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93) 대갈일성

[우리 말에 마음쓰기 928] '대갈일성'과 '큰소리' 사이에서

등록 2010.06.12 19:55수정 2010.06.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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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대갈일성 1

.. 그 시민은 "야, 그런 걸 찍어서 뭘 해. 그런 걸 내보내지 말고 진짜 내보낼 걸 내보내 자식아!" 하고 대갈일성(大喝一聲)했다 ..  <전민조 엮음-사진 이야기>(눈빛,2007) 155쪽


"그 시민(市民)"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그 사람"으로 손질해도 됩니다. "그런 걸"은 "그런 모습을"로 다듬습니다.

 ┌ 대갈일성(大喝一聲) : 크게 외쳐 꾸짖는 한마디의 소리
 │   - 홍의 장군이 대갈일성을 지르며 내달리니
 │
 ├ 대갈일성(大喝一聲)했다
 │→ 크게 소리쳤다
 │→ 큰소리를 쳤다
 │→ 큰소리로 꾸짖었다
 │→ 큰소리로 외치며 나무랐다
 └ …

크게 외쳐 꾸짖는 한 마디 소리라고 하는 '대갈일성'이라고 합니다. 보기글을 살피면 이 한문에다가 묶음표를 치고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 밝혀 놓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적은 한문을 찬찬히 새겨 읽는 분은 몇 사람쯤 될까요? 어른들 가운데에서는? 또, 어린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는 말뜻 그대로 "크게 외쳐 꾸짖었다" 하고 적어 놓을 때가 알아듣기에 가장 알맞거나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른이든 어린이이든, 많이 배운 사람이든 적게 배운 사람이든, 지식인이든 여느 사람이든, 교사이든 학생이든,  누구한테나 가장 스스럼이 없고 살갑다고 느낄 말마디라면 "꾸짖는 말"이나 "나무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 대갈일성을 지르며 내달리니
 │
 │→ 큰소리를 지르며 내달리니
 │→ 큰소리로 꾸짖으며 내달리니
 │→ 크게 외쳐 꾸짖으며 내달리니
 └ …

올바르게 적바림하고 알맞춤하게 나누는 말글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헤아려야 합니다. 슬기롭게 적어내리고 싱그럽게 어깨동무하는 말글은 어떤 모습인가를 차근차근 곱씹어야 합니다. 나 혼자 즐겁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 홀로 알아들으면 그만인 글이 아닙니다. 내 지식을 뽐내자고 하는 글이 아닙니다. 나 잘났다고 으슥거리는 말이 아닙니다.


오순도순 사이좋게 나누어야 할 글입니다. 도란도란 두 손 맞잡아야 할 말입니다. 소곤소곤 나누고 왁자지껄 주고받을 글이요 말입니다. 생각이며 삶입니다. 넋이며 마음입니다. 뜻이며 얼입니다.

억지가 아닌 사랑을 찾아야 할 말입니다. 겉멋이 아닌 믿음을 느껴야 할 글입니다. 자랑이 아닌 따뜻함을 나누어야 할 말입니다. 힘이나 이름이 아닌 두레와 품앗이를 펼쳐야 할 글입니다.

잘하는 대목은 북돋우며 손뼉치고, 잘못하는 대목은 타이르며 추스릅니다. 훌륭한 대목은 더 힘내라며 넉넉히 안아 주고, 아쉬운 대목은 앞으로는 더 애쓰라며 살포시 다독여 줍니다. 어깨를 으스대지 않도록 북돋우고,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나무랍니다. 콧대가 높아지지 않도록 손뼉치고, 기운을 잃지 않도록 꾸짖습니다.

ㄴ. 대갈일성 2

.. 방 안에 들어섰더니 결가부좌하고 삼매에 들어선 모습이 참 보기 좋아. 그래서 옛 스님들 흉내내서 대갈일성 했지 ..  <윤구병-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휴머니스트,2010) 184쪽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는 불교에서 쓰는 말이니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리를 틀고 앉아'나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로 손볼 수 있어요. "삼매(三昧)에 들어선" 또한 불교에서 쓰는 낱말이기에 그대로 두어도 될 테지만, "깊은 생각에 들어선"이나 "깊이 생각에 잠긴"으로 손질해도 됩니다.

불교에서 쓰는 낱말이든 개신교나 천주교에서 쓰는 낱말이든 얼마든지 널리 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얼마든지 한결 쉽고 살갑게 풀어낼 수 있다고 느낍니다. 더욱이 불교에서 쓰는 낱말은 거의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난날 불교를 받아들여 믿던 이들이 책을 엮거나 믿음을 나눌 때에 여느 사람들이 알아듣기 좋도록 말을 빚거나 짓지 않았어요. 우리 말은 '절'이지만, 이를 한자말로 옮겨 '사찰(寺刹)'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말은 '스님'이나, 이를 다시금 한자말 껍데기를 씌워 '승려(僧侶)'나 '비구(比丘)'나 '비구니(比丘尼)'라고도 일컫습니다.

위와 아래가 없고 높고 낮음이 없어야 할 말인데, 좋은 믿음을 섬기는 사람들부터 자꾸 위와 아래를 나누고 높고 낮음을 가릅니다. 더욱 수수하고 거리낌없는 말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결 투박하며 스스럼없는 글로 뻗지 못합니다.

 ┌ 옛 스님들 흉내내서 대갈일성 했지
 │
 │→ 옛 스님들 흉내내서 큰소리쳤지
 │→ 옛 스님들 흉내내서 큰소리로 한마디했지
 │→ 옛 스님들 흉내내서 크게 꾸짖었지
 │→ 옛 스님들 흉내내서 큰소리로 나무랐지
 └ …

네 글자 한자말 '대갈일성'은 불교 낱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보기글에서 엿볼 수 있듯, 불교를 섬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으레 쓰는 낱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 말로 손쉽게 "크게 외쳐 꾸짖는 한 마디 소리"라 하면 넉넉하지만, 이렇게 손쉽고 넉넉하게 우리 뜻과 넋을 나누려고 하는 흐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좋은 뜻과 넋을 품는다는 사람들 스스로 좋은 말과 글을 가로막습니다.

우리 깜냥껏 '큰꾸짖음'이라고 이야기해 본다든지 '벼락꾸짖음'이라고 말해 본다든지 '번쩍꾸짖음'이라고 읊는다든지 하지 못합니다. 살가울 길을 헤아리지 못하고, 반가울 길을 찾지 못하며, 알차고 싱그러운 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 야 이 녀석아, 너 뭐야 하고 외쳤지
 ├ 야 이놈아, 넌 뭐 하는 놈이냐 하고 꾸짖었지
 ├ 이놈, 넌 무얼 하고 있느냐 하고 나무랐지
 └ …

보기글 흐름을 살핀다면, 글쓴이가 누군가를 어떻게 꾸짖었는가를 있는 그대로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이 따위로 있느냐?" 하고 꾸짖을 수 있고, "아니 이 녀석이 벌건 대낮에 무얼 하고 있는고?" 하고 나무랄 수 있습니다. "세월 참 좋은 녀석이네?" 하고 꾸짖을 수 있고, "남은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데 넌 시원한 방구석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느냐?" 하고 나무랄 수 있어요.

내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말하면 됩니다. 내 생각을 찬찬히 밝히며 이야기하면 됩니다. 내 뜻을 알뜰살뜰 펼치며 글을 적바림하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고사성어 #상말 #국어순화 #우리말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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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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