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88) 걷기, 도보, 하이킹

[우리 말에 마음쓰기 901] '배려의 마음'과 '마음씀' 사이에서

등록 2010.04.19 17:58수정 2010.04.1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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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배려의 마음

 

.. 또 터를 잡을 때 고려하였을 자연과의 어울림이라든지, 집안 형편에 따른 가옥의 크기와 구조, 그리고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룰 때 서로에 대해 가졌을 배려의 마음도 느낄 수 있다 .. <강희정,김선주,김한담-삼송, 사라지는 마을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높빛,2007) 12쪽

 

'고려(考慮)하였을'은 '헤아렸을'이나 '살폈을'이나 '따졌을'로 손봅니다. "자연과의 어울림"은 "자연과 얼마나 어울리는가"나 "자연과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로 다듬고, "가옥(家屋)의 크기와 구조(構造)"는 "집 크기와 얼개"로 다듬으며, "서로에 대(對)해 가졌을"은 "서로한테 품었을"로 다듬습니다.

 

 ┌ 배려(配慮) :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   - 특별 배려 / 극진한 배려 /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다

 │

 ├ 배려의 마음

 │→ 배려

 │→ 마음씀

 │→ 마음씀씀이

 └ …

 

"마음을 씀"을 가리킨다는 낱말 '배려'이니 "배려의 마음"처럼 적으면 "마음쓰는 마음" 꼴이 되어 버립니다. '배려'라고만 적어도 토씨 '-의'를 쓸 까닭이 없으며 얄궂은 겹말이 되지 않습니다. 한자말 '배려'를 쓰고 싶으면 쓰되 옳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이 한자말을 굳이 안 써도 된다고 여긴다면 '마음씀'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 서로에 대해 가졌을 배려의 마음도 느낄 수 있다

 │

 │→ 서로한테 쏟은 마음도 느낄 수 있다

 │→ 서로서로 얼마나 마음을 썼는가도 느낄 수 있다

 │→ 서로 얼마나 헤아려 주었는가도 느낄 수 있다

 └ …

 

서로서로 마음을 써 준 일을 가리키는 만큼, 조금 더 생각하면 모두들 '마음이 따뜻했'으리라 봅니다. '넉넉한' 마음이기도 했을 테고, '푸근한' 마음이기도 했을 테지요. 이렇게 되면,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마음도 느낄 수 있다"라든지 "서로서로 보듬고 헤아리던 마음도 느낄 수 있다"라든지 "서로 돕고 따뜻하게 지냈을 마음도 느낄 수 있다"로 고쳐써도 괜찮습니다.

 

 

ㄴ. 길을 걸으며 하이킹

 

.. 우리 부부는 몇 년 전부터 아이들과 함께 매년 여름이면 1주일씩 인적이 드문 원시림으로 가 숲속 길을 걸으며 하이킹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탁광일-숲과 연어가 내 아이를 키웠다>(뿌리깊은나무,2007) 6쪽

 

"몇 년(年) 전(前)부터"는 "몇 해 앞서부터"로 손보고, '매년(每年)'은 '해마다'로 손봅니다. '인적(人跡)'은 '사람 발길'로 손질하고, "하기 시작(始作)했습니다"는 "해 왔습니다"나 "하고 있습니다"로 손질해 줍니다.

 

 ┌ 하이킹(hiking) : 심신의 단련이나 관광 따위를 목적으로 걸어서 여행하는 일

 │   - 하이킹 코스 / 마치 가벼운 하이킹이라도 나선 차림이었다

 ├ 도보(徒步) : 탈것을 타지 않고 걸어감. '걷기', '걸음'으로 순화

 │   - 도보 여행 / 도보 행군 / 도보로 학교에 가다

 │

 ├ 걸으며 하이킹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걸으며 다니곤 했습니다

 │→ 걸으며 나들이를 하곤 했습니다

 │→ 걸으며 마실을 다녔습니다

 │→ 걸어다니곤 했습니다

 └ …

 

걸어서 바깥 나들이를 다닐 때 영어로 으레 '하이킹'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자말로는 '도보여행(徒步旅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얼마 앞서부터 토박이말 '걷기'를 넣어 '걷기여행'이라고 말씀하는 분이 생겨났는데, '걷기여행'이나 '걷는여행'처럼 쓰면 제법 잘 어울립니다.

