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두비>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현실과 사회주의권 출신의 귀화 신청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를 받겠다는 법무부의 발표를 보면서 한국판 매카시 선풍이 우려됐다. 정부가 미국의 좋은 점을 배우려 하지 않고, 못된 것만 배우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귀화 신청자와 관련한 내용이니만큼, '서약'과 관련하여 과거 1950년대 미국에서 일었던 매카시 선풍이 당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던 망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파시즘의 대두로 인해 유럽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던 반파쇼 운동가나 파시즘 비판가들 중 상당수는 전후 미국에 정착한다. 그러나 전후, 냉전과 그에 수반된 '매카시즘'의 공포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망설이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귀국을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파우스트 박사'의 저자 토마스 만은 그 중 대표적인 인사다.
설령 귀국을 하지 않더라도, 매카시 선풍 기간 동안 반공주의 서약 거부 등으로 자신의 안락한 지위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체성(ident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심리학뿐만 아니라, 교육,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준 정신 분석가이며 일반적으로 자아심리학자로 알려진 전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였던 에릭슨이 대표적인 예다.
에릭슨은 1950년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요구한 충성서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뒤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교수라는 지위에 있던 사람마저도 불안에 떨게 했던 매카시 선풍은 평범하게 미국시민권자로 자리를 잡고 있던 많은 망명자들을 강제로 '서약'하게끔 만들 만큼 폭압적인 것이었다. 미국은 '충성서약' 강제를 통해 유능한 인재들을 내치는 우를 범하기도 했고, 국민통합에도 실패했던 전례가 있었음을 법무부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새내기 국민에게 행사되는 폭력, 묵인할 것인가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귀화 신청자가 서약서 제출을 거부한다면 당연히 귀화를 불허할 방침이라고 천명했다. 물론 귀화제도는 외국인을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외국인이 국가 정체성, 기본원칙 등을 인정하면서 기존 국가 구성원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사상과 양심의 자유 침해 논란까지 감수하며, 서약서 작성을 강제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전략적인 정치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체제 우위를 선전하는 도구로 삼겠다는 것이고, 특정 국가 출신의 이주민 전부를 잠재적 위협으로 본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약서 제출 요구는 귀화를 신청하는 자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며, 그 외의 어떠한 사상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제하는 것이다.
정부가 귀화 제도를 체제 우위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원한다면, 좀 더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권 국가 출신 귀화 신청자들의 현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비록 당신의 모국, 출신국에서는 집회, 결사, 의사,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없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은 다르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고, 당신의 양심에 반하는 어떠한 것도 국가가 강제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귀화 때부터 알려주는 것이다. 굳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라는 문서를 통해 조건부 귀화 신청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치졸한 일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개인의 사상과 양심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 자유'이자, 개인의 사상과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이다. 오직 충성만을 강제하는 것은 전제주의 국가나 군대와 같은 특수집단에서나 하는 행위다.
우리사회 이주민이 120만 명이 넘고, 이는 한국민의 2.4%에 해당한다. 앞으로 더 많은 이주민들이 귀화 신청을 하리라는 것은 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당사자가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대한민국 구성원으로 첫 발을 내딛는 새내기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요, 건강한 다문화 사회이다. 우리사회가 다양한 의견과 사상이 존중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선포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귀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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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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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 외국인에게 '충성서약서' 강요,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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