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3년 안에 죽을 것이다"...여인의 저주 통했나?

[역사소설 민회빈강55] 도적을 도둑놈이라 부르는 것도 죄가 되느냐?

등록 2010.08.03 10:56수정 2010.08.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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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지방 관아에 있던 감옥(낙안읍성) ⓒ 이정근


유탁은 분명한 혐의가 있다. 역적모의야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무기를 가지고 군졸에게 상해를 입힌 것은 대명률에 따라 처단해야 할 중죄인이다. 허나, 그의 처 수정이는 임금을 욕한 죄 밖에 없다. 공청감사 임담은 난감했다.

"도적놈을 도둑놈이라 하는 것도 죄가 되느냐? 네놈 싫다는 것도 죄가 되느냐 말이다. 애꿎은 백성 가두지 말고 집 아비를 석방하라"
수정이의 고함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봐라 형방! 저 년 포악질에 일을 할 수가 없구나. 어떻게 소리 나지 않게 할 수 없느냐?"
"어르고 달래어 보았지만 도통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형방이 아닌가?"
"그렇다고 고신을 할 수야 없잖습니까."
"으음."
감사가 괴로운 한숨을 토해냈다.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해야 백성들에게 욕을 안 먹지

"나랏님도 없으면 욕한다 했다. 직접 면전에서 험담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아낙을 가두느냐? 당장에 풀어 주라."
수정 옆방에 갇혀 있는 유탁이 거칠게 항의했다.

"네놈이 뭔데 풀어주라 마라 하느냐?"
옥졸의 눈꺼풀이 고추 섰다.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해야 백성들에게 욕을 안 먹지. 여인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임금이 임금이냐?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다간 하초에 부스럼 난다. 거기에 딱지 앉으면 조소의가 좋아하겠냐? 익선관 벗어놓고 용상에서 내려오라고 그래라."
유탁이 비아냥거렸다.


"이놈이 달린 게 주둥이라고 함부로 아가리를 놀리느냐?"
옥졸이 눈알을 부라렸다.

"내 입이 주둥이라면 네 조둥아리는 죽통이고 임금의 입은 아구창이다. 죽통은 죽사발에 코를 박아야 폼 나고 아구는 돌려야 제 맛인데."
유탁이 이죽거렸다.


"이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나라를 도적질한 놈, 아들과 며느리를 죽인 놈, 그것도 모자라 손자를 죽이려고 하는 놈, 그 놈이 죽어야 할 놈이다. 그 놈을 죽이지 못하고 잡혀온 것이 한이다."

"역적 주제에 웬 말이 그리 많으냐?"

"새 세상 만들어 살맛나는 세상 살려고 했는데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어 억울하다."
이 때 옥사장이 들어왔다.

"뭣들 하는 게냐?"
"이놈이 주댕이를 함부로 놀려서리..."
"관둬라. 얼마 안 있으면 놀리고 싶어도 놀리지 못할 테니."
옥사장이 나가려 할 때였다.

나라를 도적질 하고 자식을 죽인 놈이 살아있으니 하늘도 무심하다

"나라를 도적질 하고 자식을 죽인 놈이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떵떵거리고 살아가고 있으니 하늘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이고 분하고 억울해라. 그런 놈을 백성들이 징치하겠다고 나선 것도 잘못이냐?"
수정이 또 다시 악을 쓰기 시작했다. 옥사장이 위협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년의 입을 막지 못하고 형방은 뭐하는 게냐?"
감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방책이 무책입니다요. 입에 재갈이라도 물릴깝쇼?"
"그것은 안 되느니라."
아무리 죄인이라도 목에 칼을 씌우는 것은 허용했지만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이불이라도 뒤집어 씌워 놓을까요?"
"그러다 질식해 죽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것이냐?"

"옥 문 앞에 짚단이라도 쌓아 놓을까요?"
"그것 참 좋은 방법이다."

급히 노복들을 동원하여 짚단을 쌓았으나 별무효과였다. 수정이의 목소리가 옥 담을 넘어 영문 밖에까지 퍼져 나갔다. 대책을 세우지 못한 감사가 조정에 치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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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수 죄인을 참하여 저자거리에 내거는 형벌. 그림은 구한말 조선을 취재한 L. 로세티(Rosseti)가 스케치한 펜화 ⓒ Rosseti


"역적 유탁의 처 수정이 상을 범하는 못된 말들을 마구 내뱉고 있습니다. 무지한 여인네지만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이괄 처의 예대로 처참하게 하소서."
입을 막는 방도는 목을 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참에 처하라."
인조의 윤허가 떨어졌다. 이튿날, 수정이 형장에 끌려 나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도둑놈을 앞장세우지 못하고 먼저 죽는 것이 억울하다. 하지만, 그놈도 3년 안에 뒈질 것이다. 내 저주가 통하지 않아 그래도 살아 있으면 구천을 떠돌던 내 영혼이라도 내려와서 그놈의 목을 거두어 갈 것이다."

"이 년이 죽어가면서도 혓바닥을 놀리느냐?"
"네놈도 똑똑히 들어라. 도적놈의 주구노릇을 하는 놈을 뭐라 하는지 아느냐? 개다. 네놈이 중광 문과에 급제하여 감사 질을 하고 있다만 소신 없는 벼슬 질은 개만도 못하다. 네놈도 삼복더위에 몽둥이 맞는 개처럼 실컷 얻어맞고 길바닥에서 뒈질 것이다. 퉤퉤"

침이 튀는 거의 같은 시간. 망나니가 탁배기 사발을 들었다. 막걸리를 입에 털어 넣은 망나니가 칼끝에 막걸리를 뿌렸다. 허공에 뿌려진 막걸리가 뿌연 안개를 만들어 냈다. 그 안개 속에서 칼춤을 추던 망나니가 칼끝을 아래로 그었다. 피가 솟구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목이 떨어졌다.

잠시 후, 영문밖에 머리가 걸렸다. 수정이었다. 억울해서 일까? 눈을 감지 못하고 뜨고 있었다. 수정이의 머리를 발견한 백성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공포다.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내린다는 여인의 저주가 통했을까? 인조는 수정이 죽은 지 3년 만에 죽었고 감사는 가산에서 비명횡사했다.
#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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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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