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93) 면面

[우리 말에 마음쓰기 890] '속도면', '아이 같은 면', '입이 무거운 면' 다듬기

등록 2010.03.30 14:52수정 2010.03.3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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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속도면, 품질면

 

.. 이때부터 내가 발휘한 솜씨는 속도면에서도 그렇고 품질(?)면에서도 스스로 감탄할 지경 ..  <전희식-똥꽃>(그물코,2008) 62쪽

 

'발휘(發揮)한'은 '뽐낸'이나 '드러낸'이나 '보여준'으로 손봅니다. "감탄(感歎)할 지경(地境)"은 "놀랄 노릇"이나 "놀랄 만"으로 손질하고, '속도()'는 '빠르기'로 손질해 줍니다.

 

 ┌ 속도면에서도

 │

 │→ 속도에서도

 │→ 빠르기에서도

 │→ 빠르기로 보아도

 │→ 빠르기도 빠르고

 └ …

 

한자말 '속도'는 '빠르기'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만, 그대로 두고 싶다면 "속도로 보아도"나 "속도에서도"로 적어 주면 됩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을 보면서 느끼는데, 이와 같은 한자말을 다듬지 않고 하나둘 꾸준하게 쓰는 가운데 '面' 같은 또다른 한자말을 불러들이고, '감탄'이나 '지경' 같은 말마디까지 자꾸자꾸 쓰려는 버릇이 굳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하나씩 가다듬는 매무새로 차츰차츰 고운 말씀씀이를 빛낼 수 있고, 하나씩 아무렇게나 쓰는 버릇이 굳어지면서 하루하루 궂은 말씀씀이가 퍼져 나간다고 하겠습니다.

 

 ┌ 품질면에서도

 │

 │→ 맛으로 보아도

 │→ 맛을 따져도

 │→ 맛을 생각해도

 │→ 맛은 또 맛대로

 └ …

 

다음으로 '품질면'은 "품질로 보아도"나 "품질을 생각해도"로 풀어내면 되는데, 이 자리에서 말하는 품질이란, 어머니한테 마련해 드리는 밥과 찌개 솜씨를 가리킵니다. 이리하여 이때에는 '품질(品質)'이라는 낱말이 아닌 '맛'이라는 낱말을 넣어 주면 됩니다.

 

이제 이 보기글을 통째로 고쳐 봅니다. "이때부터 내가 보여준 솜씨는 빠르고 맛까지 훌륭해서 스스로 놀랄 노릇"으로. "이때부터 내 솜씨는 빠르면서 맛 또한 뛰어나 나부터 놀랄 만"으로.

 

 

ㄴ. 아이 같은 면

 

.. 그런 점에서 지로에게는 아직 어린아이 같은 면이 남아 있었다 ..  <시모무라 고진/김욱 옮김-지로 이야기 (1)>(양철북,2009) 492쪽

 

 "그런 점(點)에서"는 "그런 테두리에서"나 "그런 대목에서"나 "그런 곳에서"로 다듬어 줍니다.

 

 ┌ 어린아이 같은 면

 │

 │→ 어린아이 같은 모습

 │→ 어린아이 같은 얼굴

 │→ 어린아이 같은 느낌

 │→ 어린아이 같은 자취

 │→ 어린아이 같은 빛깔

 └ …

 

아직 어린아이이지만 온갖 일을 겪으면서 어린아이다움을 잃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도 드문드문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군데군데 남아 있곤 할 텐데, 이 모습을 고이 돌아보거나 아낄 줄 아는 어른이 가까이 없다면,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로 제 한때를 보내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을 보면, 이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어버이나 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이다움을 지키거나 간수하려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초등학생으로서가 아닌, 중학생으로서가 아닌, 고등학생으로서가 아닌, 대학생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 오롯한 목숨붙이로 살뜰히 어깨동무하거나 껴안을 줄 아는 분은 얼마나 될는지요. 아이들이 저마다 제 몸과 마음에 걸맞게 배우고 먹고 누리고 나누고 할 수 있도록 어느 만큼 애쓰고 있을는지요.

 

 ┌ 어린아이 같은 구석

 ├ 어린아이 같은 데

 └ …

 

아이가 아이다울 수 없는 곳에서는 어른이 어른다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울 수 없는 데에서는 젊은이도 젊은이답기 어렵고, 늙은이도 늙은이답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누구나 제다움을 맛보는 가운데 이웃이 되고 벗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 함께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있음을 깨닫고, 서로가 서로한테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사이임을 알아가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어른들이 쓰는 말이 아이들이 쓰는 말이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뚱딴지처럼 빚어내는 말이란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고스란히 이어지게 되는 말입니다. 세상살이에 따라 있는 그대로 새로 빚어지게 되는 말입니다.

 

어린아이한테 어린아이다운 구석이 없다면, 어른한테도 어른다운 구석이 없다는 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다운 삶을 지키기 어렵다면, 어른 또한 어른다운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삶이 삶다운 데에서 말이 말답고, 말이 말다운 곳에서 삶이 삶답습니다. 삶이 삶답지 못한 데에서 말이 말다움을 잃고, 말이 말답지 못한 곳에서 삶이 삶다운 적을 보지 못합니다.

 

 

ㄷ. 입이 무거운 면

 

.. 나쓰에도 또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 입이 무거운 면이 있어 그것이 어떤 때엔 게이조를 괴롭혔다 ..  <미우라 아야코/맹사빈 옮김-빙점 (1)>(양우당,1983) 58쪽

 

'그것이'는 '이런 모습이'나 '이런 매무새가'로 다듬습니다. 또는 '그것이'를 덜고 "입이 무거워 어떤 때엔"처럼 앞뒷말을 이어 놓습니다. 영어에서 'it'이 우리 말에서는 '그것'이라고 풀이하고, 영어 번역 말투로 '그것'을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우리 말투에서는 '그것'을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이 대목을 제대로 살필 줄 아는 분이 나날이 줄어들고, 이 대목을 옳게 밝혀 적는 글쟁이는 더없이 적으며, 이 대목을 바르게 가다듬으면서 말글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 또한 몹시 드뭅니다.

 

 ┌ 입이 무거운 면이 있어

 │

 │→ 입이 무거운 성격이어서

 │→ 입이 무겁기도 해서

 │→ 입이 무거워서

 └ …

 

입이 무거운 '면'이라 할 때에 '면'은 '성격(性格)'을 가리킵니다. '성격'은 한자말입니다만, '학교'나 '학생' 같은 한자말처럼 따로 한자를 밝히지 않는 낱말이요, 한자를 모른다 하여도 누구나 알아듣고 쓰는 낱말입니다. 토박이말은 아니지만, 들온말로서 우리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입이 무거운 성격"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말흐름을 조금 더 살피며 "입이 무겁기도 해서"나 "입이 무거워서"로 적을 수 있습니다. 꾸밈말을 붙여 "입이 꽤 무거워"나 "입이 무척 무거워"로 적어 볼 수 있어요.

 

때로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처럼 적어 줍니다. '사람'이라는 낱말에는 열한 가지 뜻이 있는데, 넷째 뜻풀이를 살피면 "한 사람 됨됨이나 성격"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좋다"라든지 "사람이 나쁘다"라 하면서 누군가 됨됨이가 어떠한가를 나타내곤 합니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나 "입이 가벼운 사람"이라 하면 잘 어울립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한자말 '성격'이 우리 삶으로 스며들기 앞서까지는 토박이말 '사람'으로 우리 느낌과 생각을 나타냈으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3.30 14:5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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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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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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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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