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하나 제대로 놓으면 통일된다"

[09-016] 낙안-벌교 4차선 도로,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양보해야

등록 2009.08.09 16:04수정 2009.08.0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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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낙안읍성앞 삼거리 길 바닥의 방향 표시글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에서 인근 순천시의 관광지인 선암사, 송광사, 순천만으로 가는데는 30킬로미터 남짓 걸린다. 하지만 소설 태백산맥 문학관까지는 7킬로미터다 ⓒ 서정일

▲ 순천시 낙안읍성앞 삼거리 길 바닥의 방향 표시글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에서 인근 순천시의 관광지인 선암사, 송광사, 순천만으로 가는데는 30킬로미터 남짓 걸린다. 하지만 소설 태백산맥 문학관까지는 7킬로미터다 ⓒ 서정일

전남 동부지역의 내로라하는 두 관광지인 낙안읍성(순천시 낙안면) 앞에서 태백산맥문학관(보성군 벌교읍)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고작 7킬로미터다. 보통 인간이 1시간당 걷는 거리가 4킬로미터인 점을 감안하면 2시간 정도면 갈수 있는 거리며 차로가면 15분 정도다. 하지만 이곳의 마음의 거리는 70킬로미터나 된다.

 

가깝고도 먼 길, 국도 857번 낙안-벌교간은 현재 어떤 모양새일까? 가로수 없이 휑하게 들판에 놓여 있는 갓길 없는 2차선 도로다. 평소엔 오토바이 등이, 농사철에는 경운기 등이 도로를 함께 질주해 매우 위험한 곳이다.

 

역사를 좀 더듬어 보면, 101년 전에는 낙안군 갯가 사람들이 낙안읍성에 오기 위해 걸어 다닌 길이며, 90여 년 전 3·1운동 당시에는 낙안사람들이 벌교장터로 만세 운동하러 가던 길이며, 차가 귀하던 수십 년 전까지도 벌교장을 보기 위해 왕래하던 길이다. 그곳에 마음의 거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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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낙안면과 보성군 벌교읍을 연결하는 857번 국도 순천시 낙안면과 보성군 벌교읍을 연결하는 도로는 857번 국도 2차선으로 약 7킬로미터에 이르며 들판 한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갓길이 없어 농사철에는 위험한 도로로 알려져있다 ⓒ 서정일

▲ 순천시 낙안면과 보성군 벌교읍을 연결하는 857번 국도 순천시 낙안면과 보성군 벌교읍을 연결하는 도로는 857번 국도 2차선으로 약 7킬로미터에 이르며 들판 한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갓길이 없어 농사철에는 위험한 도로로 알려져있다 ⓒ 서정일

"낙안군? 길 하나 제대로 놓으면 통일된다". 필자가 지역민들을 만나 101년 전 폐군된 낙안군에 관해 물으며 도로 관련 얘기를 꺼내니 한 촌로가 대뜸 한다는 소리가 바로 이거다. 덧붙이는 말은 가슴 좀 아프다. "맨날 4차선 논다고 말만 하지 이건 선거공약용 길이여."

 

정확히 선거공약용인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순천 낙안과 보성 벌교 지역 정치인들이 입에 이 도로를 달고 다닌 것만은 분명하니 그 촌로의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다. 최근에도 전라남도 차원에서 관심 갖겠다는 약속도 받아놓은 상태라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사실, 4차선이 나든, 자전거 도로가 나든, 걷고 싶은 예쁜 길이 나든, 낙안읍성(순천, 낙안)과 꼬막(보성, 벌교)이 어우러지던 10년 전에 이미 손봤어야 할 도로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더 시급하다. 소설 태백산맥문학관이 지난해에 벌교에 둥지를 틀었으니 낙안-벌교 상호 관광시너지 효과를 내기위해서라도 4차선 도로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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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수문장교대식 장면 순천시 낙안면에는 연간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사적지 낙안읍성이라는 대형 관광지가 있다. ⓒ 서정일

▲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수문장교대식 장면 순천시 낙안면에는 연간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사적지 낙안읍성이라는 대형 관광지가 있다. ⓒ 서정일

하지만 아직도 지지부진이다. 너무 굼뜨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정치인들의 립서비스도 여전하고 주민들도 그저 말만 허공에 띄울 뿐이다. 겉은 파랗고 속은 빨간 수박처럼 겉과 속이 같지 않다. 연재를 하면서 그저 그들의 얘기만 가지고 "모두가 4차선 놓자고 하더라"고 발표하는 수박 겉핥기가 돼서는 안될 듯 싶어 속내를 들여다봤다.