 

 ┌ 하이킹 코스 → 걸을 만한 길 / 나들이길 / 마실길

 └ 하이킹이라도 나선 → 나들이라도 나선 / 걷기여행이라도 나선

 

때와 곳에 따라서 말이 달라지기에, 지난날에는 '나들이' 나서는 일을 두고 '원족(遠足)'이라는 일본말을 썼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고부터는 '원족'을 버리고 '소풍(逍風)'이라는 다른 한자말을 씁니다. 이렇게 오래도록 '소풍'을 쓰다가 어느 때부터 교육부가 바뀌면서 '현장학습(現場學習)'이라는 한자말이 새로 생겨납니다. 그리고 예나 이제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또 영어를 막 배운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또 어설피 나라밖 말을 배워 대학생이 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이킹'이라는 말이 쓰입니다.

 

나들이를 다니는 만큼 '나들이길'이라 하거나, 마실을 다닌다 하여 '마실길'이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꾸밈없이 말하는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 도보 여행 → 걷기 여행 / 걷는 여행 / 걷는 나들이 / 걸어서 나들이

 ├ 도보 행군 → 걸어서 행군 / 걸어서 움직이기

 └ 도보로 학교에 가다 → 걸어서 학교에 가다

 

봄에는 '봄나들이'를 갑니다. 겨울에는 '겨울나들이'를 갑니다. 들에 나가기에 '들놀이'이고, 바다에 가기에 '바다놀이'이며, 물가에 가기에 '물놀이'인 한편, 산에 가니 '산놀이'입니다. 눈밭에 나가 놀면 '눈놀이'이고, 빗속에 뛰놀면 '비놀이'입니다. 사랑을 하기에 '사랑놀이'이고, 소꿉을 가지고 놀아서 '소꿉놀이'입니다.

 

말 그대로 나들이만 다닐 수 있습니다. 마실을 다니기도 합니다. 돌아다니는 일이 놀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두 다리로 씩씩하고 즐겁게 어딘가를 돌아다닌다고 할 때에는, '걷는나들이'부터 '걷기마실'과 '걷기놀이'까지 골고루 할 수 있습니다.

 

걸어서 움직이니 '걷는나들이'나 '걷기마실'이라 하면 됩니다. 자동차로 움직이면 '자동차나들이'나 '자동차마실'입니다. 기차로 움직이면 '기차나들이'나 '기차마실'이고, 버스로 움직이면 '버스나들이'나 '버스마실'입니다. 배로 떠나면 '배나들이'나 '배마실'입니다.

 

삶을 돌아보면서 내 삶에 알맞춤할 말 한 마디를 일굽니다. 내 삶터에서 이웃하고 있는 사람들을 헤아리면서 내 삶터에서 이웃들과 어깨동무하기에 좋을 말 한 마디를 가꿉니다. 나 스스로 흐뭇하면서 반가울 말을 북돋우며, 내 살붙이와 동무를 비롯해 둘레 사람 누구하고라도 기쁘게 나눌 말을 보듬습니다. 국어순화라는 목표를 세우기 때문에 글다듬기를 하지 않고, 깨끗하고 싱그럽게 말해야 한다는 이름을 내세우고자 말짓기를 하지 않습니다. 내 삶을 사랑하고 내 넋을 아끼기 때문에 내 말 한 마디를 좀더 알뜰살뜰 갈무리하거나 추스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4.19 17:58ⓒ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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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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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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