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도항 앞바다. 낮게 떠 있는 섬.
성낙선
나로도항에서 나로도우주센터까지 가는 길은 길고 높은 언덕이다. 경사가 급한 편은 아니지만, 맞바람이 부는 까닭에 마치 급경사를 오르는 것처럼 힘들다. 겨드랑이로 식은땀이 흐른다. 언덕을 오를 땐 보통 몸이 뜨거워지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몸에서 솟는 열이 그 열을 빼앗아가는 바람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이 점점 더 차갑게 얼어붙는다. 다리 힘은 바람이 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그런데도 언덕 끝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이대로 그냥 되돌아 내려갈까, 심한 갈등을 겪는다. 충동을 겨우 억누른다.
가까스로 언덕 끝에 도달하지만,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땀으로 젖은 몸이 급격히 식어 버린다. 마치 한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과도 같다. 이런 경사에서는 보통 시속 4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20km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고 계속 브레이크를 잡는다.
이런 상태로 내가 오늘 안으로 외나로도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나중에 나로도우주센터를 나오면서 반대편 방향에 있는 염포마을까지 가는 길은 깨끗이 포기한다. 그 길은 또 얼마나 힘들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로도우주센터에 바라보는 바닷가 풍경이 생각 밖으로 아름답다. 사실 나로도에서는 그곳의 바다가 어디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거친 날씨만 아니라면, 언덕이 아니라 산을 넘어서라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고 싶은 풍경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나로도우주센터가 있는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채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형상이어서 바람의 세기도 한결 덜한 편이다. 그 덕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던 몸이 따뜻한 햇살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걸 느낄 수 있다. 해변이 몽돌밭이어서 그런지 더 포근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