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는 당장 지갑속이 텅 비어 있어도 '갖고 싶다'라는 욕구를 누르는 불편 따위에 구속당할 필요 없는 기가 막히게 편리한 도구다. 사진은 한 신용카드 회사 사이트
우리는 아무리 소비해 봐도 광고 속 여주인공처럼 냉장고 옆의 우아한 인간 인테리어가 될 수는 없다. 박지성이 튀어나올 듯한 TV는 우리 집에 가져다 놓아봐야 좁은 집을 탓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들의 일은 여성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물건에 불만을 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반세기도 전에 미국의 소매점 연합회의 회장이 한 말이다.
우리는 눈만 돌리면 보이는 광고판,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들의 마케팅을 실시간 접하면서 나의 삶에 대해 비관하거나 나만 가난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갖기 충분한 현실을 살고 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너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어'라고 실시간으로 속삭이는 수많은 유혹 앞에서 불행해진다.
물론 이런 류의 유혹은 시간을 두고 냉정히 돌이켜 보면 금세 부질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냉정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유혹의 손길을 덥석 잡는다는 것이다. 부모들에게는 그런 유혹을 쉽게 채울 신용카드라는 기가막힌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갑 속이 텅 비어 있어도 '갖고 싶다'라는 욕구를 누르는 불편 따위에 구속당할 필요 없는 기가 막히게 편리한 도구 말이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쉽게 욕구를 채우면 채울수록 만족은커녕 더한 욕구불만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신용카드 한도가 늘어나는 것보다 신상품이 더 빠른 속도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끝도 없는 신상품을 쏟아내며 소비를 강요하는 지금의 사회는 '이것만 가지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속삭이는 것들로 인해 불행해지는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행복의 경제학>의 저자 쓰지 신이치는 이런 소비사회에서 행복이란 '말의 코 끝에 당근을 늘어놓은 것처럼 언제나 손끝보다 조금 앞에 놓여있다. 손 안에 넣어버리면 이미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라며 소비사회의 아이러니를 꼬집고 있다.
절대로 행복해 지지 않을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왜곡된 삶의 공식에 갇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명문대 입학과 전문직 종사자로 '양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심지어 명문대 졸업생과 전문직 종사자의 경제적 미래도 불확실할 만큼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말이다.
품위 있는 결핍이 필요한 시대정수기 대신 하루에 한번만 물을 끓이는 수고를 마음먹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집의 평수가 넓으면 청소기 돌리는 것이 더욱 번거롭다는 생각이 좀더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하루에 몇 번 사용하지 않는 전자레인지, 비데, 식기 세척기와 오븐과 제빵기 들이 좁은 집안을 가득 메우는 필수품으로 둔갑해 가고 있다.
대형 냉장고와 대형 TV, 컴퓨터와 프린터기, 김치 냉장고까지. 가족 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온갖 수납 장치들은 대형화되고 종류도 다양해진다. 조명을 받고 매장에 전시되어 있을 때는 탐나는 것이었겠으나 집에서 관리할 때는 조금만 게을러도 눌러앉는 먼지에 짜증만 늘어난다. 오래되어 낡은 품격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뒤쳐진 것이 구질구질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도구 패러다임이다. 약간의 수고를 덜기 위해 도구를 소유하고 그 도구를 구매하기 위한 돈을 벌려고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이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아이들 미래의 경제적 풍요가 이런 모습이다. 게다가 그 도구들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답답한 공간을 감수하고 관리하는 에너지까지 낭비해야 한다. 어느 건축업자는 '모든 부자는 자신 소유물의 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어느새 없어도 좋을 것들을 관리하고 사느라 끝도 없이 돈이 필요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중산층들이 소비 중독에 시달릴 때 그들은 국민 일인당 4장의 신용카드를 가지고(4인가족이면 가구당 16장의 카드를 소유한 셈이다) 해마다 냉장고를 교체하고 일회용 접시에 냉장 냉동 반조리 식품을 일상적으로 먹었다고 한다. 우리 중산층 서민의 냉장고 속도 점점 대량으로 소비하고 유통기한 지난 쓰레기들이 들어차고 있다.
적게 소유하고 어렵게 소비하는 것, 구질구질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