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22)

― '모종의 영향력', '모종의 방법' 다듬기

등록 2010.10.20 15:22수정 2010.10.2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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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모종의 영향력을 끼치려고

 

.. 내버려두면 그냥 이럭저럭 해나갈 것도 같은데 외부에서 모종의 영향력을 끼치려고 쓸데없는 간섭을 하기 때문이라고 ..  <한나라 한겨레를 위하여>(송건호, 풀빛, 1989) 14쪽

 

"해나갈 것도 같은데"는 "해 나갈 듯한데"나 "해 나가겠구나 싶은데"로 다듬고, '외부(外部)에서'는 '밖에서'나 '바깥에서'로 다듬으며, '간섭(干涉)을 하기'는 '끼어들기'로 다듬어 줍니다.

 

 ┌ 모종(某種) : (흔히 '모종의' 꼴로 쓰여) 어떠한 종류. '어떤 종류'로 순화

 │   - 고위층으로부터 모종의 중대한 명령을 받고 있어

 │

 ├ 모종의 영향력을 끼치려고

 │→ 어떤 영향력을 끼치려고

 │→ 영향력을 끼치려고

 └ …

 

'무엇 + 의'처럼 쓰는 한자말을 보면 하나같이 다른 낱말로 다듬어 주어야 알맞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예 덜어내어야 나을 때가 있고요. 그런데 이 '무엇 + 의' 꼴을 살피면, '무엇' 자리에 들어가는 낱말은 거의 모두 한자말이며, 으레 일본 한자말이기 일쑤입니다. 한자말이라서 쓰지 말아야 하거나, 일본 한자말이니 안 써야 한다는 법이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익히 쓰거나 즐겁게 쓸 한자말이라면 우리 한자말이어야겠고, 되도록 우리 토박이말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토박이말만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토박이말이 있는데 굳이 바깥말을 끌어들일 까닭이 있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삶'이라는 토박이말이 있는데 반드시 '生活'이라는 한자말과 'life'라는 영어를 끌어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길'이라는 토박이말은 젖혀 놓고 '道路'라는 한자말에다가 'road'라는 영어까지 함부로 쓰는 일이 얼마나 알맞을까 궁금합니다. 써야 하는 한자말이나 영어라면 알맞게 쓰되 아무렇게나 받아들이거나 끌여들이는 일은 옳지 않다고 느낍니다. 알맞을 금까지 받아들일 뿐, 알맞지 못한 금에서는 걸러내야지 싶습니다.

 

 ┌ 고위층으로부터 모종의 중대한 명령을 받고 있어

 │

 │→ 웃사람한테서 어떤 크나큰 명령을 받고 있어

 │→ 위에서 어떤 대단한 명령을 받고 있어

 └ …

 

한자말 '모종'은 으레 '모종 + 의' 꼴로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종'이라는 낱말은 "어떤 종류"로 고쳐써야 한다고 나옵니다. "모종의 명령"이라면 "어떤 종류의 명령"으로 고쳐쓰라는 셈인데, 이렇게 고쳐 놓고 보아도 토씨 '-의'는 달라붙습니다. 글월 짜임을 곰곰이 헤아리면서 "어떤 종류의"에서 '종류의'를 털어내어 "어떤 명령"이라고 적어 본다면, 뜻은 뜻대로 살면서 글월이 한결 깔끔합니다. 생각해 보면, "모종의 영향력" 같은 보기글 또한 "어떤 종류의 영향력"이 아닌 "어떤 영향력"으로 고쳐쓰면 넉넉하며 다른 자리에서도 '어떤' 한 마디만 넣어서 다듬으면 되겠구나 싶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자꾸'를 넣어 "바깥에서 자꾸 영향력을 끼치려고"처럼 적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쏟는 만큼 좀더 알맞게 쓸 수 있는 말이요, 생각을 바치는 만큼 더욱 알차게 펼칠 수 있는 글입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냥저냥 아무렇게나 쓰는 말이요, 생각이 없으면 대충대충 함부로 적바림하는 글이 되고 맙니다.

 

 

ㄴ. 모종의 방법을 찾아야

 

.. 노동을 통해 자연의 부족분을 보충하는 모종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  <민중의 세계사>(크리스 하먼/천경록 옮김, 책갈피, 2004) 39쪽

 

"노동(勞動)을 통(通)해"가 아니라 "일을 해서"입니다. "자연의 부족분(不足分)을 보충(補充)하는"은 "자연에서 모자란 대목을 채우는"이나 "자연에서 얻지 못하는 만큼 채우는"으로 손질해 줍니다.

 

 ┌ 보충하는 모종의 방법을

 │

 │→ 채우는 어떤 방법을

 │→ 채우는 다른 길을

 │→ 채울 길을

 └ …

 

사람들이 국어사전을 제대로 뒤적여 본다면, 굳이 '모종의' 같은 말투를 쓸 일이 없습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여 본다 한들 어차피 "어떤 종류의"로 고쳐쓰라 나오니 똑같이 토씨 '-의'가 달라붙는데, 이렇게라도 찾아보면서 내 말투를 하나하나 가다듬으려는 분은 몹시 드뭅니다. 엉터리 말풀이라 할지라도 차근차근 되새기고 곱씹으면서 올바른 길을 걷고자 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모자라나마 한 걸음씩 나아지려는 삶을 꾸리지 못하는 매무새이기에, 아쉬우나마 한 발자국 더 내디디려는 말매무새로 이어지기 힘들까요. 씁쓸하나마 한 가지씩 거듭나려는 삶을 일구지 못하는 몸가짐이기에, 어줍잖으나마 한 자리씩 가다듬어 보려는 글매무새로 뻗기란 어려운가요.

 

 ┌ 채울 길을 새로 찾아야 했다

 ├ 채울 길을 여러모로 찾아야 했다

 ├ 채울 길을 더 찾아야 했다

 └ …

 

즐겁게 새 삶을 꾸리고 새 생각을 차리며 새 말글을 돌보면 좋겠습니다. 반갑게 새 삶을 붙잡고 알차게 새 생각을 다스리며 올바로 새 말글을 북돋우면 좋겠습니다.

 

나를 살리고 내 동무를 살리는 길이 될 테니까요. 나를 살찌우고 내 이웃을 살찌우는 길이 될 테니까요. 나를 사랑스레 보듬고 내 살붙이를 사랑스레 보듬는 길이 될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10.20 15:2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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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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