새 길"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자본주의와는 다른 삶을 찾아내려는 새로운 길"로 다듬어도 됩니다.

 

 ┌ 자기 존재

 │

 │→ 내 목숨

 │→ 나라고 하는 사람

 │→ 나 스스로

 │→ 내 몸

 │→ 내 몸과 마음

 │→ 나

 └ …

 

'존엄성(尊嚴性)'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높이는 마음? 거룩하게 돌보는 마음?

 

앞말 "자기 존재"와 붙은 '존엄성'은 어떤 모습을 가리키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나라고 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나와 같은 사람을 높이는" 마음? "농사짓는 내 몸을 거룩하게 돌보는" 마음?

 

보기글을 통째로 고쳐쓰면서 거듭 생각해 봅니다. "니어링한테 농사짓기란, 소중한 내 목숨을 빛내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을 이루어내는 길이었습니다."

 

 ┌ 내 몸을 거룩하게 여기면서

 ├ 내 몸이 거룩함을 느끼면서

 ├ 내 몸이 거룩해지도록 하면서

 ├ 내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돌보면서

 ├ 내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가꾸면서

 └ …

 

제 밥상을 제 손으로 일하여 거둔 곡식으로 차리도록 하는 일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밑바탕입니다. 가장 바탕이 되는 일이니 가장 손쉬운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손으로 농사를 지어서 밥을 해 먹지 않으니, 이 손쉬운 일이 손쉽지 않다고 느끼고 말았는데, 어쩌면 가장 손쉬운 밑바탕 일자리를 우리 스스로 놓아 버리면서 우리 넋과 얼 모두 어지러이 헤매게 되지 않느냐 싶습니다.

 

제 삶을 놓고 제 생각을 놓으며 제 말을 놓습니다. 제 몸을 놓고 제 손길을 놓으며 제 글을 놓습니다.

 

우리 스스로 제자리가 어디인지를 돌아보지 않고서야 우리 스스로 튼튼하게 설 땅을 찾을 수 없고, 우리 스스로 제자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느끼지 않고서야 우리 스스로 옳고 바르게 쓸 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오늘날과 같은 도시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농사짓기로 돌아가기란 몹시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러나, 논밭을 부치는 농사만이 농사가 아닙니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텃밭농사를 일굴 수 있고, 콩이나 몇 가지 푸성귀는 집에서도 꽃그릇에 기를 수 있습니다.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농사짓는 사람 마음으로 할 수 있으며, 회사일이나 학교일을 농사짓는 사람 매무새 그대로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우리 밑바탕 넋과 얼을 붙잡을 수 있으면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ㄴ. 사제로서의 나의 존재

 

.. 이때야말로 하나의 사제로서의 나의 존재가 뚜렷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 《레오 트레스/정진석 옮김-질그릇(사제생활의 하루)》(가톨릭출판사,1967) 24쪽

 

"하나의 사제로서"는 "한 사제"나 "사제 한 사람"이나 "사제"로 다듬습니다. "빛나는 순간(瞬間)이다"에서는 보기글 앞에 '이때'라고 나오는 만큼 "빛난다"처럼 손질해도 되고, "빛나는 때이다"처럼 다시금 '때'를 적어 주어도 됩니다.

 

 ┌ 하나의 사제로서의 나의 존재가

 │

 │→ 한 사제로서 내 자리가

 │→ 사제라는 내 자리가

 │→ 사제로서 내 이름이

 │→ 사제로서 내가 들려주는 말마디가

 └ …

 

교회 목사님은 예배를 올릴 때, 절집 스님은 예불을 드릴 때, 성당 신부님은 미사를 모실 때 스스로 당신 자리가 거룩함을 느끼리라 봅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 말씀을 고이 받들면서 사람들한테 너른 사랑과 깊은 믿음을 나누게 되는 그 자리가 고맙고 아름다움을 느끼리라 봅니다.

 

겉을 바르지 않고 티를 털어내며 착하게 애쓰며 흘리는 땀방울이라면, 사제 자리가 아니더라도 똑같이 거룩함을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속을 알차게 가꾸면서 티끌을 떨구는 가운데 슬기롭게 힘쓰며 나누는 땀방울이라면, 어느 자리에 있든 언제나 고마움과 아름다움이 가득하면서 즐거웁지 않으랴 싶습니다.

 

 ┌ 이때야말로 사제라는 내 자리가 뚜렷하게 빛나는 때이다

 ├ 이때야말로 사제라는 내 이름이 뚜렷하게 빛나게 된다

 ├ 이때야말로 사제로 서 있는 내 온몸이 뚜렷하게 빛난다

 ├ 이때야말로 사제로 일하는 내 모습이 뚜렷하게 빛난다

 └ …

 

억지로 돋보이게 하는 거룩함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껍데기로 씌울 수 없는 거룩함이라고 느낍니다. 이 땅에 튼튼히 디디고 있는 두 발일 때 비로소 찾게 되는 거룩함이요, 우리 이웃과 오순도순 어깨동무할 때 바야흐로 함께하게 되는 거룩함이라고 느낍니다.

 

삶에서 거룩함을 찾으며 말에서 거룩함을 찾습니다. 살아가며 거룩함을 듬뿍 느끼며 글줄 하나에서 거룩함을 느낍니다. 살아숨쉬는 거룩함을 허물없이 심거나 뿌리는 가운데, 말에 담는 넋과 글에 깃들이는 얼에도 골고루 거룩함을 심거나 뿌리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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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7 10:47ⓒ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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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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