 

먼저, 벌교지역을 살펴보면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지역민들의 현안인 낙안-벌교 4차선 확장을 당연히 들고 다닌다. 하지만 지역(벌교)내에서는 손발이 잘 맞아도 지자체 경계선(순천. 낙안)을 넘어서면 내 선거구(유권자)가 아니기에 신경 쓰는 강도도 달라지고 그저 형식적으로 건의하는 수준에서 머문다.

 

그럼 낙안지역은 어떤가? 한마디로 옹고집이다.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낙안읍성을 찾을 만큼 대형 관광지인데 보성(벌교)이 그 사람들을 빼가려는 계략"이라고 몰아붙이며, 겉으로는 눈치 살피고 속으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최근 행태는 나라에서, 도에서 추진 한다더라 하니까 한발 물러섰지만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그 이유도 있다. 낙안주민들은 낙안군 폐군 이후, 벌교가 일본의 자본이 들어와 급성장하던 1940년대 시 승격운동을 벌일 때 옛 낙안군의 치소며 형님격인 낙안을 깡촌이라고 무시하고, "벌교가 시가 되고자 하니 낙안은 옆에 붙어 벌교시가 되는데 인구나 보태라"는 식의 과거사가 있었음을 들먹인다.

 

그런 지난 과거사와 함께 "우리(낙안)는 불편 겪으며 민속마을로 볼거리만 제공하고 너희(벌교)는 그길 따라 손님 모셔다가 돈 벌겠다는 식"이라는 낙안읍성 한 주민의 볼멘소리는 그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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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소설 태백산맥 문학관 출입구문 보성군 벌교읍에는 소설 태백산맥문학관이 작년(2008년)에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은 개관 초기로 미래에 대해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근 낙안읍성과의 연계가 있을 경우 좀 더 나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서정일

▲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소설 태백산맥 문학관 출입구문 보성군 벌교읍에는 소설 태백산맥문학관이 작년(2008년)에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은 개관 초기로 미래에 대해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근 낙안읍성과의 연계가 있을 경우 좀 더 나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서정일

뜻있는 지역민들은 이런 행태를 보면서 "제 살 깎아 먹는 일이다"라며 큰 틀에서 볼 것을 지적한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표가 아니라는 이유로, 행정에서도 지역이 달라 남의 집에 세수입 올려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한쪽 주민들은 내 손님 뺏어간다는 이유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모두 속 좁은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큰 틀에서 본다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의 모습인 낙안읍성(순천, 낙안)으로부터 현대사의 아픔이 있는 태백산맥문학관(보성, 벌교)까지 '책이 아닌 살아있는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역사 교육장'이라 할 만큼 소중한 지역의 공동 자산을 가지고 있다.

 

낙안-벌교길을 4차선으로 놓겠다'는 말이 나 돌아다닌 지 벌써 10년이 다 돼 간다. 하지만 지난 1998년, 소떼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은 고 정주영 회장이 배포 있게 밀어붙여 통일의 물꼬를 튼 것처럼 낙안-벌교 화합의 물꼬를 트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음은 지역적 아픔이고 지역화합과 발전의 걸림돌이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 분산, 침략거점 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17] 분위기는 거시기 하지만 물은 좋은 낙안온천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2009.08.09 16:04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예고: [09-017] 분위기는 거시기 하지만 물은 좋은 낙안온천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낙안군 #남도TV #스쿠터 #낙안 #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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